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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평양 정현우 의원의 약국.
"윤 군관은 좀 어떻습니까. 스승님."
정현우의 침구 보자기를 받아들며 사위 이경은이 물었다.
"근골이 상한 것은 없고 다만 기맥이 막히고 어혈이 맺힌 곳이 있어 그저 침이나 놓아주고 나섰느니라. 윤 군관 그 사람이 그리 쉬 누울 사람은 아니로되 감사 영감의 심려가 이만 저만이 아니기로 그냥 헛다리품을 팔아준 것뿐이니."
정현우가 마루에 걸터앉으며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황해도에 다녀온 지 하루도 안 된 몸으로 왕진을 나선 것이 무리인 듯 했다.
"나도 이젠 늙는구나."
"제가 가 볼 것을 그랬습니다."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 군관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의당 내가 얼굴을 보고 와야지."
"평양 성내는 물론이고 성 외 인근에도 어제 일에 대한 소문이 파다합니다."
"뭐라 났더냐?"
"혹자는 화적패가 감영에 들이쳐 일을 벌였다고도 하고, 혹자는 감사 영감을 찾아온 손님을 오인하여 해하려다가 사단이 났다고도 하여, 딱히 가닥이 잡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윤석우 군관이 당하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눈치이긴 합니다. 윤 군관과 겨룬 자가 하늘을 나는 자라고도 하며 둔갑술을 펼치는 신출귀몰한 자라는 풍문이 자자합니다."
"어디 무지몽매가 죄이겠느냐. 본시 민심이란 것이 부풀리기를 그 본성으로 하지 않더냐."
"하오나, 이대로라면 백성들이 혹세무민하는 참언 따위에 미혹되지 않을까 심히 저어됩니다. 정감록이다 정진인이다 하는 낭설이 조선팔도에 파다하고, 서학에 심취하는 자가 그 어느 때보다 많으며, 이젠 그에 반대하는 동학까지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외세의 협위가 더욱 극심하고 세도가의 기세가 여전히 등등한데 백성 또한 이토록 미욱한 생각에 빠져 있으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그게 어디 백성들의 잘못이겠느냐. 그들이야 그런 희망이라도 없다면 이 어려운 때를 어찌 살아갈꼬. 결국 언젠가는 백성의 힘으로 정진인을 만들고 한울님을 만들 날이 올 게다. 언제까지나 미욱한 공상으로만 남지는 않을 게야."
"……."
"경은아. 황해도 해안에서 총에 맞은 청국인 시신 두 구를 보았느니라."
"청국인이 조선 해안에 말이옵니까?"
"그런데 그 총환이 곽 포교가 당한 것과 같은 것이다."
"예?"
"모르긴 몰라도 그 도당의 세력이 깊이 뻗어 있는 듯 하다. 이젠 자신들의 움직임을 주저하지 않고 드러내고 있어."
"스승님… 실은 스승님께오서 황해도에 계시는 동안 어떤 무리를 진료하였사온데 배로 대동강을 거슬러 왔고, 그 중 총상을 입은 자들이 양총에 맞은 것으로 보아 분명 그 청국인 시신들과 관련이 있는 듯 하옵니다. 서해상에서 그들과 교전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뭐? 그런 일이 있었느냐. 헌데 어찌하여 이제 이야기하는 것이냐?"
"스승님께서 돌아 오시던 날 아침에 그들이 종적을 감추었고, 스승님께서도 곤해 보이시어서…."
"그래 총상을 입은 자들은 어찌되었느냐?"
"하나는 도착하자마자 절명하였고, 하나는 배에 총상을 입었으나 무사히 총환을 빼내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창망하게 떠났으니 부작용이나 없을런지 모르겠구나."
"해부산과 금인도경산을 같이 써서 출혈을 멎게 하였사옵고 홍옥산으로써 새살이 돋기를 보양하였사옵니다. 지금은 그저 고약으로 창양을 다스리고 있을 뿐이었으니 별고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야 안심이구나."
"그런데… 저… 스승님."
"오냐."
"어제 감영에서 있었던 소동 말이옵니다. 현장에 있었던 포교의 말을 들으니 갓 쓴 30대 사내와 젊은이 둘이 일으킨 일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진료했던 무리가 틀림없습니다. 그들 말고도 사후선을 몰고 온 사공들과 환자가 있었습니다만, 그날 아침 모두가 사라졌습니다. 무리를 모두 빼낸 후 감영에 들어간 것이 확실합니다."
이경은의 말에 정현우 의원의 눈이 커졌다.
"관찰사 영감께서도 무언가를 숨기는 눈치였다. 나에게도 말 못할 일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정현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늘 감사 박규수는 그들이 자신을 찾아온 손님인데 사소한 오해가 있어 그리 됐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인가 더 하고 싶은 말을 누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틀림없다. 진맥과 더불어 사람의 상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몸 안의 병을 훑으며 평생을 살아온 몸이 아니던가.
"네가 아는 바를 관찰사 영감께 고해야 하겠느냐?"
"관찰사 영감께오서 표를 내지 않는다면 저희도 조용히 있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그리고 또…."
"또 뭐?"
"잘은 모르겠사오나 그들이 오고나서부터 떠난 지금까지도 누군가가 계속 저를 염탐하는 기운을 느낍니다."
"염탐을? 혹 감영에서 보낸 사람은 아니겠느냐?"
"그럴 리 없습니다. 감영에서 그들이 당도한 직후부터 시작된 미행입니다. 그리고 그 무리들은 객주에 머물고 제가 왕진하였으니 딱히 외부사람이 그 내막을 알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 약국 내 다른 아이들은?"
"두엇이 알고는 있사오나 발설하지 않을 일과 발설 할 수 있는 일을 모르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이곳 평양에 여전히 그들의 도당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살고 있었던 듯 하옵니다. 어쩌면 저희도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각별히 주의하소서."
"흠… 무언가 큰 것이 있긴 한데 도무지 실체를 알 수가 없으니…."
정현우가 마루에 걸터앉은 채로 담 너머 하늘을 바라보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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