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영장 청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구속영장 청구 바람."
과연 어떤 표현이 맞을까? 당분간은 앞 문장이 '정답'이다.
수사권 독립 문제를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 공문서 존칭 문제로 비화됐다 경찰이 한발 물러서 논란 하루만에 '일단' 봉합됐다.
지난 14일 밤 9시 대구달서경찰서 수사과 강력1팀 형사들은 납치강도 사건의 용의자 5명을 검거했다. 당시 용의자들의 반발은 거셌고 결국 이 과정에서 강력1팀 이아무개 팀장과 형사 1명이 왼손 분쇄골절 등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형사들이 잡은 피의자들의 구속영장 신청은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경찰이 다음날인 15일 밤 납치강도와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대구지검 담당검사에게 신청했지만 반려됐던 것.
현행 형사소송법 192조에 따르면 경찰은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도록 돼있다. 따라서 경찰이 제출한 구송영장 신청서의 내용과 형식이 미비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반려될 수도 있다.
하지만 논란은 담당검사가 밝힌 반려 이유다. 당시 담당검사는 구속영장 신청서를 반려하면서 담당 형사가 작성한 서류의 '존칭' 부분을 문제삼았다.
담당 검사 "존칭 써서 재작성 하라"... 반려
| | | 경찰청 수사용어 변경 지침이란? | | | | 담당 형사가 구속영장 신청서에 '~청구 바람'으로 작성한 이유는 지난 6월말 경찰청이 일선 경찰서에 보낸 '수사용어 변경 지침'에 따른 것. 그동안 경찰 내부에서는 검찰에 제출하는 공문서의 표현 등이 '굴욕적'이라며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수사용어 변경 지침'은 이러한 내부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그동안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서에 '기소하심이 옳다고 생각 됩니다', '긴급체포 하였기에 승인하심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소직(小職)이 확인한 바'등 극존칭 표현을 사용해왔다.
한 일선 경찰관은 "그동안 검찰을 상대로 사용돼왔던 용어들은 검찰과 경찰의 상명하복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면서 "기존의 용어는 경찰의 검찰에 굴욕적이라는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 대표적인 사례였다"고 말했다.
결국 수사권 갈등을 빚으면서 경찰청은 그동안 사용돼왔던 서류상 상명하복적인 표현을 대등한 관계의 용어로 바꿔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애초 '기소하심이 옳다고 생각됩니다'는 '기소의견임'으로, '소직(小職)이 확인한 바'는 '본 경찰관이 확인한 결과' 등으로 고쳐 표기하도록 했다. | | | | |
구속영장 신청서를 작성한 담당 형사는 최근 경찰청이 일선 경찰서로 내린 '수사용어 변경지침'에 따라 신청서 마지막 부분에 "~ 구속영장을 청구 바람"이라는 평어체로 작성했다. 하지만 담당 검사는 '규정에 맞지 않다'면서 "~ 구속영장을 청구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극존칭'으로 재작성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또 담당 검사는 납치강도 사건과 함께 제출된 상해절도 사건 피의자의 구속영장 신청서류도 '신병처리지휘 건의서'가 첨부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역시 반려 조치했다.
결국 담당 형사는 다음날인 16일 구속영장 신청서를 검찰에서 지적한대로 재작성해 검찰로 송치했고, 그제서야 검찰은 신청서를 받아들여 구속영장 청구했다.
대구달서경찰서 한 관계자는 "물론 검찰이 경찰을 수사지휘하는 상황에서 상하 관계가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표현의 문제도 논란이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고생 끝에 범인을 검거해놓고 단지 문구 때문에 영장 신청을 반려하는데 씁쓸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또 이 관계자는 "신병처리지휘 건의서의 경우도 고소고발건으로 피의자의 신병처리가 중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강력 사건은 건의서를 첨부하지 않아왔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형사도 "어떤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냐"면서 "결국 경찰이 검찰에게 공손하냐 하지 않느냐는 문제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형사는 "문구 하나 잘못됐다고 서류를 반려하는 것 자체가 검찰의 권위주의 양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례"라고 비난했다.
"검찰의 권위주의 양식 그대로 드러나는 사례"
이 구속영장 신청서 반려 논란은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일단 여론은 검찰보다는 경찰 편에 기운 듯 보인다.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도 누리꾼들이 검찰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누리꾼 ID 'eric'은 "경찰이 협조 공문을 보내는 글귀로는 무난하고 굳이 마치 큰 상관이나 영감님에게 서간문 쓰는 형태를 사용해야하냐"면서 "권력기관은 버릇을 고치기가 참 힘든 모양이다, 국민이 국민의 힘으로 고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의 '논란 만들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찰이 수사권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 지침까지 마련하면서 관행을 깬다는 이유로 굳이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다.
다음 누리꾼 ID '산지기'도 "기관간 공문은 당연히 '~ 바랍니다'라고 하는거 아닌가"라면서 "상급기관에서 하급기관에 지시문서도 과거에는 '하기 바람'에서 지금은 '하시기 바랍니다'으로 바꾸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논란의 당사자인 대구지검측도 20일 "문제는 수사권 조정과는 별개의 문제로 사법경찰관리직무규칙 11조에 규정에 서식따라 '청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로 표현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어겨서 발생한 것"이라면서 "규정을 바꾸지 않는 이상 경찰은 규정을 준수해야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앞으로도 더욱 엄격한 규정을 적용해 구속영장 신청을 받는다는 방침을 강조하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20일 경찰청은 각 지방경찰청으로 "서식 개정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당분간 종전 서식을 유지하라"고 지시해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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