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또 사랑합시다 우리 민족끼리

2005 민족문학작가대회 참가기 (1)

등록 2005.07.27 15:29수정 2005.07.2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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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둠을 가르고 먹구름을 뚫고서 백두산 천지 위로 해가 솟아올랐다. 조국통일의 상서로운 징조였다.

어둠을 가르고 먹구름을 뚫고서 백두산 천지 위로 해가 솟아올랐다. 조국통일의 상서로운 징조였다. ⓒ 박도

- 조국 통일 비원을 못다 이루고 저승으로 가신 여러 어른님과 내 아버님 영전에 불효자식이 피눈물로 이 글을 써서 바칩니다. -

들어가는 글


2005. 7. 23. 05:05 백두산 가장 높은 멧부리 장군봉에는 남북 작가들이 모여 구름의 바다를 헤치고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통일 만세를 외쳤다. 북측의 한 여성시인이 "그동안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아껴왔지만 이제부터는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마음껏 합시다"라고 삼천리강토 7천만 겨레들에게, 그리고 나라 안팎의 모든 백성들에게 피맺힌 절규를 했다.

a 내 취재수첩에다가 적어준 북녘 박경심 시인의 사인

내 취재수첩에다가 적어준 북녘 박경심 시인의 사인 ⓒ 박도

나는 그에게 다가가 이름을 묻자 그는 내 취재 수첩에다가 다음과 같이 써주었다.

a 북녘 박경심 시인이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부르짖고 있다.

북녘 박경심 시인이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부르짖고 있다. ⓒ 박도

사랑하고 또 사랑합시다. 우리 민족끼리 2005. 7. 23 박경심

내가 취재 수첩을 건네받고 손을 내밀자 그가 내 손을 꼭 잡았다.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2005. 7. 20~25 평양, 백두산, 묘향산" 대회의 수많은 말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고, 앞으로 통일의 대장정에 지표가 될 말로, 백두산 상봉에 새길 말로 여겨지기에, 박 시인의 양해를 얻어 내 기사의 첫 제목으로 삼았다.

단장의 38선, 그리고 휴전선


나는 1945년 해방이 되던 해 구미초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했던 달이 동짓달(음력)이라 이미 광복의 기쁨은 사라지고 분단(분열)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던 때였다. 그 이듬해 10월, 10·1사건(항쟁)이 일어났고, 거기에 연루된 아버지는 선산경찰서 유치장에서 사표를 쓰고 21일만에 풀려났다. 그 뒤로 당신 인생길은 뒤죽박죽이었다.

집안이 풍비박산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의 인생길을 이해하지 못한 아들의 항의에 아버지는 풀 죽은 목소리로 "기차가 철길을 벗어나면 뒤죽박죽이 되기 마련이고, 이나마 애비가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고 말씀하시면서 해방 전후로 똑똑한 사람 숱하게 죽었다고 했다.


a 우리 조국의 허리를 잘랐던 38선

우리 조국의 허리를 잘랐던 38선 ⓒ NARA

아들의 수난을 본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쓰다듬으면서 "네가 어른이 될 때는 38선도 없어질 것이고 우리나라가 통일이 될 거라"고 당신의 소망을 담은 말로 "너는 군에 가지 않아도 될 거다"고 예언하였다. 하지만 그 손자가 어른이 되어도 38선이 없어지기는커녕 휴전선으로 철조망이 더욱 겹쳐지고, 그 손자가 군에 가서 전방을 지키다가 제대한 지 30년이 넘어도 38선은 휴전선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 요지부동이었다.

단장의 38선, 그리고 휴전선 - 이 해괴망측한 선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감옥에 갔던 단장의 선인가. 우리 겨레치고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 38선, 휴전선의 직간접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왜 우리나라가 분단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왜 우리나라가 분단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전범국이 아니다. 분단이 된다면 일본이 되어야 옳았다. 우리나라는 전승국들에게 하나의 전리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 무렵의 역사를 살펴본다.

a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총독 아베가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1945. 9. 9)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총독 아베가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1945. 9. 9) ⓒ NARA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35년간의 식민지배가 끝날 무렵, 얄타회담 결정에 따라 일본과의 전쟁에 참가한 소련은 만주를 공격하는 한편 조선의 옹기를 점령하고(1945. 8. 11), 나진(8.12) 청진(8.13)에 상륙하여 계속 남진했다.

