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과 동포애를 나누고 있는 백현진 씨백현진
경남 마산시 창포동에 사는 백현진 씨. 올해 40대 초반의 그녀는 악성간경화 판정을 받고 투병하는 환자다. 지금도 매달 서울의 대학병원을 정기적으로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 감기만 걸려도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그녀는 한때 이식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선고를 받기도 했으나, 다행히 요즘 들어 많이 좋아진 상태다.
그런 그녀가 로버트 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전시기획사를 운영하며 틈틈이 지역 청소년상담실에서 봉사하던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아이들과 '애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대화는 로버트 김 사건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조국 때문에 한 순간에 자신이 쌓아온 명예와 부,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었건만,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한 로버트 김과 같은 애국자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한 아이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우리에게 어떤 명분을 내세워 애국을 하라고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그녀는 비록 성치 않은 몸이지만 '로버트 김 후원회'에 가입하여 그의 명예회복과 정상적 사회복귀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건강이 허락되는 대로 모임에 참석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고, 로버트 김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내며 용기를 북돋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는 인터넷 카페 '로버트 김을 위하여(http://cafe.daum.net/4robertkim)'의 운영자를 맡아 우리 기억 속에서 로버트 김과 그의 사건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백씨는 "로버트 김은 이제 우리에게 어느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며 "어른들이 후세들에게 조국을 위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녀와 로버트 김의 가족들은 지금도 지난 설날을 잊을 수 없다. 민족 고유의 명절을 맞아 백씨는 로버트 김에게 한과세트를 선물했다. 아무래도 오랜 외국생활에 한국의 전통음식이 그리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 | | 로버트 김이 백현진 씨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 | | | "사랑에 감동하면서 설날을 의미있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 | | | 감사하신 백현진 자매님께
먼저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건강도 여의치 않으신데 저희들까지 잊지 않으시고 설을 맞아 이렇게 좋은 선물을 보내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더욱이 고향 특산품인 한과를 받게 되어 더 큰 의미가 있었으며, 한국의 명절을 잊고 사는 저희들은 한국의 맛을 다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저께(2월 7일) 보내주신 선물을 받았으니 한국 설을 맞이하는데 정말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러한 한과가 너무나 비싸서 자주 사 먹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지난달에 저의 집사람과 한국 식품점에 갔다가 한과(보내주신 것과 똑같은 것) 한 팩을 사게 되었는데 어찌나 비싼지 다음부터는 사지 않기로 했거든요. 너무나 비싼 것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내주신 식탁보와 예쁜 카드도 잘 쓰겠습니다. 참 아름다운 한국 특산품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백 자매님의 사랑에 너무나 감동하면서 금년 설날을 의미있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리오며 더욱 건강하시기 바라옵고 우리 꼭 만나 뵙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옵고 하나님의 축복이 자매님에게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005년 2월 9일 / 로버트 김 올림. / 정리=김범태 | | | | |
며칠 뒤 그녀의 소포를 받아든 로버트 김은 깜짝 놀랐다. 얼마 전 그는 아내와 함께 인근의 한국 식품점에 갔다가 한과세트를 보고는 가격이 너무 비싸 부담스런 마음에 다음부터 사지 않기로 하고 쓸쓸히 발길을 돌린 터였다. 더구나 백씨가 보내준 한과세트는 그날 부부가 본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 그녀의 세심한 마음에 감동한 로버트 김 가족들의 고마움은 백씨에게 보낸 그들의 편지에서 잘 묻어난다.
로버트 김은 그녀의 이런 사랑이 고맙기만 하다. 그는 "어디선가 우리를 지극히 생각해 주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에 큰 힘과 용기를 얻는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꼭 만나고 싶다"고 희망했다. 그는 백씨의 건강을 염려하며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미안하다"면서 "몸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만나게 되면 인사라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로버트 김에게 감사해한다. 백씨는 "선생님을 돕겠다는 생각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결국 내가 더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다"며 "나야말로 로버트 김 덕분에 더 많은 행복을 느꼈고, 좋은 이웃들을 만나는 복을 받았다"고 미소 지었다.
다행히 그 사이 병세도 많이 호전된 백 씨는 "자신이 더 갑갑하고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내게 힘내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준 로버트 김의 응원이 엄청난 힘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잃었던 건강을 하루 속히 되찾아야 겠다는 의지를 심어 주었다는 것이다.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로버트 김과 생명의 끝자락에서 삶의 새로운 의지를 불태우는 한 중증환자의 동포애는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으며 새로운 희망으로 꽃망울 맺고 있다. 이들은 서로가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 | 석방 한 돌 다가오는 로버트 김 근황은?... 한국방문 여전히 미지수 | | | 내장서 혹 발견 제거치료 받아 ... "고국의 인정 맛보고 싶다" 희망 | | | |
| | ▲ 교도소 복역 중 가족들과 함께한 모습. | | | 로버트 김은 오는 27일로 석방 한 돌을 맞는다. 출소를 앞두고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가택수감(home confinement) 기간까지 포함하면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어느덧 1년을 넘어섰다.
건강보험이 없기 때문에 종합검진은커녕 오랫동안 진찰다운 진찰을 받아보지 못한 로버트 김은 최근 후견인들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그의 위와 대장에 혹이 발견되어 이를 떼어내는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종양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암으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는 것이 의사의 설명이었다.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은 없다지만 그는 간염치료를 위해 다음 달쯤 다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로버트 김은 평소에도 고혈압으로 약을 계속 복용해 왔으며, 의료진으로부터 운동처방을 받기도 했다.
그는 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징조인지 예상치 않던 곳에서 고장이 생겨 여러분들에게 염려를 끼치게 된다"면서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운동이나 건강관리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석방 한 돌을 즈음해 19일 아침 기자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여러분을 하루라도 빨리 만나 뵙고 싶다"고 인사한 로버트 김은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말로 그간의 감회를 대신했다. 보호관찰의 족쇄가 어서 속히 풀렸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만끽하고 있다는 그는 "손녀의 재롱도 보고 마음껏 웃으면서 지낼 수 있으니 오랜만에 사람 사는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그동안 그와 가족들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로버트 김이 가택수감 생활을 시작한 지 사흘만에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졌고, 막내딸 레슬리 씨가 학위를 마치고 아버지의 축복 속에 결혼을 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국민성금으로 마련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감찰원의 허가를 받아 애리조나에 살고 있는 큰딸의 집에 방문한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집을 찾는 일상적 일도 여전히 제약과 구속이 많이 따르는 그에게는 힘들고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호관찰 기간이 2년이나 더 남아 있는 그이기에 한국 방문 역시 언제가 될는지 아직까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고국을 다시 찾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던 그의 목소리가 "그 때까지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부분에서 짐짓 흐려졌다.
석방에 즈음해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를 펴내기도 했던 그는 요즘 들어 그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자신이 어떤 생활을 했는가를 담은 옥중수기 형식의 글을 쓰려 준비중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와 역사에 어떠한 의미를 남길 수 있을 것인지는 개인적으로도 의문이라며 속 깊은 고민을 숨기지 않았다.
20여분간의 통화를 마치며 그는 "그동안 여러 가지로 불편할 때마다 잊지 않고 도움과 격려를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1년이 지났지만, 남은 기간도 빨리 지나 여러분을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누면서 회포를 풀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인정을 맛보고 싶다"면서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훗날을 기약했다. / 김범태 | | | | |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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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김과 한 중증환자의 태평양 넘어선 동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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