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교육에 경쟁 도입한 건 '교육인적자원부'

서울대 입시 파동,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 대처를

등록 2005.07.16 11:54수정 2005.07.16 15:02
0
원고료로 응원
이전에 학내 민주화가 상당히 잘 이루어졌다는 평을 받는 한 사립 대학교에서 신임교수 채용 때 적용하는 평가 기준을 보고 상당히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립대학들에 비해 상당히 민주적인 절차를 잘 갖추었다고 할 수 있는 그 대학의 신임교수 평가 방식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울대학교 출신 지원자에게는 다른 대학 출신 지원자에 비해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한다는 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 그러해야 되느냐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누구에게서도 그에 대한 해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모두에게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땅의 최고 지식인 사회라고 할 만한 대학 교수 사회에서, 더구나 그토록 민주화되었다는 대학교에서, 이처럼 노골적인 학벌 차별이 존재하며, 더구나 그것이 당연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래도 그중 민주화되었다는 대학이 이 정도 일진대 다른 대학이나 기업 등의 사정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땅의 대다수 대학이나 기업 등에서 인사 채용 때 서울대학교 출신은 단지 그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대학 출신자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얻는다는 것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사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그것은 대학 입학 당시에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다른 대학 학생들보다 몇 점 더 높다는 것뿐입니다. 대학 입학 후 십수 년, 또는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어떻게 공부했느냐는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판정은 이미 오래 전에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오직 입시를 위한 교육 풍토 속에서 익힌 지식으로, 단 한 번의 시험에서 조금 나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평생의 프리미엄으로 따라다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도 평생 별 볼일 없는 둔재로 낙인찍히는 이런 현상이야말로 우리 나라 대학의 서열주의와 학벌주의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줍니다.

서울대 2008년 입시안 파동, 정부가 낳았다

지난 6월 27일 발표된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중시하겠다는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안을 놓고 그동안 정부와 서울대간에 격렬한 설전이 오갔고, 이를 둘러싼 국민 여론도 들끓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를 대하는 정부와 서울대 관계자들의 태도는 모두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허용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또는 그것을 어느 선에서 통제해야 하느냐 하는 식으로 당면한 문제에 대한 미봉책을 찾기에 급급할 뿐, 이런 사태를 몰고 온 지금까지의 잘못된 교육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대책 마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번 서울대 입시안 파동 사태는 필시 지금까지 정부가 펼쳐 온 교육정책이 낳은 필연적 결과물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역대 정권은 지금까지 한결같이 전국의 대학을 일렬로 줄 세우는 일에 앞장 서 왔습니다. 한 번의 시험 성적으로 모든 학생의 서열을 매기는 입시정책이 그러했고, 대학들에 순위를 매겨 엄청나게 차별적으로 지원하는 차등지원 정책이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이전의 권위주의적인 군부 정권 시절에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후 소위 민주화되었다는 정권들 아래서 더욱 강화되어 온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를 완전히 장악하여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논리와 가치를 배경으로, 우리 교육계에서도 오직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아래 대학에 일렬로 서열을 매기고, 소위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리에 따라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을 차등적으로 집중 지원하는 정책이 강화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비단 대학간에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학문 분야에도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그 동안 여러 학문 분야 중에서도 소위 경쟁력이 있는 분야는 집중 지원하고 그렇지 못한 학문 분야는 도태시킨다는 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우리 정부가 얼마나 신자유주의적인 경쟁 논리에 사로잡혀 교육정책의 틀을 짜 왔는가는 우리 나라 교육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의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점만 보아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실 우리 나라 교육정책의 천박성을 이처럼 한 마디로 나타내는 주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야말로 국민을 고귀한 인격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경제 성장과 발전을 위한 '자원'으로만 취급하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교육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명칭이 아닙니까?


근본에서부터 이렇게 인간을 그저 하나의 유용한 자원으로 간주하는 관점에서 수립된 교육정책이란 것이 올바른 인간을 기르고 보다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방향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 될 거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교육에 경쟁 논리 도입한 건 '교육인적자원부'

이런 이념에 걸맞게 우리의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은 산업'이라는 모토 아래 경쟁력 있는 '산업체'와 '산업분야'만을 골라 집중적으로 육성하려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소위 경쟁력이 별로 없는 '산업체'와 '산업분야'인 '지방대학'과 기초학문 분야는 점차 도태되고 고사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소위 '지방대학'이 경쟁력이 별로 없게 된 것이 누구의 탓입니까? 그 주된 책임이야말로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엄청난 차별 정책을 펼쳐 온 정부가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서울대학과 지방의 다른 국립대학들만 비교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정부가 서울대학에 편중 지원한 인력과 시설과 재정은 다른 국립대학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지방 국립대학을 나왔거나 현재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참고 있어서 그렇지, 그렇지 않다면 요즘 유행하는 '헌법소원' 감인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와 이유로 모든 국민이 함께 내는 세금을 가지고 서울대에만 그토록 엄청난 지원을 하고 특혜를 베푸는 것입니까? 어째서 똑같은 국립대인데도 단지 지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토록 엄청난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까? 바로 이런 차별 정책이야말로 오늘날 서울대를 정점으로 극복할 수 없을 만큼 벌어져 있는 대학 간의 서열을 불러온 주범입니다.

