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섬지역에서 천일염을 생산하는 모습신안군 제공
국산 천일염이 현행법상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돼 있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천일염 정책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국산 천일염은 가정에서 김장과 간장을 포함한 전통식품과 각종 젓갈류를 담글 때 식용으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현행 식품위생법을 근거로 한 식품공전 제3항에는 "식염(식용소금)으로는 제제, 가공, 정제소금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올 2월 천일염을 젓갈 제조에 사용할 수 없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천일염은 제조특성상 자연탈수과정 이후에 더 이상 가공처리과정이 없기 때문에 모래나 규소, 흙 등 불순물이 혼재될 경우가 많아 식품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관련법에 따르면 천일염을 그대로 식용으로 사용할 경우 불법행위가 되는 셈이다. 다만 바닷물을 정제해 가공하는 기계염과 꽃소금으로 부르는 재제염, 굽거나 볶은 가공염만 식용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천일염 주산지인 전남 신안, 영광지역의 경우 천일염을 그대로 사용해 만든 새우젓 등 각종 젓갈류가 일선 수산업협동조합을 통해 수매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가정이나 식당에서는 천일염이 들어간 젓갈을 쉽게 식탁에서 구경할 수 있어 현행법상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유통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소금수입자유화 대비 염전축소에만 주력
국산 천일염이 이처럼 정부정책에서 천덕꾸러기로 취급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책을 세우는 과정에서부터 객관적으로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천일염 업계의 지적이다.
지난해 12월말 현재 전국 천일염 생산면적은 4,915㏊, 이 가운데 전남지역이 3,373㏊로 국내 천일염 생산면적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전남 신안군은 2,186㏊로 전남지역 면적 중 72%를 차지하고 있다.
천일염을 규정하고 있는 법은 지난 63년에 만들어진 염관리법으로, 염전개발과 소금수급조절이 목적이었다. 그 후 1967년 소금 생산자에게 조합(염업조합)을 설립해 품질검사를 대행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이어 97년 소금수입자유화를 앞둔 정부는 2년 전인 지난 95년 12월 염전구조조정(폐전)을 골자로 한 염관리법을 개정하게 된다.
중국산과 호주산 외국산 소금수입이 자유화 된 것은 지난 97년 7월. 외국산 소금수입에 대비해 국내 천일염 생산자에게 염전을 없애는 대신 일정액의 지원금이 주어졌다. 정부는 당시 국내 염전은 전체 면적을 1,500㏊ 수준으로 축소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가공소금제조에 대해서는 규제완화차원에서 종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등 천일염을 포기하는 대신 가공소금 육성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가공ㆍ정제소금만 식용인정
또 그동안 광물로 분류돼 산업자원부에서 관할하던 염관리법이 지난 96년 7월부터 정제가동 과정을 거친 식용소금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 관할의 식품위생법으로 이관됐다. 하지만 비식용으로 분류된 천일염은 종전대로 산자부의 염관리법의 적용을 받게 됐다.
정부는 그 후 소금수입업자에게 1톤당 4만3,690원의 수입부담금을 부과해 조성된 염 안정기금으로 염전을 없애는 천일염 생산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해 왔다. 1㏊당 섬지역은 900만원에서 1,350만원, 육지는 710만원에서 1,066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95년 염관리법 개정 당시 천일염 업계에서 요구한 ㏊당 3800만원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정부의 계획대로 염전구조조정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정부는 당초 2001년 12월까지였던 폐전지원기간을 작년 말까지로 3년 연장하기까지 했다. 결국 정부는 폐전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지난 5월 26일 그동안 직접 챙겨온 염관리업무를 특별시와 광역자치단체로 이양하는 것을 골자로 한 염관리법을 개정하게 된다.
정부는 법 개정이유로 "지방분권을 통한 선진 지방자치 실현과 염관리 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염전개발과 제조업 허가에 관한 사무를 광역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목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종익 사무국장은 "지난 95년 염관리법 개정으로 식품위생법의 적용을 받는 시점에서 천일염을 식용에서 어떤 이유로 제외시켰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편 목포대학교 천일염생명과학연구소(소장 함경식 교수)는 최근 2년 동안 국산 천일염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연구결과 국산천일염 품질우수 판명
함경식 교수에 따르면 "국산 천일염은 중국과 호주 등 외국 천일염과 비교했을 때 미네랄 성분이 많아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갯벌에서 생산되는 국산 천일염은 염화나트륨 함량이 80-85%로 호주나 중국산 85-95%에 비해 성분면에서 우수하다"고 말했다. 국산 천일염은 염화나트륨 함량이 적은 대신 미네랄이 많다는 게 함 교수의 설명이다.
