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베트남 전쟁영화, 그 반대편 이야기

베트남 작가 반레가 쓴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을 읽고

등록 2005.07.25 10:08수정 2005.07.2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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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실천문학사

날아다니는 헬리콥터와 먼지투성이의 군복을 입은 덩치좋은 미군들과 중화기들, 곳곳에 폭탄이 터지고 땅굴과 부비트랩을 이용해 사랑하는 전우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베트콩들.

미국은 선이고 베트콩은 악이다. 그들의 수괴인 호치민은 마치 우리가 김일성을 알지 못하듯 베일에 가려져 "좋지 않은" 선동가로만 인식될 뿐이고, 비록 명분없이 끌려갔지만 전우애와 애국심으로 뭉친 미국인들은 악귀 같은 베트남 사람들에 의해 안타깝게 죽어갔다.

우리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사를 보내서 든든한 우방 미국을 힘껏 도왔다. 전쟁터를 다녀온 병사들 중 일부는 그때의 심리적 고통으로,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병을 앓고 있고, 일부는 자식들에게도 유전되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베트남 전쟁때문에, 그리고 공산화를 조장한 북베트남의 호치민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각은 미국과 친하고, 할리우드 영화만을 봐왔던 우리로서 당연한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영화 <지옥의 묵시록> 때문이 아니었다. 몇 년 전 <한겨레> 신문에서 보도된 라이따이한의 이야기와 베트남에서 우리 군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폭로한 기사를 본 후이다. 그리고 오늘 여름 휴가 계획으로 생각하는 베트남 배낭 여행을 위해 준비하는 공부의 일부로 읽은 책들을 통해서이다.

"그래, 전쟁은 모두가 피해자야.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그런 세계야."

조용히 되뇌어 본다. 책은 기자가 3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처음 읽은 베트남 작가의 소설이다. 작가 반레는 베트남 전에서 싸우고 결국 살아남아서 그때의 경험을 오롯히 담았다. 주인공은 작가와 함께 싸우다 전사한 친구를 빌어서 이야기 한다.

어린 나이에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나선 주인공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과 헤어져서 전쟁터로 향하고, 그 안에서 만난 많은 인연들도 전쟁의 포화 속에 하나 둘 잃어가기 시작한다. 전쟁을 통해 만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자신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를 잃고, 동료들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남은 자의 비애를 느낀다.

이야기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시작한다. 황천강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노잣돈이 없어서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주인공. 그곳에는 장례를 치르지 못한 주검의 영혼들이 떠돌고 있는 곳이다. 수의를 입히고 돈을 태워서 저승갈 때 노자로 쓰라는 장례의 절차를 밟지 못한 사람들은 강을 건네는 뱃사공의 도움으로만 환생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승에 남겨두었던 미련과 연을 정리하고 와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 되었던 이야기는 저승 근처에 있는 주인공이 겪은 비현실과 과거의 현실을 오간다. 전쟁은 비극이고 지극히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비극적인 현실로 인해 받는 고통을 그리고 있다.

책을 읽고 난 나는, 혹은 '사실'을 폭넓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들은 '나쁜 놈들'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친구 나라를 위해 충직하게 임무수행에 앞장섰고 고히 잠들지 못하는 수 많은 영혼들을 남기게 되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그들 땅에서는 한국을 닮은 청년들이 자신의 아버지도 모른 채 자라고 있고 어른이 되어간다. 무소불위의 자세로 우리를 대하는 일본과 미국에 대해 갖는 불만이 있다면, 그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조용히 우리의 뒤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작가 반레는 시인이자 소설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입니다. 베트남에서는 보석과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작가 반레는 시인이자 소설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입니다. 베트남에서는 보석과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반레 지음, 하재홍 옮김,
실천문학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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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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