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cm가 바꿔버린 인생... 작은 키가 어쨌기에

[생생토크] "공무원 채용시 키를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

등록 2005.07.20 17:49수정 2005.07.2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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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67cm 미만의 남자, 157cm 미만의 여자', '몸무게 57kg 미만의 남자, 47kg 미만의 여자' 이들은 경찰공무원임용령시행규칙에 의거해 대한민국 경찰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신장이 작거나 체중이 가벼우면 체력도 비례해서 떨어지는가? 올림픽 때마다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단신들의 투혼을 감안하면, '키 또는 몸무게 = 힘'이라는 세인의 인식은 단지 참고사항일 뿐 정비례 관계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파출소 앞에 선 두 사람
파출소 앞에 선 두 사람인권위 김윤섭
김희선(가명·여·21) 씨와 이동인(가명·남·27) 씨는 각각 2005년 1월과 3월 "공무원 채용시 응시자격으로 키를 제한하는 것은 신체조건에 의한 평등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김씨는 0.5cm, 이씨는 0.2cm가 모자라 경찰관 임용시험조차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에는 이밖에도 각종 공무원 채용 시 키와 몸무게 등을 제한하는 규정의 차별성을 지적하는 진정이 7건 더 접수됐다. 국가인권위는 9건의 진정사건을 모두 조사한 뒤 "공무원 채용시 키와 몸무게를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결정을 내리고, 경찰청장·소방방재청장·법무부 장관·건설교통부 장관에게 불합리한 제한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은 5월 18일 키 때문에 경찰공무원 신체검사에서 탈락한 김씨와 이씨가 만나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인생의 갈림길에 선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의견에 공감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대화가 깊어갈수록 그들은 현실의 벽 앞에서 또 한번 상처를 더듬었다.

동료의 얘기를 들으며 그간의 설움을 어렵게 추스를 수는 있었으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또 다른 낙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떨치지는 못했다. 실명도 밝히지 못하고 얼굴도 공개하지 못한 채 그들은 대화를 마치고 떠났다. 도대체 키 작은 게 무슨 죄라도 되는 것이기에.

인권 : 먼저 두 분이 국가인권위에 진정하시게 된 사연부터 들려주세요.


이 : "2004년 11월 경찰공무원 채용시험 신체검사에서 키가 167.8cm로 나와서 필기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올해 3월 다시 시험을 보기 위해 신체검사를 했더니 166.8cm로 찍힌 거예요. 현장에서 억울하다고 하소연해서 다시 측정했더니 167cm로 턱걸이 했죠. 그랬더니 경찰관이 한 번 더 재 보자고 하더라고요. 3차에서는 다시 166.8cm로 줄었어요. 세 번 해서 두 번이 모자라니 불합격이라고 하더군요."

김 : "저는 세 번 측정했는데 모두 156.5cm였어요. 0.5cm가 모자라 한번도 시험을 못 본 거죠. 어릴 때부터 꿈이 경찰이어서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키 때문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는데, '자기 권리는 자기가 찾아야 한다'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용기를 냈어요."


인권 : 한 분은 0.2cm, 또 한 분은 0.5cm 때문에 응시자격을 얻지 못한 셈이네요.

이 : "안 당해 본 사람은 그 심정 몰라요. 하늘이 캄캄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0.2cm가 경찰직무 수행능력과 무슨 상관인지…."

김 : "전 신체검사 끝나고 막 울면서 나왔어요. 불합격 판정이 나면 옆에 있던 여자 경찰관이 데리고 나가는데, 꼭 장애인 부축하는 것처럼 보여요. 거기 있으면 키 작은 게 장애처럼 느껴져요."

이 : "아주 웃기잖아요. 168cm는 범인과 맞설 수 있고, 167cm는 그렇게 못한다는 논리인가요? 키를 재느니 차라리 팔굽혀 펴기를 시켜 보거나 무술 실력을 보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요? 제가 태권도 초단이고 가라테를 배웠어요. 헬스클럽도 2년이나 다녀서 프레스 80kg은 거뜬히 들어올려요. 단지 키가 작다는 이유로…."

