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비와 시비를 가진 만리포 해수욕장

등록 2005.07.12 12:15수정 2005.07.1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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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 태안반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태안읍 백화산 정상에서 보는 태안반도의 풍광은 한마디로 그림 같다. 북쪽으로는 가로림만을, 남쪽으로는 천수만을 거느리고 있는 태안반도는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육지였다가 조선조 인조 때부터 섬이 되어 있는 안면도까지 포괄하는 태안 해안국립공원 안에는 도합 31개소의 해수욕장이 있다. 태안 해안국립공원이 온통 해수욕장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안군의 이 31개소 해수욕장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만리포해수욕장이다. 만리포해수욕장은 개장 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6·25 전쟁의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은 1955년 당시 서산군 소원면장이었던 박노익씨의 노력으로 '만리포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해 발족한 '만리포번영회'는 7월 3일 정식으로 만리포해수욕장 최초 '개장식'을 열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다음 해인 1956년 만리포번영회는 만리포-인천 간 정기 여객선을 띄워 인천과 서울 등지의 피서객들을 유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리고 만리포번영회는 1967년 사단법인 '만리포관광협회'(초대 회장 이화형)로 재발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리포해수욕장의 개장 역사는 올해 50년이 되었지만, 만리포라는 이름의 역사는 500여 년을 헤아린다. 만리포의 원래 이름은 '만리장벌'이었다. 그 이름의 유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조선조 세종 시절, 명나라 사신 일행이 또 한번 서해의 뱃길을 통하여 우리 조선국에 오게 되었다. 옛날 당나라 때부터 사신들이 드나들었던 중국과 가장 가까운 안흥이 있어, 그 안흥으로 상륙하려고 하였으나, 풍랑으로 말미암아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안흥 대신 가까스로 상륙을 한 곳이 바로 만리장벌의 이웃 바다인 막동(오늘의 천리포)이었다.

태안의 관아에서는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 밭고개의 꽃게와 막동의 조기와 진여의 해삼과 전복으로 명나라의 사신 일행을 대접하였다. 그런데 그 해산물의 맛을 잊지 못한 명나라 사신 일행이 돌아갈 때도 굳이 상륙했던 곳에서의 승선을 원하므로 드넓은 모래장벌 해변에서 전별식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때 모래장벌은 이름 없는 해변이었다. 조정에서 정승 맹사성이 와서 명나라 사신 일행의 '수중만리 무사항해(水中萬里 無事航海)'를 기원하는 전별식을 거행하면서, 명나라의 칙사에게 많은 조기와 꽃게, 모항의 해녀들이 잡아온 해삼과 전복을 선물하였다.


그리고 그 전별식의 주제가 되는 '수중만리 무사항해'에서 '만리'라는 말을 따서 그 후부터 그 전별식이 열렸던 아름답고 드넓은 모래장벌을 일러 만리장벌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기에서의 '장벌'이라는 말은 '길고 넓은 벌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만리장벌이라는 이름의 첫 글자인 '만'자는 '만리(萬里)'로 나타나는 수의 뜻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고, '많고 크고 풍족하다'는 뜻도 지닌다.


이렇게 만리장벌로 내려오던 이름을 가져다가 만리포라는 새 이름을 지어 최초로 사용한 이는 1955년 개장 당시 소원면장이었던 박노익씨. 그 후 1958년 가수 박경원에 의해 '만리포사랑'이라는 노래가 불려지게 되면서 만리포라는 이름은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된다.

박경원의 '만리포사랑'이라는 노래는 반야월 작사에 김교성 작곡으로 되어 있는데, 송윤선씨가 편곡을 해서 '썬추리레코드'에서 취입을 했다. 당시 그 노래는 히트곡이 되어서 그 후 많은 이들의 애창곡으로 불리게 되었다.

1994년 8월 15일 건립된 '만리포사랑노래비'
1994년 8월 15일 건립된 '만리포사랑노래비'지요하
그로부터 36년 후인 1994년 만리포관광협회는 만리포해수욕장의 중앙이 되는 지점에다가 '만리포사랑노래비'를 건립해서 만리포를 '노래비를 가진 전국 최초의 해수욕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그로부터 11년 후인 올해 만리포관광협회는 또 한 가지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했다. 만리포해수욕장 개장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의 하나로 '만리포예찬시비'를 건립하는 일을 한 것이다.

