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 돈으로 노트북 사세요~"

아들이 4년 넘게 저축한 통장을 건네 주었습니다.

등록 2005.07.17 14:55수정 2005.07.1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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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아들아이는 우리집에서도 소문난 구두쇠입니다.
저는 아이들 용돈을 일주일 단위로 주고 있는데,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6000원을, 아들아이는 5000원을 주고 있습니다.


명절이거나 아니면 오랜만에 만나는 외할머니, 이모, 외삼촌으로부터 받는 용돈의 규모는 딸아이가 한살 위라는 이유로 아들아이보다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항상 딸아이는 용돈이 부족해서 절절 매는데 비해, 아들아이의 지갑에는 얼마간의 돈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아들아이가 짠돌이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또 아들아이가 집에서 기르고 있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톱밥이나 젤리를 살 때에도 자신의 용돈으로 해결하고 있어서, 가끔은 제가 은근슬쩍 별도의 용돈을 지원해 주기도 합니다.

조금은 낡아 보이는 아들의 통장입니다.
조금은 낡아 보이는 아들의 통장입니다.한명라
그런 아들아이가 며칠전 저에게 자신의 저축통장을 내밀면서 엄마의 노트북을 사는데 보태라고 했습니다.

2001년 5월 9일에 개설된 그 통장은, 설날 어른들께 받는 세뱃돈이나, 오랜만에 친척들에게서 받은 몫돈을 저축하라고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제가 만들어 준 통장이었습니다. 엄마가 준 용돈은 그때 그때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 아이들의 용돈으로 큰 금액이다 싶은 파란 빛깔의 지폐는 은행에 저축하게 하였더니, 이자를 포함하여 85만3249원이라는 돈이 아들의 통장에 들어 있었습니다.

2001년 5월 9일에 만든 아들의 통장입니다.
2001년 5월 9일에 만든 아들의 통장입니다.한명라
지금까지 지켜 본 바에 의하면, 소문난 구두쇠 아들로써 저축통장을 엄마에게 건네 주기까지 대단한 결단이 필요했을 터인데도 아들아이는 전혀 아깝지 않다는 표정입니다.


이렇게 아들아이가 저에게 선뜻 노트북을 사라고 돈을 준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달 초, 사무실에 있는 저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의 사무실 홈페이지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사무실에서 얼마든지 편리하게 처리하는 등기부등본 열람도 하지 못해서 그 불편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집 컴퓨터와 사무실 컴퓨터를 5년이 넘게 관리해 주시는 사장님에 의하면, 치료가 제대로 안되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컴퓨터에 소중한 자료가 없느냐고 묻기에, 별 생각없이 그렇다고 대답을 했더니 저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파일들을 깡그리 삭제 하고 말았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새로운 기사로 올리려고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을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들은 모조리 삭제를 해 버렸던 탓에 애써 촬영한 사진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게 되어 아쉬움만 남겼습니다.

거기에다 집에 있는 컴퓨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마침 아이들의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어서 집에 있는 컴퓨터는 애써 수리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 고장은 그 불편함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 남편이 "요즘 노트북 값이 많이 내렸다고 하던데, 마누라 컴퓨터를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노트북으로 바꾸고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집으로 가져 갈까?"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집에 있는 컴퓨터는 2001년도에 마련했는데, 가끔 집으로 퇴근한 후 사용하려고 하면, 사무실 컴퓨터에 비해서 그 처리 속도가 너무 늦어서 사용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기기도 했습니다.

엄마에게 노트북이 생긴다면, 지금 엄마가 사용하고 있는 1년전에 마련한, 빠른 속도의 사무실 컴퓨터가 자기 차지가 될 수 있다는 빠른 계산속에서 아들아이는 아낌없이 자신을 통장을 저에게 내밀었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한번도 인출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한번도 인출해 본 적이 없습니다.한명라
엄마에게 통장을 건네주고서 아들아이는 "엄마~ 노트북 알아 보셨어요? 언제 사실 거예요?"하고 몇번이나 확인을 합니다.
"글쎄~ 요즘 노트북 값이 많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승완이가 준 돈으로는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아빠께서 잘 알아봐 주시겠지."
"빨리 사세요~ 그래야 엄마가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를 많이 올릴 수 있잖아요~"

비록 아들이 빠른 속도의 엄마 컴퓨터가 탐이 나서 자신의 저축통장을 건네 주었다 해도, 저는 그런 아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고 대견합니다.

그것은 엄마에게서 받은 용돈마저도 결코 허술하게 사용하지 않는, 아들이 꼼쟁이 기질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장을 개설한 이후, 이제까지 단 한번도 인출한 적이 없는 아들의 통장을 여러 번 만져보며, 가슴 뿌듯한 행복을 마음껏 느껴보는 저는 고슴도치 엄마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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