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등교시간 무렵, 시내 모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학교 인근의 한 지역에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들의 거주지와 주소지가 일치하는지 무작위로 조사하기 위한 일종의 암행으로 소위 위장 전입자를 가려내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호주 일간지에 실린 기사 한 토막이다. 이른바 교육환경이 우수하다고 평이 나있는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주소를 옮기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지적이 일자 해당 학교 교장선생님이 직접 진위 확인을 나섰다는 보도였다.
자녀들에게 질높은 교육을 시키고 싶고 고교 졸업 후 기왕이면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부모의 욕심은 한국 뿐 아니라 호주도 마찬가지임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해마다 가열되는 호주 부모들의 교육열로 인해 공립학교 외면현상과 가톨릭계 및 사립학교로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이 점차 전국적인 상황으로 굳어지고 있다. 자녀들을 지역 내 공립학교에 보내더라도 고학년 무렵에는 대학입시를 고려해 사립학교로 전학을 시키거나, 사립학교 학비를 감당할 형편이 못 될 경우에는 우수 학군 지역에 사는 친지들을 동원, 주소지를 변경하여 편법으로 명문 공립고교에 들여보내는 사례가 적지 않다.
호주의 초·중·고등학교는 공립과 사립 그리고 가톨릭계 준사립 계통으로 대별된다. 이 가운데 가장 우수한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립학교 선호도가 해마다 높아짐에 따라 대다수 공립학교는 존립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고 있는 부모들 가운데는 공립학교를 원하는 사립학교의 입학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대기하며 머무는 곳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모 외에는 대체로 자녀교육에는 무관심하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탓에 지역 학군내의 일반 학교로 진학시킨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호주는 공립학교 지원자 중에서 시험을 치러 학생들을 선발하는 순위별 셀렉티브 고교가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립과 가톨릭계, 셀렉티브 고교로 빠져나간 학생들을 제외하면 각 지역마다 분포되어 있는 일반 공립학교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몇 년간 정부의 일선 교육계 지원금도 점차 사립학교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어 재정까지 궁핍한 처지에 몰린 공립학교의 입지는 점점 옹색해져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반 공립학교 지원자들은 우수 교육환경 선택의 최후 수단으로 명문학군으로 위장전입을 시도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빠져나가는 학생들을 붙잡아 둘 별다른 대책이 없는 일선 공립학교들은 존폐위기 상황극복의 자구책으로 최근 들어 성적 우수자들을 위한 영재반을 운영하는 것으로 대책마련에 나섰다.
일반 고교에 영재반을 운영한다면 셀렉티브 고교 선발 고사를 치를 만한 실력을 갖춘 성적 우수자들을 우선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도중에 전학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학교에 남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미 영재반을 가동하고 있는 몇몇 고등학교에서는 고학년 학생들의 전학률이 큰 폭으로 낮아지는 뚜렷한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최근 호주의 한 대학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출신고교별 성적분포를 분석한 결과 사립이나 시험제 입학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의 대학 수학능력이 일반 공립고등학교 졸업생들보다 오히려 뒤처진다는 통계자료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대학입시를 위해 학교 내 특별 지도나 개인 과외지도를 별도로 받은 경험이 거의 없는 일반 고교 졸업생들은 대학 학업수행에 적합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학습능력에서 타 계통 학교 출신들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때맞춰 나온 이같은 결과에 고무되어 일반 공립학교는 영재반 편성과 함께 학생들의 학력향상에 주력, 사립고교로 쏠리고 있는 학부모들의 관심을 돌려놓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한국교육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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