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음악가 4인의 감동 콘서트 '희망으로' 를 보고

등록 2005.07.14 14:23수정 2005.07.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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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희아, 테너 최승원 등 장애인 음악가 4인이 함께 하는 '희망으로!' 콘서트가 13일 오후 3시 대전 중구 대흥동에 자리한 대전평생학습관에서 열렸습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공연에서 네 사람은 위층과 아래층을 바늘 한 자루 꽂을 틈도 없이 꽉 들어찬 사람들의 영혼을 마구 흔들어 놓았습니다.

때로는 감미로운 노래로 청중을 격앙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들이 장애를 어떻게 넘어섰는지, 자신들이 어떻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었는지를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줄 때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흐르는 감동의 여울은 오래도록 굽이쳐 흘렀습니다.


대전 맹학교 여학생이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대전 맹학교 여학생이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습니다.김유자
맨 처음 콘서트의 문을 연 것은 대전맹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먼저 여학생이 나와 플루트로 A.드보르자크의 곡 '위모레스크'를 들려주었고, 다음에는 남학생이 나와 클라리넷으로 베토벤의 미뉴엣 G.메이저를 연주했습니다.

장내는 금세 숙연해졌습니다. 아마 다들 앞을 볼 수도, 악보를 읽을 수 없는 저 사람들이 저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비를 건넜을까를 생각했을 겁니다. 대체 저들은 몇 천, 몇 만 개의 마음의 강과 절망의 강을 건너 여기에 도착했을까요?

나는 휘날리는 음표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한숨과 눈물 냄새를 맡으려고 애썼지만, 끝내 그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할 뿐이었지요.

정신지체 아동을 위한 특수학교인 대전 혜광학교 아이들이 사물놀이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징을 치고 있는 아이가 제 아들입니다.
정신지체 아동을 위한 특수학교인 대전 혜광학교 아이들이 사물놀이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징을 치고 있는 아이가 제 아들입니다.김유자
다음은 정신지체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인 혜광학교 아이들이 사물놀이 '영남가락'을 연주할 시간이었습니다. 장구 둘에 북이 둘, 꽹과리와 징이 하나. 이렇게 6명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 아이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신명을 만들어낼 것인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아들이 혹시 박자라도 놓칠까봐 제가 더 떨었습니다


오늘 사물놀이를 연주하는 아이 중엔 이제 스무살 난 제 아들도 끼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거쳐 지금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11년 째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이지요. 벌써 몇 년 째 징을 맡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있지만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녀석은 뭐가 좋아선지 등장하면서부터 싱글 벙글 입을 다물 줄 모릅니다. 저러다가 혹시 박자라도 놓치는 것 아닌가 엄마의 마음은 조마조마하기만 합니다.

자식이 엄마의 마음을 들이차고 앉은 면적이 얼마나 크고 넓습니까. 정상적인 아이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장애아를 둔 엄마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식이 1급 장애인이면, 엄마도 덩달아 1급 장애인이 되고, 자식이 2급 장애인이면 엄마도 당연히 2급 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어느 한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지만, 오늘따라 더 바짝 긴장이 되는군요. "세훈아!"하고 마음 속으로 가만히 아들 녀석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녀석의 징은 장구와 꽹과리 소리 사이를, 북과 장구 소리 사이를 비집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갑니다.

연주가 끝나는 징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조마조마했던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사물놀이 가락이야 잘 모르지만, 살아온 눈치로 봐서 크게 틀린 대목은 없이 무사히 끝난 듯합니다.

가수겸 방송인인 박마루씨가 자신의 노래 '함께하는 행복'을 열창하고 있습니다.
가수겸 방송인인 박마루씨가 자신의 노래 '함께하는 행복'을 열창하고 있습니다.김유자
장애의 내용은 다를지라도 우리는 친구

이번에는 KBS 2TV '사랑의 가족' 프로에도 출연하는 가수 겸 방송인 박마루씨가 두 발에 목발을 짚고 나와서 '함께 하는 행복'이라는 노래를 씩씩하고 활기차게 불러줍니다. 그가 불어넣은 기(氣)가 객석에도 전달되었는지 사람들의 표정도 좀전보다 훨씬 생기가 넘쳐 납니다.

