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29회

등록 2005.07.26 07:51수정 2005.07.2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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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장의 무서운 점은 근육에 충격을 주어 상하게 한다는 점이오. 그리고 종래에는 근육을 마비시켜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것이오. 만약 이 장인을 남긴 자가 조금만 더 공력이 높았으면 아마 영주는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오."

갈유는 가부좌를 튼 채 상체를 벗고 있는 담천의의 전신을 진맥하면서 설명하고 있었다.


"말씀을 놓으십시오. 부담스럽습니다."

담천의는 불편했다. 갈유가 들어오고 주위 사람들을 물렸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었다. 그것은 갈유가 담천의의 신분을 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자꾸 담천의를 불편하게 했다.

"또한 진주언가의 이혼권은 암경에 의한 충격으로 혈맥을 파괴하고 기혈을 막히게 하는 무서움이 있소. 아직 영주의 몸에서 부기가 빠지지 않고 어혈이 곳곳에 뭉쳐 있는 것은 그 때문이오. 이미 대혈 여덟 군데가 막혀 혈행이 순조롭지 않고 피가 뭉쳐 있는 상황이오."

"갈대인…!"

담천의의 재촉에 갈유는 말을 하다 멈추고 탄식을 내뱉었다.


"이 중원에서 초혼령주에게 하대할 인물은 존재하지 않소."

"인규와 저는 형제지간(兄弟之間)입니다. 어찌 외인으로 생각하시려 하십니까?"


갈유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그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고, 가볍게 두들겨 보기도 했다.

"아픈 곳이 있으면 말을 하시오."

"대인!"

담천의는 탄식처럼 갈유를 불렀다.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였다. 갈인규와 자신과의 관계를 분명히 밝혀주었음에도 그가 아직 하대하지 않고 있음은 지금 괴의 갈유는 담천의를 사적인 관계에서 만나는 것이 아닌 초혼령주로서의 담천의를 만나고 있다는 의미가 분명했다.

"영주가 익힌 심법이 무언지 모르지만 선천진기(先天眞氣)를 운용하는 것이라 화를 면했소. 만약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러한 충격을 이겨냈다 하더라도 혈맥이 굳고 근육이 마비되어 아마 전신이 벌써 썩기 시작했을지 모르오. 하지만 아직도 위험한 상태요."

"소생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담천의의 말에 갈유는 움찔했다. 이 범상치 않은 청년은 이미 자신의 내심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보여주던 어색한 태도. 그리고 지금 보이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우선은 침을 놓아야겠소. 전신에 일단 굳어있는 어혈을 제거하고 혈행을 정상적으로 돌리려면 탕약만으로는 힘들 것 같소."

"이미 소생은 대인께 한 가지 빚을 졌지 않습니까? 어떤 부탁이던 한 가지는 들어 드리기로 약조한 상태가 아닙니까? 굳이 이러실 필요도 없는 것을…."

말을 하면서도 담천의는 갈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갈유가 손가장에서 담천의에게 베푼 은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의적인 관계였다. 그것은 사적인 관계였고, 갈유는 사적으로 담천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괴의의 법칙이었고 갈유는 그것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초혼령주와 중원 최고의 명의와의 관계다. 명의는 초혼령주에게 한 가지 도움을 주고, 한 가지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것이 공적인 관계다. 갈유가 바라는 부탁은 아마 초혼령주 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가 보인 태도는 모두 그런 이유였다.

"영주께서는 먼저 약값을 청구하라는 것이오?"

굳이 갈유의 호의를 거절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갈유의 태도로 보아 분명 담천의가 움직이려는 초혼령의 첫 번째 대상에 대해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누가 그에게 자신이 있는 곳과 그 내막을 가르쳐 준 것일까? 어떻게 일이 시작도 하기 전에 정보가 누설된 것일까?

어차피 갈유의 부탁이라면 가능한 한 들어 주어야 했다. 그래서 사내는 아무에게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내라면 반드시 대가(代價)를 치러야 한다. 아무리 주고받는 관계가 아닐지라도 지인(知人)의 부탁은 그래서 거절하기 어렵다.

뇌물(賂物)이라는 것도 그렇다.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아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전달하는 것이 뇌물이다. 그리고 그 뇌물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 주어야만 뒤탈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사다.

"손가장의 손불이 장주의 목숨을 부탁하시는 것입니까?"

담천의는 갈유의 곤란한 심정을 헤아려 자신의 입으로 먼저 말했다. 손대인이라 부르지 않고 손불이 장주라고 말한 것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말이라는 뜻이다. 그 말에 담천의의 몸을 만지고 있던 갈유의 손길이 멈췄다. 손불이는 그의 단 하나 밖에 없는 친구였다. 그의 자식을 키워준 친구였다. 갈유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영주."

갈유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친구의 목숨을 부탁하고자 그는 아직 완전치 못한 몸으로 불원천리 담천의에게 달려 온 것이다.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무엇을 말이오?"

"누가 갈대인께 소생이 이곳에 있음을 알려주고 초혼령의 첫 번째 대상이 손불이 장주임을 가르쳐 주었습니까?"

준비하고 있는 초혼령의 대상이 손불이였던가? 더구나 이 안의 측근들만 알고 있던 그것을 어찌 갈유가 알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갈유의 대답은 없었다.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드시 대답을 받고자 한 질문도 아니었다. 하지만 담천의는 이미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그는 재차 물었다.

"인규는 아직 신검산장에 있습니까?"

"아니 지금은 산서 설가장(薛家莊)에 있을 것이오."

산서의 설가장. 바로 산서상인연합회의 오대수장 중 한 명인 설덕조의 장원을 말함이다. 손불이의 아내 경여가 설가장의 여식과 갈인규를 맺어주려고 했다는 말은 담천의 역시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아마 그 일로 잠시 들르러 간 모양이었다. 담천의는 침중한 목소리로 확인해 주었다.

"아버님을 해친 원수라고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손장주를 죽이지 않겠습니다. 다만 손장주가 이 일과 관련이 있다면 저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은 초혼령주로서의 말이었다. 그 어느 것도 복수에 대한 그의 의지를 꺾기 힘들었다. 담천의의 말에 갈유는 담천의의 완강한 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갈유는 그 정도 대답으로 만족했다. 그것은 초혼령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표한 것이다.

아무리 중원 최고의 명의라 해도 초혼령주와 거래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수 없다. 초혼령주는 누구와도 거래하지 않는다. 초혼령주는 오직 초혼령의 뜻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갈유의 손길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맙소. 영주. 영주는 닷새 내에 완전한 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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