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근
여자는 재중동포였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재중동포를 보는 것은 요즈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저 그런 재중동포 아줌마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여자가 내게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는 그랬지요.
손님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식당에는 내가 앉은 테이블 손님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여자가 후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지 말고 술 한 잔 받으실래요? 우리 중 누군가가 여자에게 말했고, 여자는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오셨어요? 예의상, 정말로 예의상이었습니다, 그 물음은. 하지만 그 예의상 물음이 여자의 말문을 터뜨릴 줄은 몰랐습니다.
"흑룡강성에서 왔지요. 흑룡강성 아심까?"
여자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자는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했습니다. 한국에 돈 벌러 간 남편이 소식을 끊은 지 3년 만에 이혼 서류를 보내왔고, 혼자 생활비와 아이의 학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아이는 북경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결국 여자는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식당과 공장을 전전했고, 몇 달치의 월급을 받지 못하기도 했고, 식당 주인에게 폭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재중동포 아줌마들의 이야기입니다. 여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조금쯤 지루했습니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자신의 얘기를 하는 여자가 귀찮기도 했을 것입니다. 슬그머니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술기운이 조금 오른 여자가 속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요."
여자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불법체류자 신세로 살아도 중국 땅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중국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한 가정에 아이 하나만 인정하는 정책. 당에서는 산아제한 정책의 일환으로 여성에게 피임 수술을 강요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술이라는 게 어찌나 급속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루어졌는지,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여자의 몸속에 넣은 피임기구는 조금씩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여자의 자궁까지 썩어 들어갔습니다. 생각해 보니 억울한 일이더라고, 국가에 의해 몸을 조절 당하는 것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냐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 자신은 얼마나 문명하지 못한 것이냐고, 여자는 기어이 눈물을 보였습니다.
내가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부끄럽게도 나는 여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결국 자궁을 들어내야만 했습니다. 제법 돈이 있는 남자와 재혼 자리도 났었는데, 여자의 병력을 알고는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몸에 뭔가 이상이 있는 걸 느끼면서도 제대로 된 치료나 검진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중국에 돌아가면 되겠지만, 제 몸을 그렇게 만든 나라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그 몸을 보살펴 주지는 않을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여자를 한 번 더 만났습니다. 그것이 소설에 대한 욕심이었는지 아니면 여자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식당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여자를 불러 세워 술 한 잔을 함께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좋았는지, 여자는 내게 속얘기를 하염없이 풀어 놓았습니다. 여자와 헤어질 즈음, 여자는 내 손등을 쓰다듬었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얘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들어준 적이 없다고, 고맙다고,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따스한 눈빛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그 식당에 다시 갔을 때, 여자는 없었습니다. 주인에게 물으니 그 많은 재중동포 아줌마들을 다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했습니다. 단속에 걸려 중국 땅으로 돌아갔는지, 어느 차가운 방에서 쓸쓸히 죽어간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만났던 한 여자. 어느 나라에서도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 그 여자. 그 여자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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