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이 환경재앙 막을 수 있다?

세계 일부 환경운동가들 '핵 옹호'로 돌아서... 국내단체 "로비 때문"

등록 2005.07.14 18:10수정 2005.07.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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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세계적인 유력 환경단체 '지구의 친구들'은 믿었던 동료의 배신에 치를 떨어야 했다. 핵심 이사 중 하나인 휴 몬테피오레 전 주교가 블레어 총리의 핵 발전 확대정책을 옹호하는 글을 영국의 한 월간지에 기고한 것.

그가 핵 발전을 옹호하는 글을 기고할 것이라는 사실을 통보 받은 '지구의 친구들' 측은 몬테피오레 전 주교가 이사직을 사임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결국 그는 오랫동안 재직해온 이 환경단체를 떠나고 말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의 공동창립자인 패트릭 무어 역시 핵 발전 옹호입장을 표명한 뒤 그린피스를 떠났고,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인 생물학자 제임스 러브록 또한 핵 옹호입장으로 돌아선 뒤 환경운동권의 기피인물이 되고 말았다.

a 풍력발전 등 재생가능 에너지는 단위면적당 에너지밀도가 낮아 대도시나 중화학단지같은 대규모 전력수요처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딜레마다. 사진은 덴마크 남서부 해안의 해상 풍력발전단지

풍력발전 등 재생가능 에너지는 단위면적당 에너지밀도가 낮아 대도시나 중화학단지같은 대규모 전력수요처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딜레마다. 사진은 덴마크 남서부 해안의 해상 풍력발전단지 ⓒ Sandia.gov


핵발전 옹호로 '개종'한 환경운동가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환경운동가들에게 반핵은 하나의 종교이자 신앙고백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재론의 여지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나 다름 없는 변화다. 놀랍게도 이 저명한 환경운동가들은 핵 발전만이 지구의 환경재앙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현실적 대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들의 '개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최근의 급속한 기상이변사태와 이에 따른 환경대재앙. 이들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폐해가 매우 위중한 상황이고, 온난화의 원흉인 온실가스를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핵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핵발전소의 신규 건설이 가장 활발한 곳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하지만 녹색당이 주요 집권세력이고 환경문제에 민감한 유럽 각국 역시 온실가스 감축을 실현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핵 발전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핀란드가 금년 내에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시작하기로 확정했고, 프랑스는 2007년에 신규 원전 건설을 재개할 계획이다. 스웨덴, 벨기에, 독일 등은 이미 확정된 원자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 계획을 다시 검토하고 있으며, 부시 행정부 역시 현재 40년인 원자력발전소의 운전연한을 60년으로 늘리고 차세대 원자로의 설계에 착수하는 등 원자력발전 확대에 적극적이다.

프랑스의 투자은행 SG 코웬의 한 분석가는 13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원전폐쇄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두 가지 약속을 모두 지키려 할 경우 독일 생산시설의 3분의 1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독일이 결국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한 과거의 결정을 재고해야 할 상황에 처할 것이고 다른 나라들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론 주요 환경운동세력은 온실가스 감축의 대안으로 핵 발전이 부상하는 것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린피스의 핵 정책 연구가인 짐 리치오는 "핵 산업계의 심장에 말뚝을 박아넣고 싶은 심정"이라며 최근의 핵 발전 부활 움직임에 거칠게 반발하고 있다고 <와이어드>에서 전한 바 있다.

반핵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해온 국내 환경단체의 정서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운동연합 김연지 간사는 "온실가스 감축은 핵 발전이 아니라 태양광, 풍력, 소규모 자가발전 등 재생가능에너지의 개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핵 발전 역시 발전과정에서 적지 않은 공해를 뿜어내고 원료인 우라늄 또한 석유와 마찬가지로 한정된 자원이므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는 최근의 핵 발전 옹호 움직임이 세계 핵 산업계의 로비가 거세지면서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그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a 국내의 반핵정서는 여전히 완강하다. 사진은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영광 원자력 발전소 앞에서 시위 중인 주민들