김 :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유도선수였어요. 시도 대회에서 2등까지 했으니까 제법 했죠. 얼마 전 골목길에서 고등학생 4명이 담배를 피우길래 우선 한 녀석을 꺾기와 조르기로 제압하고, 나머지는 눈빛으로 제압한 일이 있어요. 저는 어린 학생이 어른 흉내내는 거 그냥 못 넘어가거든요."

인권 :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신체적 조건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김 : "0.5cm 작다고 범인을 못 잡는다는 건 합리적 기준이 아니죠. 경찰관한테 물어봐도 키 작다고 경찰 못한다는 건 억지라고 말해요."

이 : "일관성이 없어요. 같은 경찰이라도 의경은 제한기준이 더 낮거든요. 비슷한 일을 하는데 기준이 다르다는 건 분명 모순이라고 봅니다."

김 : "그 사람의 능력을 보기 전에 형평성 없는 기준으로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저희 몇 사람의 일이지만, 이대로 두면 계속해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인권 : 두 분은 경찰 채용시험에서 신체조건을 아예 없애자는 의견이신가요?

김 : "신체조건이 아니라 실질적인 능력으로 보자는 거죠. 만일 경찰업무를 아주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키가 작아서 경찰이 되지 못한다면 국가적으로도 손해잖아요. 저는 범인이든 취객이든 얼마든지 상대할 자신이 있거든요."

이 : "시대가 바뀌면 규정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권 : 살면서 키 때문에 불편했다거나, 차별받은 일은 없었나요?

김 : "식구들이 다 큰데 저만 작아서 '너는 왜 이렇게 작냐'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어요. 고등학교 때는 키 크는 한약을 먹은 일도 있었고요."

이 : "여자들이 키 큰 남자를 좋아하니까 '나도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특별히 차별받은 일은 없었어요. 이번 일 때문에 '내가 정말 작구나'하는 걸 실감했죠."

김 : "키 작은 사람들에 대해 편견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심지어 '155cm 미만은 장애인'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인가 씨름대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제 키가 작아서 기대하지 않다가 1등을 하니까 다들 놀라더라고요. 제 경우 작은 키가 오히려 승부욕을 자극했어요."

이 : "저는 키 작은 사람들이 더 빠릿빠릿하고 일도 잘한다고 생각해요. 군대에서도 훈련 잘 받는 병사들은 대체로 키가 작았어요."

김 : "그래도 여자들은 키 큰 남자를 더 좋아해요. 자기보다 작은 남자는 싫어하죠."

이 : "남자들은 여자를 볼 때 키보다 얼굴을 먼저 보는데, 여자들은 키부터 보는 것 같아요."

인권 : 키 때문에 경찰 시험을 계속 못 보게 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이 : "다음 번엔 통과할 수 있을 거예요. 요즘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척추가 눌려 있어서 허리만 잘 펴면 2cm는 큰다는군요. 또 아침에 키를 재면 더 크게 나온대요. 저도 지난해에는 오전에 재서 합격했고, 올해는 오후에 쟀더니 떨어졌어요. 다음 번에는 오전에 신체검사 받을 수 있도록 일찌감치 원서 접수하고, 신체검사 직전까지 집에서 자다가 나가려고요. 숨 조절만 잘 해도 0.2cm는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김 : "저도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스트레칭으로 0.2cm 키우고, 키 재기 직전에 오토바이 자세를 취하면 0.3cm쯤 더 크게 나온다니까 가능성은 충분해요. 도장에 나가서 척추를 바로 세우는 훈련도 할 생각이에요."

인권 : 직접 진정을 내고 국가인권위가 진정 취지에 부합하는 '평등권 침해' 결정을 내렸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이 : "예전엔 신체조건 때문에 불이익당하는 사람들을 전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일을 통해 '세상에 참 억울한 사람들이 많겠구나'하는 걸 깨달았어요. 경찰이 된다면 최선을 다해 억울한 사람들을 도울 겁니다."

김 :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자기 권리를 스스로 찾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어요. 교수님께서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장학금을 받게 해 주신다고 합니다. 기왕 시작한 일인데, 헌법소원을 내서라도 경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7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7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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