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여성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정부가 발간한 각종 안내책자들.신아연
부부가 이혼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녀양육이다. 호주의 이혼율은 초혼파경 40%, 재혼파경 60%에 달한다. 그 결과 한부모 가정의 자녀수가 1백만 명을 웃돈다. 통계국에 따르면 호주 태생 어린이의 3분의 1은 성년이 되는 만 18세 이전에 부모의 이혼으로 양측 부모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할 운명에 놓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부가 헤어질 경우, 둘 사이의 자녀양육에 관한 문제는 이혼 판결 결과에 따라 자녀를 양육하는 쪽과 양육비를 대는 쪽으로 나뉜다. 호주에서는 대부분 아이의 정서적 안정, '직장남-전업주부' 구조 등의 이유로 여성에게 자녀양육을, 남성에게 자녀양육비 지급의 부담을 지운다.
호주정부는 이를 위해 가정복지부 산하에 이혼 자녀들의 양육비를 총괄하여 관장하는 관리국(Child Support Agency, CSA)을 두고 있다.
CSA는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홀부모들을 위해 상대로부터 양육비 명목의 돈을 받아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의 은행계좌로 전달해 주는 기관이다. 아이를 키우는 쪽이 대부분 여성임을 감안할 때 경제적 자립능력이 없는 이혼여성들에게 CSA는 구원과도 같은 존재다.
전국의 CSA 소속 3천 명의 공무원들은 매년 20억 호주달러(1조6천억원)를 전 남편들로부터 받아 자녀 양육권을 가진 전처들에게 전달하며, 이들이 이혼 후 겪게 되는 재정적 어려움에 대한 지원과 정보제공, 장기적 재정관리 등을 돕고 있다.
1988년에 정착된 CSA는 이혼 후 남성들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 처하기 마련인 여성들의 재정적 안정과 보호차원에서 마련됐지만,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혼에 따른 삶의 파산과 침몰을 예고하는 거대한 괴물로 인식되고 있다.
수입의 절반은 전처에게로, 이혼 후 사실상 두 집 살림
이혼한 남성 상당수는 수입의 절반가량을 CSA에 자동압류 당하게 돼 "자식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이 족쇄에서 풀려날 길이 없다"며 분개한다.
전처가 데리고 있는 자녀들에 대한 양육비 부담률은 자녀가 1명일 때는 소득의 18%, 둘일 경우 27%, 다섯 이상이면 36%다. 그러나 이혼당시 당사자들의 합의 사항이나 법원의 판결 등에 따라 실직기간 중의 양육비를 빚으로 떠안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제 부담률은 정해진 비율보다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또 양육비 비율을 계산할 때는 세금을 떼기 전 소득을 기준으로 하지만 실제 지급액은 세금 공제 후의 실질소득에서 나가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매우 높은 호주의 상황(최고 45% 세율적용)을 감안한다면 이혼 남성들은 평균적으로 수입의 절반을 내놓게 되는 셈이다.
재혼을 할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수입의 반을 전처에게 떼어주고 나면 새로 꾸린 가정의 생활비가 절대 부족해지고 여기에 만약 자식이 생기게 되면 법적인 재정보호를 받는 전처와의 사이에 난 자식들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키울 수밖에 없다. '가정'이 깨진 자리에 '가난'이 대신 자리 잡는 것이다.
매달 전처에게 1천 호주 달러(약 80만원)를 보내는 한 재혼남성의 경우, 새로 맞아들인 아내가 맞벌이를 하는 동안은 그럭저럭 '두 집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었지만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직장을 그만 두게 되자 생활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CSA가 있는 한 전처에게 송금을 끊을 수는 없는 일. 뾰족한 대안 없이 생활은 궁핍과 쪼들림 속으로 또 한 단계 내려앉았다.
이혼남들은 전처에게 보내야 하는 자녀양육비도 부담스럽지만, 그렇게 꼬박꼬박 보내지는 돈이 과연 자녀에게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에 더 분개한다.
CSA를 통해 양육비를 대는 이상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엄연한 권리가 있음에도 실상 아이들을 자주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이혼남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전처의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로 이혼법정의 자녀 접근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CSA를 통해 양육비 지급은 철저하게 관리하는 반면 양육을 맡고 있는 전처 쪽의 태만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경고나 중재를 책임지는 물리적 장치가 허술하다는 것.
50대 이혼남의 항변 "버는 족족 CSA로...죽지 못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