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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도의 여름휴가는 주문진 수산고등학교로 휴가를 가게 되었다. 여름 교사연수도 아닌데 왜 여름휴가를 학교로 갔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실 것 같아 여기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97년도인가에 이 학교가 강원도립 전문대학으로 승격되었다고 들었으나 그 때까지만 해도 수산전문 실업계학교로 축구로 꽤나 알아주는 학교였다. 이 학교의 명물은 소나무 숲인데 학교 건물과 바다 사이의 넓은 지역에는 해풍을 막기 위해 심은 듯한 소나무가 있어 보기만해도 시원하고 자연적인 야영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학교로 야영을 가다
직장의 후배 중에 이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있었는데 여름휴가 한참 전부터 함께 휴가를 가자며 바람을 넣었다.
자기가 그 지역 해안초소에서 방위로 근무했기 때문에 꽉 잡고 있어 학교의 솔밭에 텐트를 치고 지낼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뿐 아니라 배를 빌려 고기를 잡아 생선회를 쳐 먹을 수도 있지만 그게 귀찮다면 주변 횟집에 자기와 함께 가면 원가 수준에 원없이 먹을 수 있다는 솔깃한 이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여름 동해안쪽의 해수욕장에 가면 바가지요금도 문제였지만 하도 사람이 많아 마음놓고 텐트 칠 공간도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나로서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라 승낙을 하고 말았다.
출발하는 날은 차가 밀릴 것을 감안하여 자정에 출발했다. 밤새 운전하여 주문진에는 새벽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 먼저 출발한 후배를 만나 학교로 가니 일직 선생님께서는 교장선생님 하락 없이는 송림에 텐트를 칠 수가 없다며 아예 학교로 들어오지를 못하게 했다.
낮잠자다 발목에 화상을 입다
아무리 부탁을 해도 안 될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학교 근처의 바닷가에 텐트를 쳤다. 동네 외진 곳에 덩그러니 텐트 하나만 쳐 놓으니 완전히 철거민 가족이 따로 없었다. 철없는 애들은 거기도 바닷가라며 좋아라 뛰어 다녔으나 집 사람은 '당신 하는 일이 매사 그렇지'라는 듯 불만을 안으로 가득 삼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파라솔 아래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밤새 운전을 하느라 피곤이 쌓인 데다 예상 못한 일을 당한 터라 파라솔 아래에 눕자마자 꿈속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한참을 자다 왠지 더운 것 같아 일어났더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그런데 자는 새 그늘이 옆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햇빛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고, 햇살은 얼마나 강했던지 노출된 피부가 빨갛게 화상을 입어 있었다. 다행히 수건을 덮고 잔 탓으로 얼굴만은 멀쩡했다.
화상이 얼마나 심했던지 양쪽 정강이 아래는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라 앉는 것조차 불편했다. 도착하자마자 예상 못한 여러 가지 복병을 만난 셈이었다.
이런 상태로 저녁에는 후배와 근처의 횟집으로 회를 먹으러 갔다. 서울서 먹는 회와 바닷물에서 바로 건진 산지에서 먹는 회의 맛이 얼마나 다른지 값은 또 얼마나 싼지 잘 느껴 보라는 후배의 자랑을 들으며 학교 아래의 횟집으로 들어갔다.
"어이! 위에 좀 조용히 해"
후배의 말이 허풍이 아님을 증명하듯 맛은 정말 좋았다. 멍게 한 가지만 예를 든다면 향내가 완전히 달랐다고나 할까?
마음이 좀 풀렸는지 아내도 맛있다며 먹고 있었다. 이렇게 생선회를 먹으며 시원한 바다바람과 파도소리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위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싸우는 것은 아니었고 그 사람들도 웃고 떠들면서 즐겁게 술을 마시는 정도였는데 후배는 '어이! 위에 좀 조용히 해'하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행여 이런 자리에서 싸움이라도 나면 골치 아플 것 같아 괜찮다며 말리는데도 아침에 일어 난 일에 대한 미안함을 여기서 만회하려는 듯 "이 동네에서 나에게 허락도 없이 떠드는 사람이 누구야?"하며 고함을 질러 대다 성이 차지 않는지 주의를 주고 오겠다며 위로 올라가 버렸다.
그렇게 후배가 올라간 후 "어이 좀 조용히 해"하는 한마디가 들리고는 신기하게도 더 이상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말 이 지역을 꽉 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잘 타이른 후 소주를 한잔 마시고 금방 내려오겠거니 하며 기다렸지만 후배는 계속 내려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형님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흘러갔음에도 후배가 내려오지 않으니 이제는 후배가 무슨 일이라도 당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좋지 않은 사태를 경험한 집사람이 올라갔다 오라며 보채기 시작했다. "동네 건달들에게 걸려 경이라도 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위층으로 올라가 창문으로 동정을 살피니 아니다 다를까 후배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몇 사람의 남자들이 뭔가 열심히 타이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 곳 조폭의 대부들을 잘못 건드렸다고 상황판단이 되었다. 이때는 빨리 사과를 하는 것이 사태를 수습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 태세를 갖췄다. 그런데 머리위로 떨어지는 말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선생은 누구시오?"
"예 ○○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조폭들도 처음에는 부드럽게 나온다는 생각이 들자 다른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아주 정중하고 공손하게 답을 했다.
"○○이 이 녀석 일은 잘 합니까?"
"예, 아주 잘합니다."
"일을 잘 한다니 다행이군."
이렇게 이야기 하더니 그냥 편하게 앉으라고 했으나 혹시 트집을 잡을 것 같아 화상 입은 다리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으나 참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하는 틈을 이용하여 얼른 사과를 했다.
"형님들을 몰라보고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
뭔가 부족한 것 같아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 보는 순간을 이용하여 다시 사과를 했다.
"형님들 제가 교육을 잘못시켜 이런 사태가 생겼으니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형님들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그 때서야 옆에 앉아 있던 후배가 옆구리를 찌르며 "학교 은사님이십니다"라는 귓속말을 재빨리 전해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어이없었던 나의 행동에 잠시 몸둘 바를 몰랐지만 왠지 웃음이 터지는 것을 참으며 다시 사과를 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제야 선생님들께서도 갑자기 나타나 알지 못할 말만 지껄이는 나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하셨는지 굳은 얼굴을 펴면서 다소 형식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어디서 오셨느냐?", "제가 ○○ 이놈 3학년 담임이었다", "가끔 사고도 쳤는데 일은 잘 하느냐?" 등등.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선생님의 배려하에 학교 송림에 텐트를 치고 다음 날부터 소금강도 다녀오고 하조대도 다녀오고 청간정도 다녀오며 즐겁게 남은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후배는 그 후에도 가끔씩 "형님 휴가 다녀오겠습니다"며 나를 놀렸고 나는 낮잠자다 입은 발목화상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을 했는데, 아직도 추억처럼 그 때의 흉터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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