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대통령 자질 갖췄지만..."

[쟁점인터뷰] '정치인' 김진애가 평가한 박근혜 리더십

등록 2005.07.18 08:24수정 2005.07.1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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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건축가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

건축가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치권에 발을 디디면서 '건축가 김진애(52·서울포럼 대표)'를 가장 골치 아프게 했던 것은 "다시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전문가'인 그가 정치권에 들어와선 '여성정치인'이란 꼬리표를 달아야 하기에 처음엔 "싫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총선 열린우리당의 공동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고, 비례대표 아닌 지역구(서울 용산) 출마를 자청했다.

김진애는 여성에 관해 매우 발랄한 주장을 해왔다. 책도 많이 썼다. 한마디로 그의 모토는 "배우자, 자라자, 평생토록!" 그는 현실론자다.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정치공학에 휘둘리지 않는다. 다만 진화를 주창한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도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진화하는 것!" 이를 가리켜 '메타우먼'이라 칭했다.

그런 만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도발적이다. '독재자의 딸'로 몰아세우는 열린우리당의 비판에도 선을 긋는다. 김진애는 2년 전 월간 <말>에 기고한 글에서 "박근혜가 정치인으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사상 여성 지도자들을 단순화 시켜본다면 아주 젬병이거나 아주 탁월한 양극단 중 하나였다, 자기의 과거 덫에 갇혀 있던 여성들은 한을 푸느라 젬병이었고, 과거의 덫을 더 큰 비전으로 치환했던 여성들은 탁월한 지도자가 되었다"며 "박근혜는 어느 쪽일까"라고 판단을 유보했다.

"박근혜, 박정희 시대의 동조자로 보기 어려워"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당시 박근혜는 이회창 전 총재의 '독재'에 반기를 들고 당을 뛰쳐나가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지금은 한나라당의 당대표가 된지 1년이 지났고 '박근혜 대세론'이 형성될 정도로 당내 입지도 탄탄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김진애에게 물었다. 박근혜가 대통령감인가?

"대통령감이라고 본다. 공인으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다. 통합, 미래, 약속 등 공인(공공) 마인드가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을 한다. 안으로는 홍준표에게 혁신위원장을 맡긴 것이 그렇고 밖으로는 호남을 향한 제스처가 그렇다. 또 '행정도시특별법'에 찬성한 것도 지방균형개발이라는 대승적 행보였다. 그런데 소외계층에 대해선 부족하다. 선거 때는 시장상인들과 농민, 서민들에게 인기가 좋지만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감성이 아닌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부자정당'의 틀을 깨는 큰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반면 그는 이명박 서울시장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공인으로서 자세가 안되어 있다"며 "서울공화국의 독재자"라고 평했다. 오히려 박정희 시대를 승계하는 건 이명박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은 의사결정과정을 독점하고 있다. 서울시의회를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다. 청계천, 뉴타운, 행정도시 등 다른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 박정희 세대의 마인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떤 시대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데 박근혜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동정적인 액세서리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박정희 시대의 완전히 동조자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명박은 70, 80년대 박정희와 함께 커왔다. 바로 재벌경영의 마인드다."

김진애는 "박근혜가 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적이 잘해야 정치판 전체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의 상대로 박근혜가 낫고 그래야 정치가 한 걸음 나아간다"고 내다봤다.


"'유신공주' 표현 안쓰고 싶지만..."

a 건축가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 인터뷰.

건축가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 인터뷰.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하지만 여기까지. 박근혜가 제1야당의 대표로서 상당한 '실적'을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으로 가기 위해 더 큰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못박았다. 김진애 당시 열린우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총선 직전 한나라당 '구원투수'로 나선 박근혜 대표를 향해 그를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다음의 3가지를 당부했다. ▲아버지 시대의 정치적 자산에서 홀로 설 것 ▲과거를 제대로 직시할 것 ▲대변인 입조심시킬 것.

'큰 정치인'으로서 배포를 보여달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실망스럽다. 박 대표가 열린우리당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유신공주'라 불리워지는 것에 대해 김진애는 "이를 반박할만한 행보를 보이지 못한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다"고 봤다.

"개인적으로 나는 '유신공주'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 과거나 계급을 통해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면 미래지향적으로 볼 수 없다. 또한 '공주'라는 말은 여성비하적 표현이다. '공주'라는 호칭에는 상대를 약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박근혜는 '공주과'를 극복하기 위한 모습을 보여 주었는가. 나는 의심하는 쪽이다. 가령 퍼스트레이디로 있었을 때 왜 아버지에게 직언하지 못했나. 반성할 일이다. 그리고 정치권에 복귀할 때 대구로 출마했다. 아버지의 정치적 고향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출마했으면 달리 보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주과'인 데가 있다."