또한 교육부의 논리에 따라 소위 '잘 나가는 산업분야'와 '돈 안 되는 산업분야'라 할 수 있을 교육 분야들은 어떻습니까? 정부는 역시 경쟁력 논리를 앞세우며, 지금 당장 '돈이 되는 분야', 지금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분야만을 집중적으로 지원 육성하고, 그렇지 못한 분야들은 대학사회로부터 퇴출시키겠다는 정책을 밀어 붙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최근 정부는 학교별 취업률은 물론이고 각 학과별 취업률 등도 완전히 공개하는 정책수단 등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진정 대학사회를 하나의 산업체 또는 직업훈련소로 만드는 정책으로서 우리 정부와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철학과 일치하는 정책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백년대계라는 교육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교육적 결과는 참담하고 우려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 결과는 대학의 본령이어야 할 기본적인 학문부문들의 황폐화입니다.

이번 기회에 근본적 교육쇄신 필요하다

교육이라는 것이 어찌 지금 당장 돈 되는 분야에 곧바로 투입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인적자원을 만들어 내는 일이겠습니까?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그를 위한 학원을 만들거나 해당 기업체 등에서 별도의 기술 교육을 시키면 족합니다. 원칙적으로 대학은 튼튼한 기본을 갖춘 인재를 길러 앞으로 눈부시게 발전해 가는 각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능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섭취하면서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실용적인 학문 못지않게 '돈 안 되는' 기초적인 학문분야와 교양분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동안 과연 그런 교양과 기초학문 분야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지원을 했습니까? 한 나라의 교육부라는 데서 할 일이야말로 바로 이런 분야를 적극적으로 살리고 지원하는 일일 텐데도 우리의 교육정책은 그 반대입니다.

이처럼 정부의 교육철학과 교육정책 자체가 모든 대학과 학문 분야에 서열을 매겨 차등 지원하는 것일진대, 어느 대학이 자신의 서열 등급을 높이려고 기를 쓰지 않을 것이며, 어떤 사람이 기를 쓰고 한 층이라도 더 높은 서열의 대학으로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그 누가 서열에 따라 각 대학 출신자들을 달리 취급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서울대학교가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교육함으로써 최고의 서열 등급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이런 교육정책과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대입고사를 어떠한 형태로 바꾸더라도 서울대를 비롯한 소위 일류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 준비만이 우리의 초중등 교육 전체를 좌우할 것임도 분명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서울대 입시안 파문에서 통합형 논술고사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는 당장의 입시문제와 관련해서는 하나의 중요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리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위에서 지적한대로 정부의 교육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어찌어찌 문제를 봉합한다 해도, 다음에 또 서울대가 다른 입시안을 내놓으면 또 다시 온 나라 온 국민이 홍역을 앓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야말로 미봉책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입니다.

대학간·학문간 서열·학력 차별 해소

그리고 그 근본적인 해결 방향은 이미 얘기한 대로, 전력을 다해 대학간, 학문간의 서열 등급을 해소하고, 학력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적 경쟁의 논리를 내세워 오히려 서울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을 집중 지원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논리를 자꾸만 강변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진정한 교육의 논리를 떠나 그들이 말하는 경쟁의 논리로만 따진다 해도, 그것은 그리 효과적인 '전략'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토록 엄격한 서열구조 속에서 그토록 엄청난 차별적 지원을 받아 왔는데도 서울대 등이 세계적인 대학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그런 진실을 웅변합니다. 우리 학문과 교육의 경쟁력은 지금까지의 잘못된 정책과는 반대로, 오히려 각 지방에 있는 대학들을 골고루 지원하면서 각자의 특색을 살려 나가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초적인 학문분야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학벌에 의한 차별이 사라지도록 하여 대학의 교육이 정상화 되도록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그 동안 뜻있는 여러 사람들이 서울대 학부의 폐지와 대학원 대학으로의 전환, 국립대를 통합한 신입생의 선발과 배분 등을 포함한 많은 의미 있는 정책들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러한 제안들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토론을 통해 오늘날 이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른 교육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계나 언론계를 포함한 시민사회에서도 아직은 이처럼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형편입니다. 정부는 당장 눈앞에 닥친 서울대 입시안으로만 국민들의 눈을 돌리게 만들지 말고 잘못된 교육정책의 틀부터 새로 짜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4. 4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5. 5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