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혜
속이 탔다. 급한 성격에 목소리가 커지려 하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몇 번이나 더 설명을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껌을 인용해 보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아이의 입에선 내가 바라는 똑 떨어진 답이 냉큼 나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인내심이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찬물에 세수라도 해서 다시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 것 같았다. 아이에게 한 번 더 잘 생각해 보라는 말을 던져 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아이가 정말 수에 대해 약한 것일까.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나. 그저 맘껏 뛰어 놀라고 한 게 잘못된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한참을 이것이 맞는지 저것이 맞는지 복잡한 갈등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론을 내지 못했다. 욕실에서 나온 건 한참 후였다. 그런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 친정집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저 숫자공부 하기 싫어요."
아이는 외할머니에게 숫자공부를 하기 싫다며 엄마가 자신에게 숫자공부 시키지 않게 해달라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래. 지금 하기 싫으면 좀 놀다가 나중에 해. 그건 방학숙제니까 하기 싫다고 안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조금 놀다가 나중에 엄마랑 다시 해봐. 알았지?"
하지만 아이는 저녁밥을 먹을 때까지도 집에 오지 않았고, 밖이 캄캄해졌는데도 집에 오지 않았다. 거의 9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서면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시계 그릴 때 9시에 잔다고 그렸잖아요. 이제 9시 다 되가니까 자야 해요. 엄마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9시에 자는 건 자신 있는데 숫자공부 하는 건 자신이 없어요."
"복희야! 숫자공부는 처음엔 누구나 다 어려운 거야. 옛날에 엄마도 그랬어. 하지만 자꾸 해보니까 나중엔 엄청 쉬웠어. 그러니까 복희도 내일 다시 엄마하고 한 번 더 해보자, 알았지? 자, 약속!"
아이는 작고 귀여운 새끼손가락을 걸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도장까지 꾹 눌러 찍었다. 그리곤 어느새 곤한 잠에 빠져 들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아이의 잠든 얼굴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이제 이 아이도 공부라는 육중한 틀 속으로 한 발 한 발 서서히 다가서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안가 그 틀 속에 갇혀 버리고 답답함과 고단함으로 숨을 헐떡일 것 같다.
지금으로선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고 밝고 씩씩하게만 자라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과연 언제까지 내 이 생각이 유효할지….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 바람이 이 밤엔 전혀 시원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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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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