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흘린 아내의 패배로 끝난 부부싸움(?)

등록 2005.07.05 00:10수정 2005.07.0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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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아이들 재우고 아내는 텔레비전을 켜고, 저는 인터넷을 켭니다. 저는 아내한테 한 마디 합니다. 텔레비전 보면 뭐 나오냐고. 아내도 이에 질세라 <오마이뉴스>보면 뭐 나오냐고 합니다.


날도 덥고, 그냥 각자 일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아내는 텔레비전을, 저는 <오마이뉴스>를 봅니다. 아내는 드라마 '패션70S'를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주진모가 '끝내주게 잘 생겼다'며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하지만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입니다. 아까 제가 한 마디 했다고 괜히 시비를 걸며 나의 질투를 유발하려는 유치한 발상입니다.

하지만 그 뻔한 속셈에 넘어가면 바보죠. 만약 여기서 제가 무슨 말이 됐던 대꾸를 하고, 그 대화가 계속되다 보면 아마 어느 한 순간에는 질투를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제가 지게 되겠죠. 이럴 땐 그냥 씨익 웃어주는 게 이기는 겁니다. 아내는 자신의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텔레비전 보기에 열중입니다.

아내의 어설픈 공격에 저는 은근히 '어디 한 번 당해봐라' 복수심이 생깁니다. <오마이뉴스>를 클릭하고 기사를 읽습니다. 키득키득 웃습니다. 아내는 처음에는 '복수하려고 괜히 저런다'고 생각했는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의 심리를 이미 꿰뚫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는 절대 아무런 내색도,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이리 와 봐' 아니면 '이거 진짜 재밌다'등의 말을 하게 되면 속이려 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절대로 아무런 말도 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계속해서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습니다. 물론 텔레비전으로는 눈 한번 돌리지 않았습니다.

아까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 <오마이뉴스> 보기에 열중입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작전계획 수립에 여념이 없습니다. 짱구 시계를 봅니다. 10시 30분입니다. 목이 마른 척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아내의 표정을 슬쩍 보니 드라마에 완전히 빠졌습니다.


보아하니 아내는 아까 그 일을 완전히 잊은 듯합니다. 물을 먹고 와서 계속 기사를 보다가 한마디 합니다.

"어, 이게 뭐야?"

아내가 누워 있다 고개를 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모르는 척 얼굴을 모니터 쪽으로 가까이 가져갑니다. 물론 뭔가 흥미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아내에게 믿게 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입니다.


'앗싸!' 속으로 쾌재를 부릅니다. 이 정도쯤이면 승리능선의 80%정도는 넘은 셈입니다. 결정적 실수만 안 한다면 '속았지 속았지'하면서 손뼉을 칠 일만 남았습니다. 이쯤에서 무슨 말을 해야 결정타를 날릴 수 있을지 참 고민스럽습니다.

생각이 잘 떠오르질 않습니다. 흘깃 시계를 보니 드라마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드라마 끝나면 아내는 분명히 잠을 자러 갈테니까요. 마음이 급하니 더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최고의 인기라는 드라마 삼순이 생각이 나면서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아까보다 더 얼굴을 모니터에 갖다 대며 깜짝 놀란 듯이 외칩니다.

"어, 삼식이란 희진이랑 결혼하네. 뭐야! 그럼 삼순이는 어떻게 해. 그렇게 되면 드라마가 재미없지. 이상하다. 인터넷 보니까 삼식이가 삼순이한테 돌아올 거라는 복선이 여기저기 깔려있다고 그러던데."

삼순이가 인기는 인기인가 봅니다. 역시 아내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 뒤로 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무슨 기사가 됐든 클릭을 해야겠기에 마침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김민수 기자님의 포토에세이 '낙화예찬'을 클릭 했습니다.

그 교묘한 시간타임. 그러니까 '낙화예찬'을 클릭한 후 얼굴을 모니터에 최대한 가까이 대고 보고 있었고, 아내는 제가 말한 삼순이 기사를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제 머리 뒤에 얼굴을 대는 순간이었습니다.

"앗 깜짝이야!"

짧은 저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모니터에 가까이 댔던 제 얼굴이 확 뒤로 제쳐 집니다. 순간적으로 나타난 너무도 선명한 애벌레 사진에 너무 놀랬던 겁니다. 그 순간 제 머리 뒤에 고개를 숙이던 제 아내의 코는 정면으로 제 뒤통수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뭐야!"하면서 아내가 놀랬는지 제 등을 ‘쫘악’ 한 번 내리칩니다. 하지만 저는 아까 본 애벌레 사진에 놀란 가슴이 아직도 쿵쾅거려서 등이 아픈 줄도 모르겠습니다. 아내를 속이려고 모니터에 너무 얼굴을 가까이 대는 바람에 더 놀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휴지를 달라며 소리를 칩니다. 뒤돌아보니 아내가 코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아까 저하고 부딪혀서 그런가 봅니다. 아주 많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코피가 흐릅니다.

얼른 휴지를 건네주고 코피를 닦는 아내를 보니 놀란 가슴은 어느 덧 멀리 달아나고 웃음이 나옵니다. 코에 휴지를 꽂아 넣고 아내. 아직도 삼순이에 대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지 모니터 앞으로 옵니다.

"어딨어?"
"으이그, 그걸 믿었냐!"

아내는 그때서야 속은 것을 알고는 저를 한심하듯이 쳐다봅니다. 마치 '그런 거 가지고 한 시간 동안 머리 쓰느라고 애썼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러더니 아무 말도 안하고 텔레비전을 끄고 나갑니다. 아내의 뒤에 대고 제가 외칩니다.

"자고로 싸움에서 코피 흘리면 무조건 지는 거니까 내가 이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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