'만리포예찬시비추진위원회'는 어느 유명 시인에게 시를 의뢰하지 않고 만리포예찬시를 널리 공모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 충남 땅에서 살고 있거나 충남이 고향인 등단 문인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리하여 총 70여 편이 응모했는데 심사위원회(진태구 태안군수, 나태주 김윤완 이태호 시인, 필자)의 심사 결과 천안의 여성 시인 박미라(53)씨의 '만리포연가'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박미라씨의 만리포예찬시는 태안의 서예가 림성만(52)씨의 글씨로 높이가 6m 10cm나 되고 폭이 3m 45cm나 되는 웅장한 돌에 새겨졌다. 무게가 30t에 이르는 이 거대한 비석은 해변으로 내려가는 중앙통 길목을 사이에 두고 '만리포사랑노래비'와 15m쯤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그리고 지난 1일 '만리포 개장 50주년 기념식 및 2005년 개장식' 때 '예찬시비 제막식'도 함께 거행되었다.

2005년 7월 1일 건립된 '만리포예찬시비'
2005년 7월 1일 건립된 '만리포예찬시비'지요하
1994년 '만리포사랑노래비'를 세운데 이어 올해 '만리포예찬시비'를 건립한 만리포관광협회 김봉영(金鳳永·63) 회장은 "노래비와 시비로 하여 만리포가 더욱 낭만적이고 문화적인 분위기와 풍모를 갖게 된 것을 스스로 기뻐한다"고 말한다.

노래비를 지니고 있는 해수욕장은 여러 곳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월에는 대천해수욕장의 분수광장에도 가주 윤형주의 '조개껍질 묶어' 노래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예찬시비가 세워져 있는 해수욕장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선조 세종 때 명나라 사신들을 전송하며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축원한 데서 이름이 유래한 만리포에 올해 웅장한 규모의 만리포예찬시비가 세워졌다. 이로써 만리포는 노래비와 시비를 함께 지닌 전국 최초 유일의 해수욕장이 되었다. 진정으로 만리포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꾼 자랑스러운 면모다.

나는 이렇듯 만리포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사람들이 고맙다. 노래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시비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을 한 사람들이 문인 처지에서 참으로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978년 태안해안국립공원이 탄생하면서 관련법에 묶여 여러 가지로 발전상 제약을 받아왔던 만리포는 2003년 국립공원에서 제외됨에 따라 새로운 활기를 얻게 되었다. 환경 훼손의 위험성이 없지는 않지만, 만리포를 가꾸고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에 탄력이 생기게 되었다.

2003년 7월 1일부터 8월 22일까지 만리포를 찾은 피서 인파는 160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2004년에는 151만 명이 찾은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올해는 약 2백만 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 동안 만리포를 찾는 사람들은 대략 28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만리포가 해안국립공원에서 제외되어 관련법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된 상황에서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잘 유지 보존해 더욱 낭만적이고 문화적인 해수욕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만리포 연가


박 미 라


멀어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마른 모래 바람이 가슴을 쓸고 가는 날이면
만리포 바다를 보러 오시라
오래된 슬픔처럼 속절없는 해무 속에서
지워진 수평선을 가늠하는 붉은 등대와
닿을 수 없어서 더욱 간절하다고
아득히 잦아드는 섬이 있다
누군들 혼자서 불러 보는 이름이 없으랴
파도 소리 유난히 흑흑 대는 밤이면
그대 저린 가슴을 나도 앓는다

바다는 다시 가슴을 열고

고깃배 몇 척 먼 바다를 향한다
돌아오기 위하여 떠나는 이들의 눈부신 배후에서
고단한 날들을 적었다 지우며 반짝이는 물비늘
노을 한 자락을 당겨서 상처를 꽃으로 만드는 일은
아무렴, 우리들 삶의 몫이겠지
낡은 목선 한 척으로도
내일을 꿈꾸는 만리포 사람들
그 검센 팔뚝으로 붉은 해를 건진다

천년 전에도 바다는 쪽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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