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시장에서 점유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경쟁자가 별로 없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독과점'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독과점에 대한 정의을 머리 속에 담는 순간 서울대가 떠올랐다. 위 설명에서 '사업자' 대신 '대학'을 넣어보면 이유는 분명해진다. 그 서울대에 연세대와 고려대가 따라 붙었다. 그리하여 '서울'에 '연고'를 둔 대학, '서울연고대'라는 강력한 '학벌브랜드'인 'SKY'가 탄생했다.
오해하지 마라. 서울대의 독주는 '물론' 돋보이지만 서울연고대는 개별대학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다. 더욱 분명한 것은 입법부든 사법부든 행정부든 시장지배력만을 놓고 보았을 때 서울연고대만한 독과점이 또 있을까 하는 것이다.
대학교는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사업자, 공정거래법 적용해 학벌독과점 규제하자
시사용어 사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81년 4월 1일부터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을 시행, 특정 상품이 몇몇 기업에 의해 독점이나 과점되는 것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 법은 "사업자의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 행위 및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그리하여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상품(교육)이 몇몇 기업(서울연고대)에 의해 독점이나 과점"되고 있으며 "사업자(서울연고대)의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불공정 거래 행위(본고사)"를 통해 "(교육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한다. 어떤가? 굳이 3불정책을 법제화하지 않더라도 공정거래법을 잣대로 대학교의 독과점을 제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한 번 짚고 넘어가자. 서울연고대의 독과점이 얼마만한 것인지를. 아, 전제 조건이 있다. 대학교는 비영리기관이다. 하지만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엄연한 사업자다. 사업자는 '시장지배적' 잣대로 독과점을 판단할 수 있다. 전제조건은 충족됐다. 단, 이 사업자는 단순히 '시장지배적'을 뛰어넘어 '국가지배적'이란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국회시장'을 살펴보자. 지난 17대 총선에서 서울대는 모두 143명의 동문이 당선됐다며 쾌재를 불렀었다. 제적의원 299명의 48%에 달하는 숫자다. 고려대 34명, 연세대 24명으로 모두 합치면 201명으로 전체의 67%를 차지한다.
다음은 '사법시장'으로 가 보자. 지난해 12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최근 5년간(31기~35기) 사법고시 합격자 4352명을 분석한 자료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출신대학별 사법연수원생은 서울대 1660명(38.1%), 고려대 796명(18.3%), 연세대 441명(10.1%)으로 모두 66.5%에 이른다.
'공무원장터'는 어떤가? 지난해 10월 중앙인사위가 국회 운영위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청와대를 제외한 각 행정부처와 위원회 등 51개 기관의 '3급 이상 공무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체 1462명 중 서울대 출신이 346명(23.7%)이고 고려대 105명(7.2%), 연세대 88명(6%)이다. 모두 36.9%에 해당한다.
한 가지 더. <신동아>가 지난 6월호에서 보도한 104개 공기업 임원 450명의 출신대학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가 95명(21%), 고려대 41명(9%)과 연세대 37명(8%)으로 나타났다.
학벌제재법, 1개 대학 점유율 30%, 3개 대학 50% 넘지 못하게 하자
현재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시장점유율, 진입장벽의 존재 및 정도, 경쟁사업자의 상대적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또한 공정위가 판단하는 독과점의 기준은 시장점유율이 1개사 50% 이상이거나 상위 3개사 합계가 75% 이상이다.
시장점유율, 진입장벽, 경쟁사업자규모 등 구구절절이 학벌독과점을 설명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처럼 3박자가 두루 갖춰진 철옹성 같은 사업자가 또 있을까? '삼성공화국'도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애석하다. 앞서 살펴본 자료들를 보면 서울연고대의 국가지배적 학벌독과점은 분명한데 공정거래법으로는 제재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업종별로 따로 적용하는 식품위생법과 제조물책임법 등이 있으니 '학벌제재법'을 하나 추가해 별도로 적용하면 된다. 학벌제재법을 통해 입법부ㆍ사법부ㆍ행정부 등에서 1개 대학이 점유율 30%를 넘지 못하게 하고, 3개 대학이 50%를 넘지 못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역시 애석한 소망일 뿐이다. 서울대 출신 국회의원들이 입법부의 과반 정도를 점령한 채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으니 말이다. 결코 추리가 아니다. 다음과 같은 명백한 증거가 있다.
지난해 4ㆍ15총선 이후 손일근 관악회(서울대 국회의원 모임) 상근부회장은 "민족과 조국을 생각하고 민심을 하늘같이 섬긴다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자유투표제가 확대되는 추세에 143명이 당선됐다는 것은 어떤 법안이라도 발의할 수 있고 통과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대통령까지 나서 '본고사 금지'를 외쳤음에도, 3불 정책 법제화 운운함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이유가 말이다.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시험 강행의지는 앞서 언급한 대로 독과점에 대한 폐해가 대학교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서울연고대의 국가 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학벌의 집중을 방지하자"
법을 만드는 사람도(입법부), 벌을 주는 사람도(사법부),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도(행정부) 독과점으로 굳게 뭉쳐 있는 학벌 사회. 앞서 살펴봤던 자료들이 능력으로 평가 받고 실력으로 승부한 사회에서 나온 결과라면 도리가 없다.
하지만, 학벌로 인한 폐해는 사회 곳곳에 너무도 만연하다. 수험생들은 명문대학에 목숨을 걸고 있고, 고졸 대통령은 야당 대변인의 입을 통해 학벌 콤플렉스라는 말을 들어야 하고, 지방대생들은 일하고 싶어도 뽑아주질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야말로 학벌의 폐해는 남녀노소 따지지 않고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공정거래법의 목적을 새롭게 새겨본다. 바라건대 서울연고대의 학벌독과점을 규제하라.
"서울연고대의 국가 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학벌의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 행위 및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해 창의적인 국가 활동을 조장하고 국민과 수험생을 보호함과 아울러, 경쟁력 있는 대학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적으로 출신 고교와 대학 등을 분석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만, 주장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여러 자료들을 인용했습니다. 학벌문제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만, 3개 대학을 필두로 형성된 학벌의 구조적인 폐해를 해소하자는 의도에서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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