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213회

등록 2005.07.04 07:57수정 2005.07.04 09:06
0
원고료로 응원
"당신은 이제 완전하게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건가요? 물론 당신이나 내가 속해 있는 조직과는 상관없어요."

왜 이것을 확인하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물론 송하령이 천지회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나 자신으로 인해 납치된 것을 그녀가 구해왔음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많은 정보도 주었고, 앞으로도 필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여기 오는 것을 매우 망설였어요. 문제는 당신과 내가 완전하게 친구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죠. 완벽하게 믿을 수 있냐는 것이에요."

"무슨 뜻이오?"

몽화는 붉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다 문득 탄식을 터트리며 말했다.

"어쩌면 당신과 나는 공동의 흉수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는 의미예요."

무슨 뜻일까? 그의 얼굴에 의혹스런 표정이 짙어지자 몽화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일은 어쩌면 내가 그동안 은밀하게 조사했던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 몰라요. 아니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내가 당신을 돕듯이 당신도 나를 믿고 도와주기를 바라요. 이제 우리는 같은 배에 탄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나는 지금 살천문이 어디 있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오. 물론 당신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나는 아직 당신을 믿을 만큼 당신을 알지 못하오."


"어찌하면 당신이 나를 믿을 수 있죠?"

"당신은 나를 믿고 있소?"

그 말에 몽화는 멈칫했다. 과연 그녀는 담천의를 믿고 있는가? 담천의가 재차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오. 당신은 아직 나를 믿고 있지 않소. 나 역시 마찬가지요."

몽화는 탄식을 터트렸다. 무섭도록 치밀한 두뇌를 가진 자들은 가끔 자가당착에 빠진다. 자신이 이만큼 내보이면 상대는 모두 내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부분 그래왔다. 하지만 가끔 예외는 있는 법이다.

"좋아요. 나는 당신에게 숨기지 않고 모두 말하겠어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당신이 나를 믿을 것인지는 당신 선택에 달렸어요."

그녀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보였던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것은 이제부터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매우 심각한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천지회에 세 명의 회주가 있음은 당신도 알거예요. 그것은 균대위의 집요한 공격에 대한 대비이기도 했지만 천지회 내의 알력으로 기인한 것이기도 하죠."

그녀는 도박을 하듯 패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천지회 내부의 일이었다. 외인이 알아서는 안 되는 내용이다.

"천지회는 오중사걸(吳中四傑)을 기리기 위하여 문인(文人)들이 모임을 가지며 시작했어요. 당시 조신(朝臣)들까지 비밀리에 끼어 있기는 했지만 비밀결사로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호유용(胡惟庸) 승상의 옥(獄)이 있고 난 후죠."

지주(地主)나 상인(商人)들이 합세하고 무인(武人)들이 가세하면서 그 행동도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황실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도 이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필요에 따라 무림인들도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본래의 문인들과 관직에서 떨려 난 무인들, 지주와 상계의 소외계층들, 그리고 황실과는 관계없는 무림인들의 세 갈래가 한 곳에 모이게 된 거죠. 처음 오중회의 회주가 탁월한 분이셨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몽화는 말을 하다가 송하령을 바라보았다. 송하령은 갑자기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오중회를 회(會)다운 모습으로 만드신 분은 귀곡자(鬼谷子)의 일맥이자 송소저의 사부님. 바로 귀진자(鬼珍子)이셨죠."

그 말에 두 사람은 해연히 놀랐다. 오중회의 회주가 귀진자였다니…. 젊어서 대명을 세우기 전 주원장과도 만남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대명을 세운 후에도 찾은 적이 있고, 모시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허나 정작 송하령의 놀람은 컸다. 사부로 그 분을 모신 지는 오래되었지만 실상 곁에서 배운 적은 많지 않았다. 처음 큰 오빠가 모시고 왔을 때부터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령이었다. 큰오빠는 극진히 대접하였고, 그녀는 어려서 우연히 그 분의 눈에 띄게 되어 사부로 모시게 되었다.

하지만 잠시 들렀다가 몇 가지 화두를 던지고는 훌쩍 떠나셨다가는 오랜 만에 들르시곤 하셨고, 작년 이맘때쯤 이제는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며 홀연히 떠나시면서 말년에 거둔 어린 제자에 대해 끝까지 안타까워 하셨다.