노래 끝내고 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듯한 이야기 솜씨도 보통은 넘었습니다. 그가 우렁찬 목소리로 장애인 친구들을 무대로 불러냅니다. 맨 먼저 무대로 나온 사람은 시각장애인 클라리넷 연주가인 이상재씨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인 이상재씨가  '살다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인 이상재씨가 '살다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김유자
그는 원래 '사랑하기 때문에'를 부를 예정이었지만, 다른 곡을 연주했습니다. 저로선 처음 듣는 노래였습니다. 나중에 박마루씨가 객석에 대고 무슨 곡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살다가'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SG 워너비라는 가수가 부르는 곡이더군요.

살다가 살다가 살다가 너 힘들 때 나로 인해 슬픔으로 후련할 때까지
태워도 태워도 태워도 나만타면 남김없이 태워도 돼 후련할 때까지 나 살다가 //나 살다가 ('살다가' 가사 일부)


나중에 최승원씨에게 들으니, 이상재씨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시각장애인 음악학박사라고 합니다.

이희아씨가 의자 앞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이희아씨가 의자 앞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김유자
이번에 박마루씨가 불러낸 사람은 장애인 피아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이희아씨였습니다. 희아씨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무대 중앙에 준비된 의자를 향해서 걸어갑니다. TV에서 볼 때보다 더 키가 작고 여려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의자에 거의 다가갔던 희아씨가 그만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자기 나이보다 성숙한 희아씨의 타인에 대한 배려

어머님이 황급히 달려 나와서 희아씨를 들어 의자에 앉혀 보지만 희아씨는 다친 다리가 몹시 아픈지 고운 얼굴을 찡그립니다. 그러나 청중들의 박수를 받고나더니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긋생긋 웃습니다. 21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자신보다는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희아씨가 존경스럽습니다.

이제 희아씨가 피아노를 연주할 차례였습니다. 어머님의 손에 들려서 피아노 앞에 앉은 희아씨는 아픈 발 때문에 페달을 밟지 못합니다. 할 수 없이 장은신 선생이 대신 페달을 밟아주고, 희아씨는 건반만을 누르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해서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연주했습니다.

나중에 최승원씨의 설명을 들으니 희아씨의 장애가 더욱 실감이 나더군요. 희아씨는 양손에 손가락이 2개씩 있는데 건반을 누를 때 필요한 손가락 관절이 하나도 없다더군요. 그리고 오른쪽 다리로는 폐달을 밟는데 그나마 무릎 이하로는 다리가 없답니다. 그러니까 희아씨의 피아노 연주는 온몸으로 하는 연주인 셈이지요.

태너 최승원씨가 '그라나다'를 부르고 있습니다.
태너 최승원씨가 '그라나다'를 부르고 있습니다.김유자
이번에는 테너 최승원씨가 나와서 원래 부르기로 한 '내 마음의 강물'이란 노래 대신 A.라라의 곡 '그라나다'를 들려주었습니다. 장애 청소년들이 장애의 삶을 극복하고 이 노래의 가사처럼 큰 인물, 큰 그릇이 되라는 뜻으로 불렀다고 하더군요.

이희아씨마저 꽃미남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최승원씨는 인물도 수려했지만, 이야기도 참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게 잘 했습니다.

