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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서 그랬을까요? 그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돈이 없는 이유'를 댔습니다.
"언제는 1만원을 빌려 줬는데 나중에 연락 했더니 도리어 욕을 하더라,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간 사람도 감감무소식이 되더라, 빌릴 때뿐이고 다들 돌아서면 그만이더라"면서 저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내비쳤습니다. 그리고는 "어디 아는 사람한테 부탁 해 보세요"라고 별 효험도 없는 조언을 해 주었을 뿐입니다.
하루에도 수 백 명, 수 천 명의 사람을 대하는 그 여직원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 어린 여직원은 돈 만원을 잃은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의 무소식을 보며 그런 사람들의 의도성까지 의심하는 듯했습니다.
많아야 두세 번, 기 만원을 근거로 아예 (차비 빌려 달라는)사람들을 믿지 않기로 작정하게 된 그 여직원의 결정을 지지할 수 없는 내 심정이 착잡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1300원이 모자라 막차를 놓쳤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저는 매표관리사무실로 갔습니다. 관리사무실에서 나온 남자직원이 빌려 주었습니다.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더니 그냥 주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 분 역시 도움을 달라는 사람들에게 많이 시달린 사람 같았습니다. 여러 차례 거절을 하다가 떼(?)를 쓰는 경지에 이르게 된 제 부탁을 마지못해 들어주면서 돈을 되돌려 받을 생각을 포기하는 듯했습니다. 속는 셈 치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에게 '사람에 대한 믿음'을 되살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기회를 주신 것이라 여기게 됩니다. 제가 이 돈을 갚지 않으면 그 사람 역시 사람에 대한 믿음을 모두 놓아버릴지도 모릅니다. 나는 꼭 그 여직원도 찾아가서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믿음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그 여직원이 돌려받지 못한 돈 몇 만원을 제가 쥐어주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빌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낯선 사람이 제게 도움을 달라고 할 때의 여러 경우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랑 아무 관계도 없는 낯모르는 사람에게 조건 없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저를 가다듬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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