사도(邪道)라 하여 평생 몇 장 만들어보지 않으셨던 부적(符籍)을 쥐어주시며 절대 몸에서 떼어 놓지 않기를 마지막까지 바라셨던 분이셨다. 몇 가지 귀중한 물건을 물려주시기도 했다. 담천의가 복용한 귀진환 역시 그 분의 것.

"하지만 귀진자께서는 기틀만 세워주시고는 천지회를 떠나셨죠. 그 뒤에 천지회는 과격해지기 시작했고, 균대위는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어요. 주요 인물들이 피살되고 수없이 회주도 바뀌어야 했죠. 일년에 세 번이나 회주가 바뀐 적도 있었어요. 귀진자께서 떠나신 지 삼년 후에 귀진자의 제자 분이 다시 회주가 되셨죠. 그리고는 곧 바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뜻하는 두 명의 회주를 더 선출했어요."

한 명은 지주나 상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또 하나는 무림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 때부터 오중회는 세 명의 회주를 두고 중요사안이 있을 때마다 세 명의 회주가 모여 결정을 했다. 그것은 꽤나 합리적이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세 갈래의 이익을 모두 통합하여 회를 꾸려나갈 수 있었다. 다만 회의 뿌리가 본래 문인들이어서 중요사안이 아닌 통상적인 일들은 본래 문인을 대표하는 회주가 통괄했다,

"그 분은 홍무 삼십년, 남옥의 옥이 있은 후 사년 뒤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어요. 그 분의 뒤를 이어 내가 회주로 선출되었지요. 기이하게 생각해 그 분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죠.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분명히 밝혀 내지 못했고, 이제 그것이 당신의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단서를 잡은 거예요."

그녀가 왜 그 동안 담천의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밝히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전대 회주를 죽인 흉수를 찾고 있었다. 당시에는 균대위 마저 행적을 감춘 뒤여서 천지회의 회주를 노릴만한 곳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많은 증거와 단서로 천지회 내부자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내부자가 회주를 살해할만한 뚜렷한 동기를 찾아낼 수 없었다. 정황과 증거는 분명 내부자의 짓이었지만 왜 죽여야만 했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흉수를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천지회의 회주가 살해당한 것이 내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슨 뜻이오? 설마 돌아가시고 난 사년 후에 벌어진 사건에 부친이 관련되었단 말이오?"

그녀는 고개를 끄떡였다.

"어쩌면…."

그 순간이었다. 담천의의 눈빛이 반짝 빛나더니 허공에 손을 돌리며 계속 말하라는 시늉을 했다. 동시에 그는 검을 들고 소리 나지 않게 벽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오른손을 계속 입 앞에서 내돌리고 있어 몽화에게 계속 말하라고 재촉하는 모습이었다.

"송소저는 귀진자께서 몇 명의 제자를 두셨는지 아나요?"

"사부께서는 다른 제자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적이 없었어요."

그녀는 사형들에 대해 듣지 못했다. 아마 살해되었다는 천지회의 회주는 그녀의 사형뻘 일 것이다.

"송소저까지 모두 네 사람의 제자를 두었어요. 첫 번째 제자는 바로 죽은 전대회주죠. 그리고 두 번째 제자는 비원에, 세 번째 제자는 백련교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어요. 하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아직 모르고 있어요."

기이한 일이었다. 한 스승을 모신 사형제들이 서로 알지도 못하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세 곳에 몸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송하령은 짙은 의혹을 느꼈다. 떠나실 때 사부는 자신이 걸어 온 생을 정리하시려는 듯 보였다.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미 세수 구십을 넘기셨으니 귀문동(鬼門洞)으로 돌아가시는 것 같았다. 끝까지 모시고자 하였으나 허허로운 웃음만 남긴 채 떠나셨다.

그 때였다. 담천의는 검을 평행으로 뉘여 창가 아래쪽을 빠르게 찔렀다. 검은 벽을 뚫고 그 밖에 있는 무언가를 찌르고 있었다. 느낌은 분명했다.

"악--!"

짤막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담천의 몸이 창문을 뚫고 밖으로 쏘아 나갔다. 몽화와 송하령 역시 대화를 중단하고 급하게 창문을 타고 넘었다. 야행복을 입은 여인이 창가 아래 벽에 기댄 채 가슴에서 피를 쏟아내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연교(蓮翹)… 네가…?"

몽화의 입에서 믿지 못하겠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바로 몽화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던 네 여인 중 한 명이었다. 왜 그녀가 여기에 온 것일까? 더구나 야행복을 입고 창밑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것일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