또 연구결과 소금을 물에 녹였을 때 외국산 소금은 산성 성분인데 비해 국산 천일염은 알카리성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젓갈이나 김치 등 전통식품을 만들 때 정제소금보다는 국산 천일염을 사용하는 것이 맛이나 품질면에서 우수하다는 연구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함 교수는 "천일염이 오랜 세월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해 왔는데도 불순물이 많다는 이유로 가공식품 제조시 사용금지를 하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소는 또 "그동안 실험결과 국산 천일염은 당뇨나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완화시켜주는 효능을 갖고 있는 반면에 가공소금은 인체 내 혈액을 산화하는 작용을 해 고지혈증이나 동맥경화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천일염 상품화 사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국산 천일염과 비슷한 방법으로 생산하는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은 세계적 특산물로 프랑스 국내외에서 1㎏당 8만원에서 9만원에 팔리고 있다. 반면 국산 천일염 판매가격은 1㎏당 200원에서 300원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프랑스 게랑드 소금, 특산물로 정착
목포대 천일염생명과학연구소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과 국산 천일염은 염분함량이나 미네랄 성분에서 유사성이 많다"며 "부가가치가 높은 천일염은 전남 서남해안 특화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게랑드 지방은 염전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프랑스 정부는 게랑드 소금에 대해 카드뮴 등 중금속 검출여부만 조사할 뿐 식용으로 허용하고 있다.
목포경실련 김종익 사무국장은 "정부가 그동안 천일염 육성보다는 수입자유화에 대비한 구조조정에만 골몰했고 객관적 기준이나 근거 없이 비식용으로 분류하는 등 국민의 상식과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목포환경과건강연구소 서한태 이사장도 "그동안 잘못된 정책으로 푸대접 당해온 천일염을 법률개정을 통해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소금에 비해 우수한 국산 천일염에 대해 생산부터 유통까지 철저히 감시, 감독하는 정부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국산소금센터 파행 운영
한편 정부는 지난 97년부터 소금수입업자에게서 거둬들인 부담금 총 700억원 가운데 폐전지원금으로 지출된 330억원을 제외한 잔액 470억원을 지난 2001년 12월 염관리법을 개정해 대한염업조합에 귀속시켰다.
염산업발전기금이란 명칭이 붙은 이 돈은 염업조합 정관에 따라 위원회심의를 거쳐 집행하도록 했다. 그러자 대한염업조합은 470억원 가운데 250억원을 지난해 전남 영암 대불산업단지 내 국산소금센터를 건립하는데 사용했다.
염업조합은 소금센터를 건립하면서 천일염이 현행법상 식용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천일염을 세척, 탈수해 식용으로 인정받게 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러나 소금센터 건립과 관련해 공사비 과다책정과 시설설비 부실 논란으로 사법당국이 수사에 착수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후 시험가동은 했지만 현재는 공장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이와 관련 목포경실련 김종익 사무국장은 "소금센터의 파행운영은 기금운용을 잘못한 염업조합의 책임도 있지만 감독부처인 산업자원부가 수백억 원의 국고를 쉽게 조합에 이양하고 적절한 통제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전남도 천일염정책 현실성 결여' 지적
지난 5월 법개정으로 천일염 관련 사무가 광역자치단체로 이관되자 전남도는 최근 '함초천일염 생산단지 조성 소금박물관 건립' 등 기능성 소금을 생산해 지역특산품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김종익 사무국장은 "천일염의 안정적인 생산기반 구축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없이 기능성 소금생산이라는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천일염 생산지역 자치단체와 학계, 생산자,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폭넓은 의견수렴과 함께 실태조사를 실시한 뒤 천일염육성종합대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천일염 생산자인 전남 신안군 임자면 이동수씨도 "전남도가 마련한 시책은 한정된 지역을 대상으로 한 현실성이 없는 대책"이라고 지적하고 "천일염 주산지 전체를 대상으로 한 육성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최근 전남도가 천일염을 식용으로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국산 천일염 생산현황을 파악하고 성분 비교실험도 실시할 계획이다. 또 천일염 업계를 비롯해 학계와 소비자단체를 초청해 지역별 공청회도 열어 올 연말까지 식용여부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손질작업을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천일염에 대한 구비요건과 제조기준 등 규격을 정비해 위생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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