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나라당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등록 2005.07.13 09:09수정 2005.07.1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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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제안’을 놓고 고심하는 곳이 북한뿐일까? 아니다. 한나라당도 적잖이 고심하고 있다. ‘중대 제안’의 내용이 공개되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힌 반면 한나라당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민적 공감대와 투명성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이번 발표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투명성을 자신할 수 있을지 상당히 의문스럽다”며 “국회에 남북관계 발전특위가 설치돼 있고, 이를 통해 여야의 검토를 거치도록 한 것은 남북 교류와 지원에 있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칙적인 지적이지만 이점만 갖고 공세를 펼 수도 없다.

정부의 전격 발표에 대해 <경향신문>은 “협상의 일반적 수순과 달리 회담 전 선 공개”를 했다고 평했다. 정부의 발표가 오히려 파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정부는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설명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북 전력 공급이 ‘중대 제안’의 전부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되는 터이기에 투명성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당국자의 입을 빌려 “북한의 당면 문제는 에너지 부족뿐이 아닌데, 이것만 갖고 만족을 시킬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그러니까 더 주자”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그러니까 숨기는 게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일 수도 있는 보도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전력 공급이 ‘중대 제안’의 전부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핵심이자 전부”라며 모호하게 답변한 점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색하고 따지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의구심을 뒷받침할만한 정황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4차 6자회담의 결과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불가측의 상황에서 근거가 충분히 확보되지도 않은 채 섣불리 공세를 폈다가 “판을 깨려 한다”는 역풍을 자초할 수도 있기에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요인이 있다.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돌아온 후 박근혜 대표를 만나 경위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한나라당이 ‘퇴짜’를 놨던 전력이 있다. 이 자리에서 정동영 장관이 ‘중대 제안’의 내용까지 설명하려고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아무튼 한나라당으로서는 “성의를 다 하지 않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발을 잘못 디뎠다간 ‘발목잡기’ 역풍에 휘말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고심하는 배경이 ‘심증과 물증 사이의 간극’ 때문만은 아니다. 한나라당으로선 ‘근본 문제’에 해당하는 사안이 얽혀있다.

한나라당 혁신위원회는 당의 대북노선이었던 ‘전략적 상호주의’를 폐기했다. 대신 ‘상호공존’노선을 채택했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은 대북지원문제나 핵문제를 상호공존의 기조 아래서 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대 제안’은 한나라당이 ‘상호공존’ 노선을 채택한 후 처음 맞닥뜨리는 중대 사안이다. ‘오픈 게임’을 치를 여지도 없이 ‘본 게임’의 무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 추상적 어휘의 조합인 노선을 생동하는 정책으로 적용하는 데 있어 한나라당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은 당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다. 이른바 ‘합리적 보수’의 실체를 전 국민에게 드러냄으로써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느냐는 기로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얼마나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지는, 오늘 열리는 당 회의의 성격에서 확인된다. 당의 공식 입장을 정하기 위해 열리는 회의는 당 지도부 뿐만 아니라 국회 국방위와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의원까지 참석하는 최고‧중진 연석회의라고 한다. 그만큼 신중을 기하겠다는 뜻이다.

한나라당도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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