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력 공급 방안을 놓고 논란이 불붙고 있다. 논란은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다. 대북 전력 공급이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부터 기술적인 타당성 문제까지…. 이 중 언론이 가장 주목하는 문제는 ‘통제권’이다. 최악의 사태가 발생해 대북 전력 공급을 끊어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남한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6자회담 참가국과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정동영 장관의 발언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전력 통제권 문제에 가장 큰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는 곳은 <조선일보>다. “돈은 우리가 내고 통제는 6자 공동으로”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논조다. 정동영 장관의 발언은 “독자 통제권의 포기라는 반론에 부닥칠 것이 명백해 논란이 예상된다”면서, 그 논란의 핵심으로 “북핵 문제의 해결에서 우리의 입지를 6분의 1로 줄이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조선일보>가 ‘논리적 모순’을 지적했으니까 그 역측면, 즉 또 다른 논리적 모순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대북 전력 공급 방안을 발표했을 때 거의 모든 언론이 주목한 점은 북한이 그 방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에너지 주권’을 포기함으로써 경제의 대남 종속 현상을 심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전력 통제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점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남한이 임의적이고 일방적으로 전력을 끊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판이 확보돼야 북한이 전력 공급 제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정동영 장관의 발언이 ‘논리적 모순’에 빠졌다고 단정하는 것은 오류다. “북핵 문제 해결에서 우리의 입지를 6분의 1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핵 문제 해결 가능성을 6배 높이는” 방안으로 해석할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북한의 우방인 중국(더 나아가 러시아까지)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전력 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처럼 전쟁이 발생하는 상황이 아닌 한 북한으로선 전력 공급 중단 사태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언론이 던져야 하는 질문은 “북한이 과연 받을까”가 아니다. “왜 우리만 독박 쓰느냐”는 질문은 더더욱 아니다. 이 시점에서 던져야 하는 질문은 “어떻게 해야 북한이 받을까”이다. 단순화의 오류를 감수하고 말한다면, 전력 공급이 실현돼 북한 경제가 남한 경제에 종속되면 종속될수록 한반도 긴장은 완화된다. 우리의 입지가 ‘6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평화 기운이 6배 높아진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자. <조선일보>가 논란거리로 점화시키고 있는 사안이 하나 더 있다. “왜 카드를 미리 꺼내 보였느냐”는 점이 그것이다.
남한이 대북 전력 공급 제안을 미리 공개함으로써 우리가 “주도적 또는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졌”고 결국 6자회담은 “미북 양자협상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조선일보>가 문제 삼는 부분이다. 대북 전력 공급 약속을 확보한 북한이 “미국과 체제 보장 문제만 줄다리기하려 들 것”이고 이렇게 되면 남한은 ‘들러리’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읽고 또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이 주장을 펼친 사설의 다른 구절에서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6자회담의 큰 골격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다른 참가국들은 북한에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약속하는 것”이라면서 “현실적으로 체제 보장은 미국이 경제 지원은 한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런 분석대로라면 북한이 “미국과 체제 보장 문제만 줄다리기 하려 들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야 북한은 두 마리를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핵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남한이 대북 전력 공급 카드를 미리 꺼내 보인 것은 적절한 것이었다. 북한이 원하는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하나를 남한이 줬으니까 이제 미국이 성의를 보이라고 압박할 수 있고, 미북 양자 협상을 강제할 수 있다. 남한 내에서 뿐 아니라 미국, 더 나아가 국제 여론을 그렇게 끌고 가는데 더없이 유용한 카드다. 대북 전력 공급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한나라당이 제시한 3대 원칙 가운데 국제 공조 원칙에도 부합한다.
<조선일보>가 걱정해야 하는 건 남한의 ‘들러리’ 가능성이 아니다. ‘나홀로’ 논조가 불러올 ‘외톨이’ 가능성부터 짚어봐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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