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뉴질랜드의 여름은 한국처럼 찌는 무더위는 아니지만 햇볕 눈부신 대낮의 열기는 몹시 뜨거워서 덥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휴가의 절정을 이루는 계절은 언제나 여름이다. 그러나 휴양지마다 법석댈 인파가 싫어서 여름을 피해 봄ㆍ가을에 휴가 여행을 떠나는 우리는 여름의 열기를 고스란히 집에서 견디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여름은 조금 달랐다.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다녀오는 우리만의 멋진 피서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마웅가마웅가로아 트랙(Maungamaungaroa Track)이라는 이름의 산책 코스가 바로 그곳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클랜드 동쪽의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작은 만의 가파른 해안선을 따라 2년 전쯤에 조성된 이 산책길은 초원과 숲과 해변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너무나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지난 여름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이 산책길을 걸으며 그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소리까지도 담을 수 없음이 아쉽지만 소리는 마음의 귀로 들으시라. 1. 초원 초원이라고 하지만 싱그러운 녹색의 풀밭은 아니다. 여름내 오래 가문 탓인지 풀들은 누런 황금빛 또는 은빛으로 바싹 말라 있다. 눈이 부시다. 환한 햇빛도 그 부신 색깔 때문에 풀잎에 머물지 못하고 바로 튕겨 나온다. 큰사진보기 ▲정철용 그 무수한 햇빛의 진동이 바람을 몰고 온다. 바람에는 거역하지 못하고 풀잎들은 쓰러진다. 풀잎이 쓰러지며 내는 스산한 소리가 가을을 닮아 있다. 은빛 풀잎 사이사이에 흰마타리꽃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다. 그러나 환하게 펼친 그 별꽃들의 무리는 색깔을 잃고 누렇게 때론 갈색으로 주먹을 꼭 쥔 채 벌써 가을 주위로 뭉치고 있다. 큰사진보기 ▲정철용 여름 지나 가을이 더 깊어지고 마침내 겨울비가 내리면 그 주먹이 펴지리라. 그 펴진 주먹에서 꽃씨 한 움큼씩 땅에 떨어지고 더러는 바람에 날려 가리라. 풀밭이 끝나는 곳에서 성급하게 피어 올린 갈꽃을 만난다. 은빛 도는 갈색의 머리카락이 가을 쪽으로 흩날리고 있다. 그 머리카락 너머 보이는 바다에 물이 가득 차 있다. 밀물이다. 그 푸른 바닷물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맹그로브 숲이 지금쯤 분주하리라. 큰사진보기 ▲정철용 그러나 막상 해안 절벽길을 내려가 바닷물 위에 놓은 나무 트랙을 걸어 가보면 고요하다. 비어 있는 나무 벤치에 반사되는 햇빛조차도 이곳에서는 바람을 불러 모으지 못한다. 큰사진보기 ▲정철용 여기서 잠시 쉬기로 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매미 소리가 비로소 들린다. 2. 숲 숲길로 들어선다. 바닷가에 있는 숲이지만 워낙 울창해서 바다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 무성한 나뭇잎뿐만 아니라 밀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어지럽게 자라고 있는 덩굴식물들이 빛을 가리고 있다. 큰사진보기 ▲정철용 숲은 대낮인데도 어둑어둑한 그늘이다. 초원을 건너오느라 목덜미에 끈적끈적하게 흐르던 땀이 바로 식는다. 구불구불 그리고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숲길을 키 큰 나무들이 앞장서서 걷는다. 그 사이사이에 펀 트리(Fern Tree)라고 불리는 고사리 나무가 우산살처럼 넓은 이파리를 펼치고 호위하듯 서 있다. 큰사진보기 ▲정철용 아내는 나물이라도 무쳐먹을까 하며, 그 아래에서 어린 고사리들을 찾아보지만 찾지 못한다. 어린것들은 오히려 옆으로 누워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어느 나무의 등에서 발견된다. 어미의 등을 밟고서 수직으로 자라고 있는 기다린 지팡이 모양의 어린 가지들에는 싱싱한 녹색의 잎들이 달려 있다. 어미는 그 싱싱한 녹색의 잎들이 분명 자랑스러우리라. 큰사진보기 ▲정철용 어미의 이 자랑스러움을 보이지 않는 줄기의 끝 어디쯤에서 매미들이 대신 전해준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울어대는 매미의 노래를 들으며 한여름이 정오를 막 지나고 있다. 3. 해변 막 정오를 지난 시간, 우리는 바닷가에 닿는다. 바닷가는 비어 있고 잔잔한 바다에 떠 있는 몇 척 요트가 우리를 맞이한다. 몇 척은 바다 쪽으로, 또 몇 척은 내륙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 내 그리움은 어느 쪽으로 향해 있을까. 큰사진보기 ▲정철용 작은 조개껍질들이 가득 깔려 있고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 앉는다. 바다 위에 뜬 배들과 흰 구름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잠시 침묵을 즐긴다. 마침내 아내가 묻는다. 여기 와서 사니까 좋지? 그리고 그 물음표 끝에 추신처럼 두 개의 영어 단어를 덧붙인다. 'with me.' 나는 아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아내도 웃는다. 큰사진보기 ▲정철용 작은 조개껍질 같은 하얀 이빨이 빛난다. 가슴 쿵쾅거리며 이빨을 서로 부딪치며 나누었던 첫 키스의 추억처럼. 그 빛나는 추억들이 여기 이렇게 쌓여있구나. 하얗고 작은 조개껍질들에 새겨진 그 물결무늬들을 나는 손으로 더듬어본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아내가 아침에 부지런히 준비해 싸온 김밥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냄새를 맡았는지 갈매기 한 마리가 멀리서 우리 쪽을 빤히 바라보면서 몇 번 목청을 돋운다. 그러면서도 감히 우리에게 다가서지는 못한다. 그래, 우리가 인간이구나. 인간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살아남는 법이지. 큰사진보기 ▲정철용 돌아오는 길, 썰물로 물이 빠져나간 갯벌에 혼자 정박해 있는 요트 한 척을 만난다. 닻을 내리고 있는 한, 밀물이 되어도 저 배는 꼼짝하지 못하리라. 닻이 돛이 되는 날, 저 배는 비로소 덫을 벗어나리라. 내 삶도 그러하기를 꿈꾼다. 덧붙이는 글 | '2005 이 여름을 시원하게' 기사 응모 덧붙이는 글 '2005 이 여름을 시원하게' 기사 응모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추천3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글 정철용 (ccypoet) 내방 구독하기 이 기자의 최신기사 내 안의 어두운 추억들과 마주하다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단독] 윤석열 모교 서울대에 "아내에만 충성하는 대통령, 퇴진하라"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초원·숲·해변을 한꺼번에 만나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인기기사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팔순잔치 쓰레기 어쩔 거야? 시골 어르신들의 '다툼'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주장] 변호사가 본 이재명 1심 판결과 민주당이 해야할 일 윤석열·심우정·이원석의 세금도둑질, 그냥 둘 건가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