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점'을 먹고 식물원에 가다

등록 2005.07.11 02:14수정 2005.07.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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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습니다. 전날인 토요일은 보통 밤이 깊도록 다음날 늦게까지 잘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고자 TV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보고 인터넷도 밤새도록 활보하고 다니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절로 고개가 수그려지고 눈이 감겨 올 때쯤 잠자리에 들지요. 그러니 일요일 아침은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밥 먹어" 하는 아내의 말에 세수도 하지 않고 밥 상 앞에 앉으니 시간은 오전 11시입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아래층에 사는 처형 네에서 청계산이나 가자고 합니다. 저희 집은 양재동이라 청계산은 금방입니다.

바로 근처에 사는 처남 식구들도 연통하여 청계산으로 향했습니다. 처남 차에 열 명이 넘는 식구들이 가득 들어차서 산에 도착하니 맑은 산 공기가 와락 달려듭니다. 이제 걸음마를 뗀 조카 녀석도 있고 해서 정상까지는 오르지 않습니다.

산 중턱의 중턱 정도에 있는 약수터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옵니다. 밖은 여름 후텁지근한 바람과 공기가 가득 하지만 산엔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겨주는 물과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바람이 있습니다.

청계산 등산로 작은 폭포
청계산 등산로 작은 폭포김지영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오르고 내립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산이 시가지 근처 가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비정한 도시는 사람을 내치지만 자연은 먼저 사람을 내치는 법이 없습니다. 자연을 버리고 멀리 내려다 놓은 것은 언제나 사람들이 먼저 하는 일입니다. 어리석게도 그렇게 내다 버린 자연을 사람들은 또 그만큼의 비용과 시간을 소비하며 찾아다닙니다.

약수터 아이들
약수터 아이들김지영
아이들은 어딜 가나 즐거울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는 특히 더 그럴 수 있나 봅니다. 물과 나무와 바람 속에서 아이들이 얼굴 찡그리지 않고 마냥 즐거운 웃음을 짓는 것은 아이들의 부모에게도 행복한 일입니다. 흙 길을 밟으며 산책하듯 약수터를 벗어나 산을 감싼 도로를 타고 부근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하산길
하산길김지영
고기를 먹고 싶다는 아이들의 성원에 힘입어 손윗동서한테 단단하게 점심을 얻어먹었습니다. 밖에서 여럿이 먹는 식사는 무엇이라도 맛있습니다. 부른 배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려니 아쉬움이 많습니다. 청계산 근처 '신구대학식물원'으로 향했습니다.


식물원 앞에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엔 연못답게 연꽃들이 가득합니다. 아직 연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진 않았지만 성급하게 피어있는 꽃들이 간간이 보입니다.

식물원 앞 연못
식물원 앞 연못김지영
연꽃
연꽃김지영
얼마 있으면 이 연못에 연꽃이 가득 피어 날 것을 생각하니 그 장관이 눈에 선합니다. 저 살던 전주 덕진공원에 넓은 호숫가 한쪽으로 연꽃들이 수면 위를 장식하고 있다는 소식을 며칠 전 들었습니다. 고향 생각이 절로 납니다.


식물원 입구 주차장엔 차가 빼곡합니다. 익히 입소문을 듣고 달려오신 분들이 벌써 많이 생겼나 봅니다. 식물원은 넓고 다양하게 잘 꾸며져 있습니다. 부근에 이런 식물원이 있다는 것을 지난 겨울에 알았는데 처음 그 안을 유람하면서 감탄했습니다. 더욱이 입장료도 없습니다.

신구대학 식물원 안내도
신구대학 식물원 안내도김지영
식물원 안 돌담길
식물원 안 돌담길김지영
식물원 안 나무 놀이터
식물원 안 나무 놀이터김지영
식물원 안 분수대
식물원 안 분수대김지영
식물원을 걷다보면 노란 시멘트 길도, 나무계단도, 흙 길도 있습니다. 작은 못도 있고 운치 있는 나무 다리도 여러 개 있고 나무로 만든 놀이터도 있습니다. 분수대도 있고 정성들여 쌓은 돌탑도 여러 개 있습니다.

어느 한적한 날 따로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도시락 들고 와서 하루 정도 실컷 구경하고 쉬었다 갈 수 있을 만한 곳입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 총각들에게는 데이트 장소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식물원 내 나무사이 흙길
식물원 내 나무사이 흙길김지영
한 주 동안 고단했던 도시의 일상들이 나무와 물과 바람과 꽃들과 흙길위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보고 힘껏 느끼고, 맡고, 받아들이고 돌아온 도시의 집에서 다시 한 주 시작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다시 주말이 오면 우리는 또 어딘가 있을 또 다른 자연을 찾아 길을 떠날 겁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생동안 지치지 않고 되풀이해야 할 휴일의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이 있는 한 우리의 삶은 그리 건조하거나 메마르지 않을 겁니다. 가공의 것들 속에 묻혀 사는 우리에게 그저 그대로인 채로 우리를 위로해 줄 자연을 찾는 길이 더는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주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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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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