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빗방울로 쓴 사랑 연서

등록 2005.07.12 09:44수정 2005.07.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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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강기원은 비가 내리는 날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빗줄기에서 "하늘이 내던진 빛나는 피리"를 본다. 때문에 그녀에게 있어 비를 맞는다는 것은 비에 젖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으며 구멍이 숭숭 뚫리는 느낌으로 이어졌고 결국 그 느낌의 끝에서 그녀는 피리가 되었다.


비는 그렇게 또 다른 상상력의 도화선이 되곤 한다. 하루 종일 그 비가 내리다 잠깐 그치고 나면 나뭇잎의 어디에나 물방울 잔치이다. 그 물방울로 사랑의 연서를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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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처음 당신을 만나고 돌아올 때 가슴에 무엇인가 소중한 것이 영글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열어보았더니 맑고 투명한 물방울 하나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습니다. 그 영롱한 물방울은 며칠이 지나자 사라졌지만 또 다시 당신을 만나고 들어오던 날 기쁘고 행복한 내 가슴의 한편으로 그 느낌이 역력했습니다. 열어보니 다시 그곳에 맑고 투명한 물방울이 영글어 있었습니다. 당신을 만날 때마다 그것은 내 가슴에 영글었고 그렇게 며칠을 가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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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어느 날부터인가 그것은 두개씩 영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당신을 만나러 갈 때의 설레임 속에서 영글었고, 하나는 예전처럼 당신을 만나고 들어올 때의 행복함 속에서 영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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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영롱한 물방울이 사라지기 전에 매일매일 당신을 만나 가슴 한가득 그것을 잉태하는 꿈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당신이 내 가슴의 주인이 되는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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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처음엔 작았던 그 물방울이 점점 몸을 불리더니 어느 날 이만큼 커졌습니다. 이제 내 생에 당신을 담을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사랑이 커졌다는 뜻일까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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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생각해보니 당신은 이제 제 삶의 일부였습니다. 내 가슴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그곳에 깊이 박혀있었습니다. 바람이 흔들어도 가슴을 모아 당신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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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 그러나 비가 내려 물방울이 그 꽃에 목걸이처럼 드리우면 잠깐 그 꽃은 당신의 꽃입니다. 나라꽃도 잠깐씩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사랑을 위하여 기꺼이 나라를 접고 그들만의 사랑의 꽃이 되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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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항상 물방울은 내 가슴의 대지에 보석처럼 영그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무게를 못이겨 떨어질 듯 흔들리고 있는 물방울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물방울이 나뭇잎 끝에서 떨어질 듯 흔들릴 때마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하나는 아슬아슬한 긴장과 불안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불안과 긴장도 아름답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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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당신을 만나 항상 행복했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요. 가시에 찔린 듯 아픈 날들도 많이 있었지요. 그러나 경이로운 것은 그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끝에 영롱한 보석을 하나씩 잉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 속에선 그렇게 아픔도 투명한 결정으로 영그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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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가는 초록의 줄기를 타고 물방울들이 영글어 있습니다. 당신을 처음 만나던 날(그날 나는 무려 10시간을 내내 떠들었고, 당신은 "네", "그래요" 이 두 가지 말만 하며 내 얘기를 모두 다 들어 주었지요), 당신과 처음 입술을 나누던 날, 당신이 처음 우리의 아이를 낳던 날, 당신이 처음, 물방울을 셀 때마다 추억이 하나하나 끊임없이 고개를 듭니다. 투명한 무지개를 엮고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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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항상 제 가슴만 들여다보면 시선을 위로 들었습니다. 나뭇잎의 가는 실핏줄이 보입니다. 그 끝에 물방울이 맺혀 있습니다. 혹 저 물방울은 나뭇잎의 실핏줄이 제 몸에서 만들어 열심히 실어 나르며 키운 것은 아닐까요.

사랑은 어느 날 하늘로부터 내게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기쁘고 행복하고 아픈 나날을 살면서 내 몸의 실핏줄이 그 모든 날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실어 날라 내 삶의 나뭇잎 끝에 투명한 결정체로 하나둘 매달아 가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은 그렇게 그대에 대한 내 마음을 실어 날라 제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보면 당신은 작아도 내가 빚어낸 소중한 나의 사랑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인 http://blog.kdongwon.com/index.php?pl=114에 동시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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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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