국내의 반핵정서는 여전히 완강하다. 사진은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영광 원자력 발전소 앞에서 시위 중인 주민들 ⓒ 안현주


"안전도 100배 향상.. 제2 체르노빌 불가"

하지만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는 지표면에 고르게 분산된 상태로 존재하는 탓에 서울 같은 거대도시나 포항제철소처럼 한정된 지역에서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과소비하는 경우에는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SG코웬 측은 프랑스의 핵 발전소 1기가 생산하는 전력을 풍력발전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전 해안선을 따라 100미터에 한 기씩 촘촘하게 풍력발전기를 세워야 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는 총 59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핵 발전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또하나의 이유는 체르노빌 사태 이후 거듭된 기술발전으로 인해 사고발생확률이 거의 제로나 다름 없는 매우 안전한 원자로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웨스팅하우스의 AP-1000같은 신형 원자로의 경우 구형 모델에 비해 안전도가 100배 이상 향상돼 체르노빌 사태 같은 것은 기술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의 칭화대학 연구진이 개발 중인 신형 원자로 HTR-10은 흑연 코팅된 구슬형 핵연료를 사용하고 노심이 녹아내리는 위험온도인 섭씨 2천도보다 훨씬 낮은 섭씨 1600도에서 원자로를 가동한다. 또 냉각파이프를 쉽게 노화시키는 중수 대신 안정적인 헬륨을 냉매로 사용해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수를 배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칭화 대학 측의 설명이다.

중국은 이 신형 소형 원자로를 중국 대륙 곳곳에 수천기 이상 건설해 2050년까지 총 300기가 와트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검토중이다. 이는 현재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총량인 350기가 와트에 거의 육박하는 엄청난 규모.

하지만 원자력이 과연 이들의 주장처럼 경제적 대안인지 의심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수명이 다한 원자로를 해체하고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안할 경우 핵발전이 결코 경제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실제로 영국은 자국 내 노후 원자로의 폐기작업에 향후 100년간 500억 파운드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막대한 사후비용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경단체 인사조차 원자력발전을 여전히 매력적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에 투입될 간접비용을 감안할 경우 풍력이나 조력발전에 비해서도 오히려 더 경제적이라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문명 전멸위기... 핵에너지 눈 돌려야'

생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난 해 5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글에서 "핵 에너지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환경단체나 대중매체가 조장한 할리우드식의 비이성적이고 과장된 공포 탓이 크다"고 주장하고 "기상이변으로 바닷속으로 침몰할 위기에 직면한 세계 곳곳의 해안도시를 생각하면 핵 발전으로 인한 위험은 무시할만한 수준"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a 중국 칭화대학이 개발 중인 흑연 코팅 방식 핵연료를 사용하는 '페블베드' 원자로

중국 칭화대학이 개발 중인 흑연 코팅 방식 핵연료를 사용하는 '페블베드' 원자로 ⓒ MIT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와이어드>와 인터뷰에서 핵 발전이 온실가스 배출을 막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환경운동가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4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첫째,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고 재처리 시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것, 둘째, 체르노빌 참사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노후된 발전 시설을 보수할 것, 셋째, 핵 폐기물을 저장할 적절한 수단을 강구할 것, 넷째, 대량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우라늄 광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 등이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 해도 핵 발전소가 광범한 대중으로부터 기피시설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핵 발전의 르네상스가 가능할 수 있을까?

러브록 박사는 "언제 실현될 지 알 수 없는 미래의 에너지를 가지고 기약 없는 실험을 계속할 시간이 지금 우리에게 없다"며 "인류 문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안전하고도 당장 활용 가능한 핵 에너지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경고하고 있다.

환경단체의 반대나 세계 핵 산업계의 로비와 관계없이 교토의정서 조인에 따라 온실가스감축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각국 정부 입장에서는 당장 활용 가능한 최선의 대안으로 핵 발전을 눈여겨보고 있어 핵 발전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을 가능성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반핵입장이 환경운동의 시금석으로 자리잡다시피 한 상황에서 국내의 환경단체들이 이러한 새로운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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