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농업고등학교 올 새내기 안내교육. 앞 줄 제일 왼쪽이 새날이다. 겨울 내내 몇 십년 된 엄마의 외투를 걸치고 다녔다.전희식
그리고는 ‘아빠, 아빠, 아빠’하고 다급하게 부르더니 ‘지금 우리 집 밭에 무엇 무엇이 어느 정도 자라고 있는지 맞춰 볼 테니 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새날이가 하나하나 새기며 대는 작물 이름을 들으며 나는 풀무학교 실습지에서 저런 곡식과 채소가 자라나보다 하고 눈앞에 떠 올렸다. 내 입가에는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졌고 특별한 용건도 없이 그냥 전화를 건 딸애가 왈칵 그리웠다.
집을 다녀 간 지도 한 달이 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열일곱 살 나이에 객지에서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가기가 벅찰 텐데 한 마디 투정도 없이 전화기 저 너머로 재잘대는 딸 애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왔다.
“아빠. 그런데요. 부탁 하나 있거든요.”
“뭔데? 새날이 부탁 들어주는 재미로 아빠는 살아가지~.”
“저기. 방학 때요. 제가 농사지을 밭 좀 주실 수 있어요?”
이 말에 나는 잠시 딸애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되새겨야 했다. 내가 어떻게 가꾼 밭인데 밭을 달라고? 벌써 아빠 재산에 욕심을 내다니. 미리 상속 해 달라는 말? 아니지 설마 그럴 리야.
새날이 얘기는 방학 때 자기가 맡아 농사지을 밭을 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농사를 잘 짓고 못 짓고를 떠나서 방학계획에 이런 기특한 계획을 포함시킨 새날이가 대견했다.
이어 새날이는 대학을 안 가면 안 되겠냐고 했다. 당연히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새날이 학교에 정농회 4대 회장을 역임하신 ‘정상묵’ 선생이 특강을 오셨는데 그 강의를 듣고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아빠처럼 그렇게 살면서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공부 하면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고등학교에 갓 입학 한 새날이가 자기는 ‘어떤 대학을 가면 좋겠냐’고 묻기에 ‘아빠가 이미 다 정해 놨으니까 새날이는 걱정 마시라’고 했더니 서울대 수학과가 제일 좋다는데 아빠 생각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실상사 작은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수학 선생 덕분에 수의 원리와 신비에 맛을 제대로 들인 새날인지라 수학자가 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