또한 과거사 문제도 '사과를 했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박근혜의 역사의식, 정의의식을 묻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사법의 통과과정에서 보인 신경질적인 반응은 매우 한심해 보였다"고 꼬집었다. 특히 "아버지 시대에 상처받은 민주인사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마음 아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공학적으로도 큰 그릇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김진애는 '용인술'의 문제를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전여옥 대변인의 유임과 김기춘 의원의 여의도연구소 소장 임명이다.

"당내에서조차 인기 없는 대변인을 계속 곁에 두고 있고, 대다수가 우려하는 김기춘을 싱크탱크 수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면서 '인의 장막'에 갇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미래, 통합, 지역탈피 등의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 입장에서 소장파와 확실한 연대의 고리를 갖지 못하는 것도 의문이다. 측근정치를 안하겠다는 것은 좋지만 참모정치는 필요하다. 함께 뒤엉키면서 명분과 이념으로 뭉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치인은 좋은 명성에 의해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논쟁적 질문을 가차없이 받아넘겨야 하는데 박근혜는 쌍방향적 반응이 안 나오는 스타일이다. 대중적 기반을 너무 믿는 게 아닌가 싶다."

"전여옥 대변인 보면 차지철 실장 떠올라"

김진애는 전여옥 대변인을 향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차지철 경호실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현 대변인은 우리나라 정치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안된다, 한나라당의 격은 물론 박근혜 대표의 격을 높이는데 도움이 안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반면 명분 없는 반박세력의 비토 행위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은 박근혜보다 "정치공학적 센스"가 있다고 평한다. 이명박은 기본적으로 '각'을 세워 성공한 인물이다.

종합하면 박근혜 만큼 차기 주자들 중에 '정치적 자산'을 지닌 사람이 없고, 또 제1야당 대표로서 상당한 실적도 거뒀지만 아직 '홀로서지' 못했다는 것이 김진애의 평가다. "늘 민생과 국익을 얘기하지만 대북관계, 경제, 양극화, 지역주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큰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박근혜의 '한계'를 패션에 빗대 설명했다.

"박근혜 패션을 보면 조금 바꾸려고 하다가 다시 돌아가곤 한다. 그것과 비슷하다. 다르게 해보고자 했다가 그 머리에 그 패션으로 돌아간다."

그는 지금이 '적기'라고 말한다. "약간의 승세가 있을 때 오지랍을 넓혀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그 사이 박근혜가 큰 정치인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자기의 과거 덫에 갇혀 한을 푸느라 젬병"인 여성정치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노무현, 큰그림 그리는 '반보 빠른' 정치인... 소통 약해"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는 "왜 나에게 박근혜 리더십을 묻냐"고 물어 기자를 당혹케 했다. 그 이유로 "박근혜 대표 입장에서 보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선 '본격정치인'과 '예비정치인'이라는 '격'의 문제가 있고, 또한 여자가 여자를 말하는 방식은 서로에게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 남성정치인이 여성정치인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풍토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라나는 정치인'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검증이 필요한 것 아니겠냐고 팔을 걷어 붙였다.

김 대표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김수현과 셰익스피어, 대처와 마키아벨리, 강금실과 고건, 황진이와 피카소 등을 짝지워 그들의 매력을 비교·연구한 <남여열전, 파트너일까 라이벌일까>란 책을 내기도 했다. 내친 김에 '노무현과 박근혜'를 묶어 보았다.

"정치 리더십은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있다.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가? 이 점에서 보면 노 대통령이 비판을 받음에도 큰 그림을 그리는 정치인이라는 데는 의심할 바가 없다. 과제와 방향을 잘 짚어낸다. 이 점에서 박근혜 대표는 늦다. 반면 노 대통령은 반보 빠르다. 빠르게 나가는 경우 소통이 중요하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소통이 약하다. 설명을 너무 안한다.

노 대통령처럼 구조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는 경우 굉장히 친절한 설득이 수반되어야 한다. 노 대통령이 굉장히 대중적인 어휘를 가지고 있음에도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균형개발이나 교육, 지역주의 탈피 등에 대해 국민은 금방금방 이해가 안된다. 반면 박 대표는 단순한 것을 지루할 정도로 반복한다. 사실 박 대표가 더 소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박 대표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리더는 소비자(국민)에게 뿌듯함과 즐거움을 줘야 한다. 최고의 리더십은 대중들이 저도 모르게 비슷한 마음을 갖고 다같이 함께 하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환경적으로 어려운 국면이다.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단계다. 모든 분야의 리더들이 어렵다. 수직적인 리더십에 대한 미련도 남고 수평적 리더십에는 훈련이 안되어 있다. 어려운 변혁기에 '희망의 사인'을 보여주지 못하면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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