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그린 나무그림

보길도에서 만난 해변의 그림들을 공개합니다

등록 2005.07.14 21:53수정 2005.07.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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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를 떠나기 위해 달리는 자동차 창문 사이로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옵니다. 이 바람을 이곳 사람들은 하늬바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름에 부는 하늬바람은 시원합니다.

바다가 그린 나무
바다가 그린 나무조태용
습하지 않고 상쾌해서 일하기 좋은 고마운 바람입니다. 요즘같은 장마철에 부는 바람은 제주도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입니다. 맞바람은 덮고 습기가 많은 바람입니다.


제주도에서 불어온다고 해도 모두 맞바람은 아닙니다. 제주도에서 불어와도 덥지만 습도가 낮으면 갈바람입니다. 보이지 않은 바람이지만 이름은 다양합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육지와는 다르게 바람과 조수에 민감합니다. 바다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바람과 조수를 따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길도 청별항으로 바로 가지 않고, 차를 월송리에서 오른쪽으로 돌려 중리 해변으로 간 이유는 순전히 하늬바람 탓일 것입니다. 그 시원한 바람은 해변에서 느끼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세우고 하늬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중리해변으로 나가봅니다. 아직은 피서객이 거의 없는 해변에는 사람 대신 바람만 가득합니다.

게가 그린 나비
게가 그린 나비조태용
시선을 모래사장으로 돌려 보니 여기 저기 알 수 없는 그림들로 모래사장은 커다란 캔버스로 변해 있습니다. 그림의 주인은 해변에 사는 아주 작은 게들이었습니다.

게들은 땅을 파서 유기물을 먹고는 흙을 토해 놓은 것입니다. 해변의 게들은 바닷가의 청소부입니다. 갯벌이나 모래밭의 유기물과 음식물 쓰레기, 죽은 동물의 찌꺼기를 먹어 치워 악취를 막고, 바닷가를 깨끗하게 유지 합니다. 또한 갯벌에 구멍을 뚫어 산소를 공급해 갯벌이 썩는 것도 막아줍니다. 더불어 해변에 꽃이나 나비, 새 비슷한 그림까진 선물합니다.

밀물이 들고 나서 빠지면서 바다가 그려놓은 나무그림도 보입니다. 나무그림이 줄지어 있는 곳은 숲처럼 보입니다.


게가 그린 봉황
게가 그린 봉황조태용
이제 곧 본격적인 피서 철이 되면 해변의 캔버스는 사람들의 발자국 그림이 더해질 것입니다. 연인들은 자연의 캔버스 위에 사랑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리운 이름을 손가락으로 썼다 지우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들의 유효기간은 하루를 넘기지 못합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다시 해변의 캔버스는 백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지가 된 캔버스는 새로운 그림들로 다시 채워질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과정을 해변은 수백, 수천, 수만 년을 되풀이 했을 것입니다. 자연의 캔버스 위에 그린 그림은 다음날이며 새로워지고 새롭게 태어납니다. 지워지기에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게가 그린 해바라기
게가 그린 해바라기조태용
그러나 인간이 자연위에 그린 그림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건축물과 도로, 온갖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공장들. 인간만을 생각하고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욕망의 그림들은 자연 위에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쌓여 지구를 병들게 합니다.

인간에게는 너무 큰 붓이 쥐여져 있었습니다. 그 붓으로 인간은 지구위에 욕심대로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 그림들은 자연과 조화롭지 못한 인간만을 생각한 그림이었습니다.

바다가 그린 숲
바다가 그린 숲조태용
지금 우리에겐 게와 바다가 그린 그림처럼 자연과 조화로운 생명의 붓이 필요합니다. 하늬바람은 여전히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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