이희아씨가 'Amazing Grace'를 부르고 이상재씨가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희아씨가 'Amazing Grace'를 부르고 이상재씨가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습니다.김유자
이번에는 이상재씨가 클라리넷을 불고 희아씨가 피아노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연주할 차례였습니다만, 희아씨는 다친 다리 때문에 그냥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대신 했습니다. 희아씨의 가늘지만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공기 중에 물결을 일으키더니 청중들 마음 속으로 가만히 파고들었습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놀라운 은총!
나같은 비천한 사람을 구원하셨다니 얼마나 감미로운 소리인가
나 한 때 길 잃고 헤매었으나, 이제는 찾게 되었고,
나 한 때 눈 먼 소경이었으나, 이제는 보게 되었네.(후략)


정말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진정 누구인가

위로 받아야 할 희아씨는 도리어 세상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사람들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사람들을 단숨에 한데 묶어내고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데 노래만큼 유용한 무기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박마루씨와 최승원씨가 '친구여'를 열창하고 있습니다.
박마루씨와 최승원씨가 '친구여'를 열창하고 있습니다.김유자
다시 박마루씨와 최승원씨가 무대 중앙으로 나와 함께 조용필의 '친구여'를 부릅니다. 두 분이 소리를 합쳐 부르는 노래는 각자 부르던 노래와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 줍니다.

최승원씨가 자신의 장애에 대해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엉덩이가 다리와 다리를 잡아줘야만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자신의 신체 구조로는 이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의 황금의 목소리가 그런 역경을 통과한 후에 얻은 것이라니 그의 노래가 더욱 감동스럽습니다. 이 감동을 오래도록 놓치고 싶지 않은데 콘서트는 벌써 막바지를 향해 가는지 최승원씨는 마지막으로 '마이 웨이(My Way)'를 부른다고 합니다.

(전략)
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And did it my way
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And did it my way

나는 많은 불행을 겪기도 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다네
그건 나만의 인생길이었네


그는 이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자신의 심경과 같다고 고백합니다.

최승원씨와 박마루씨가 바지를 걷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장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승원씨와 박마루씨가 바지를 걷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장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김유자
어디 노래를 다리로 부릅니까?

마침내 최승원씨가 박마루씨에게 "우리가 이 다리로 어떻게 버텨왔는지 여러분들께 보여주자"라고 제의합니다. 두 사람이 무대중앙에 서서 자신의 바지를 걷어 말라비틀어진 다리를 보여줍니다. 언젠가 기자와 한 인터뷰 때 최승원씨가 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어디 노래를 다리로 부릅니까?"

두 사람의 다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겐 절망을 노래할 시간이 없습니다. 생은 희망을 노래하기에도 너무 짧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크고 작은 절망에 미안할 뿐이었습니다.

출연자와 내빈, 청중이 하나되어 '사랑으로'를 부르고 있습니다.
출연자와 내빈, 청중이 하나되어 '사랑으로'를 부르고 있습니다.김유자
콘서트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콘서트에 참석했던 내빈들이 무대로 올라가 다함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 라 라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장애를 넘어 희망으로

콘서트는 끝났지만, 저는 감동으로 가빴던 숨을 고르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삶을 살아낸다는 것, 견딘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삶에 있어 희망처럼 큰 위안은 없다는 걸 생각했습니다.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다른 사람들의 어둠을 밝혀주는 이 4인의 음악가 앞에서 이제까지 내 자식의 장애만을 안고 고민해왔던 못난 제가 한없이 부끄럽고 왜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도 이제는 더 낮은 쪽으로 눈길을 돌려 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들과 함께 희망을 나누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장애인은 '틀린'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일 뿐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며 콘서트장을 떠나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희망으로 콘서트"에 대해 더욱 자세히 다음 카페 cafe.daum.net/hopeconcert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어제 넘어져 다리를 다친 이희아씨는 다리뼈를 많이 다쳐 금요일로 예정된  광주공연에 참가할 수 없으며, 앞으로 6주 동안 움직일 수 없다고 합니다. 이희아씨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희망으로 콘서트"에 대해 더욱 자세히 다음 카페 cafe.daum.net/hopeconcert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어제 넘어져 다리를 다친 이희아씨는 다리뼈를 많이 다쳐 금요일로 예정된  광주공연에 참가할 수 없으며, 앞으로 6주 동안 움직일 수 없다고 합니다. 이희아씨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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