"가까운 동네에 살다보니 물들었나 보다"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것, 그 원죄에 대하여

등록 2005.07.04 09:19수정 2005.07.0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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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과 다른 말을 쓰는 외지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대복이 아저씨네 외양간 옆방에 세든 영철이 엄마는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분조차 모호했던 누구나 밥을 굶지 않을 정도로 고만고만하게 살았던 촌구석에서 남의 집에 세를 들어 사는 것은 그네들뿐이었다.


저녁이 되면 동네가 떠나갈 듯 "석--아" "철--아, 밥 묵그라"를 외치는 그녀를 보며 세상에는 지금껏 봐온 세상의 언어와는 다른 시끄러운 언어가 존재함을 처음 알았다. 엄마는 그녀를 '기차 화통을 삶아 먹는 여편네'로 칭하며 그들을 멀리했다. 그들은 잠시 그곳에 머물다 그곳에 스며들 때처럼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외지사람과, 사투리와의 첫 만남이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은 전라도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은밀히 속삭였다. 처음에는 간도 쓸개도 다 내 줄듯이 친절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철저히 챙기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족속들이란 것이었다. 한번도 전라도 사람을 만나 본 적도 없는 내가, 전라도에 대한 편견만은 세뇌 받은 시간만큼 갖고 있었다.

전라도, 그것도 광주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졸업 후 인천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제주도, 안동, 공주, 제천, 춘천, 부산, 광주, 대전, 인천. 대한민국 모든 지역 출신이 다 모여든 비빔밥 같은 직장이었다. 직장 주변에 옹기종기 자취를 하며 누군가가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설명하면, 그 날 저녁은 모두 미역국으로 통일되는 소꿉장난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1년 여의 인천시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광주 출신 J였다. 하루 종일 깔깔거리며 이십대의 발랄함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우리들과는 달리 그녀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그림 같은 이였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는 그녀와 나는 이내 친구가 되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것을 핑계로, 바람이 청명한 날은 바람 때문에 곧장 퇴근할 수가 없었다.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러 소래 포구에 가거나, 양푼 가득 삶아 놓은 골뱅이를 먹으러 답동시장에 가는 것이 그 시절의 주된 일과였다. 80년 광주를 고통스럽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골수 광주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전라도에 대한 그동안의 내 인식과 편견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가를 절절이 깨달았다. 그리고 나만 인천을 떠났다.


그 후 난 충청도 출신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고등학교 때 이미 서울로 유학 와 충청도에서 산 기간보다 서울에서 산 기간이 훨씬 많았음에도 어린시절 세뇌 받은 편견만은 그대로 화석처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예전의 나처럼 말이다. 경상도, 전라도 출신 만남이 아닌데도 생활 곳곳에 지역감정은 집요하게 도사리고 있다 모습을 드러낸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내리꽂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저녁 반주를 한잔 하고 있는데, 남편의 선배가 전북 지역의 명문 OO고 출신이란 이야기를 우연히 했다. 허접스런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선후배 챙기기, 편 가르기의 명수인 선배가 그 유명한 명문고 출신임을 부끄러워하며 밝히지 않는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선후배가 맞잡고 '밀어주고 땡겨주며' 한평생을 울궈먹어도 될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라북도 지방의 명문고인데도 말이다. 원래 부산 출신인데 공무원인 아버지가 하필이면 그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전라도의 그 도시에 부임하게 되어 할 수없이 그곳 명문고를 가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머시라고. 그 선배 부산사람이라 정말 다행이다. 괜히 전라도 욕 멕일 뻔했네. 성격 이상한 사람 보면 꼭 전라도 출신이라 그래 그러쟎아. 다른 지역 출신이면 개인 성격 탓, 전라도 출신이면 지역 탓."
"당신 되게 웃기네. 전라도 출신 중에 친한 사람 있어? 왜 맨날 편들고 난리야."

나의 전라도 편들기(?), 지역감정 없음을 남편은 내 친구들에게 혐의를 두고 열심히 심문을 시작한다.

"당신 친구 K씨 전라도야?"
"아니. 충청도 예산."
"시민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Y씨는?"
"대구. 그 남편은 아마 홍성일걸."

이번에는 내가 먼저 선수 쳐 그녀의 남편 출생지까지 이야기해 버린다.

"전라도도 아닌데 부부가 왜 그렇게 강성이냐?"

내 주위의 '전라도 것'찾기에 결국 실패한 남편이 결정적인 이유를 발견한다.

"당신 고향 '논산군'이지. 아무래도 전라도 가까운 동네에 살다보니 물들었나 보다."

가끔, 아니 자주 난 내가 자랑할 것도 없는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이 다행스럽다. 어떤 문제로 갑론을박 논쟁이 벌어졌을 때 충청도 출신이란 것은 적어도 '저것 전라도 것이라 그래'라는 쑥덕거림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다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라도 출신들은 나처럼 그렇게 강하게 이야기 하지도 않지만.

가끔 성격이 이상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고향이 전라도가 아님을 다행스러워하기도 한다. 전라도 출신이 좀 이상하면 그것은 모든 것을 뛰어넘어 '전라도라서'란 진단을 주위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내려 버리곤 한다.

a 아름다운 보성. 2004년 8월 1일

아름다운 보성. 2004년 8월 1일 ⓒ 이승열

다음날 전라남도 보성 출신 M선배와 드라이브를 하다 우리 부부의 지역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선배에게 '충청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란 제목으로 메일을 보냈다. 아래는 보성에서 15년, 서울에서 30년을 넘게 산 전라도 출신 선배의 답장이다.

"잘 읽었네. 내 고향이 전라남도 보성이라는 걸 자네는 물론 알고 있지? 지금은 다원(차밭)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내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시골' 그 자체였다네.

미술시간에 야외에서 그림 그리다가 지나가는 기차에 손 흔들었다고 선생님에게 혼나고, 여름방학 숙제 중 하나는 언제나 식물채집이 있었고, 농번기 때는 가끔 낫 들고 등교해 학교에서 꽤 떨어진 곳으로 걸어 '보리베기'(집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도 하고, 보리나 벼 이삭 주워 학교에 가져가는 숙제도 하고….

이렇게 거기서 중학교(보성여중)까지 보내고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네.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느꼈던 그 경이로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 후로 몇 군데 외국에도 다녔지만 그 시절 중학교를 막 졸업한 소녀의 뇌리에 각인된 것보다 나를 감동시키고 놀라게 했던 것은 없었네.

뭐라 할까? 문화충격(이 말은 어른이 된 다음에 알게 되었네만)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지. 아무튼 우리 신랑이 지금도 보성에 어쩌다 가게 되면 늘 "니네 형제들 굉장히 출세했다"고 번번이 놀린다네.

자라면서는 소위 말하는 '전라도 치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다가 대학 들어와 친구들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간간이 '전라도 편견'에 대한 말들을 들었네. 그 때는 그게 전혀 내게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는데.

대학 2학년 때 만난 너무도 사랑한 남자에게서 내 고향이 전라도기 때문에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할 거라는 날벼락을 맞은 뒤부터 내 의식도 깨이기 시작했지.

그리고 곧 '광주민주화 항쟁'이 있었고, 얘기하자면 너무 길고 약 오르고 기분 나쁘고 가슴 아프고 그렇네.

하여간 자네 글 읽고 두서없이 적어 보았네. 자네 신랑에게 'M선배가 전라도 출신이다'고 확실히 얘기하게나. 어제 지나쳤던 수많은 들판들이 각각의 빛으로 꿈자리를 아름답게 수놓아주었다네. '고맙다'는 말로 인사 대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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