일본 관동군이 쉽게 무너지면서 소련군이 계속 한반도로 남진한 데 반해 미군은 아직 류우뀨우도(琉球島)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한반도에 진주하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따라서 소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한다 해도 막을 길이 없었다.

이에 초조해진 미국은 소련에 대해 미·소 양군이 일본군 무장을 해제하고 항복받을 경계선으로 38도선을 제의했다. 미국의 경제 원조를 기대하고 또 일본 점령에 참여할 속셈이 있었던 소련이 이에 동의했다..(강만길, <한국현대사>, 207쪽, 창비)


이리하여 1945년 8월 10일, 미국 조 매클로이 육군성차관보 사무실에서 일본군 항복에 대비할 SWNCC(국무성과 육군성 및 해군성 합동조사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어서 제임스 딘 국무성 차관보, 랄프버드 해군성 차관보 등 세 사람이 지구본을 앞에 두고 38선을 그어서 그 이북은 일본이 소련군에게, 그 이남은 미군에게 항복케 하라는 안을 작성했다. 이 안이 그대로 채택되어 원한의 38선으로, 한국전쟁 뒤로는 휴전선으로 국토의 허리를 자르고 수많은 겨레의 숨통을 조였다.

a 방북중 목에 걸고 다녔던 명찰(우리 회원들끼리는 '개목걸이'라고 불렀다)

방북중 목에 걸고 다녔던 명찰(우리 회원들끼리는 '개목걸이'라고 불렀다) ⓒ 박도

2005. 7. 20.

06:30. 카메라 가방, 노트북 가방, 그리고 옷과 선물을 담은 가방을 들고서 집을 나섰다. 정장차림에 두 어깨에다 가방을 메고 손으로 가방을 끌자니 아침부터 비지땀이 나왔다.

아내는 노트북은 두고 가라고 일렀지만 메모리 칩이 하나밖에 없기에 사진을 마음 놓고 찍을 수 없다. 1999년 백두산을 올랐을 때 내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든가. 그래서 이번에는 디지털과 필름카메라, 거기다가 망원렌즈까지 꾸렸으니 아내가 무척 안쓰러웠나 보다.

집 앞에서 택시로, 대학로에서 공항버스로 바꿔 타고 인천공항으로 달렸다. 얼마나 참고 기다렸던 북행길인가. 지난해 봄, 평양에서 열리는 민족작가대회 방북 신청을 해서 용케 뽑혔다. 지난 8월 출발을 앞두고 남북, 북미관계가 냉각되어 다시 일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떠나게 된 것이다.

a "남과 북의 끊어진 철길 위에도 쓴다 "조국은 하나다", 평양 가는 차표를 다오.

"남과 북의 끊어진 철길 위에도 쓴다 "조국은 하나다", 평양 가는 차표를 다오. ⓒ 박도

07:40, 집결 시간 20분 전에 인천공항 A지구 국내선 대기 장소에 도착하였다. 내가 속한 5조 조장 오수연(소설)씨로부터 방북증과 명찰, 출국신고서를 받고 짐을 부쳤다.

그런데 뜨끔한 소식이 전해 왔다. 짙은 안개로 평양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하여 출발이 늦어지겠다는 상황실장을 맡은 정도상(소설)씨의 전갈이다.

이대로 무산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일었다. 어제 예비모임에서도 집행부는 그동안 살얼음을 걸어왔다고 말하면서 참가단에게 제발 튀는 언행을 자제해 달라는 간곡한 당부를 했다.

분단 60년 동안 막힌 길이 쉽게 열리지 않나보다고, 이 참에 요기와 형제들에게 출발 인사 전화를 하고 자리로 돌아오자 평양에서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우리는 하나

a 평양으로 떠나기에 앞서 출발성명을 낭독하는 염무웅 작가회 이사장(가운데)

평양으로 떠나기에 앞서 출발성명을 낭독하는 염무웅 작가회 이사장(가운데) ⓒ 박도

10:00, 남측 대표단에 출발에 앞서서 공항대기실에서 작가회의 염무웅 이사장의 비장한 성명서 낭독이 있었다.

...지금 우리는 솟구치는 흥분을 누르고 애써 소박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지려 합니다. 부풀었던 기대가 허탈한 아쉬움으로 바뀔까 두렵고, 어루만지기 위해 내밀었던 손이 자칫 상대의 아픈 데를 건드리지 않을까 겁나기 때문입니다.

a 인천공항에서 남측대표단의 짐을 싣고 있는 고려항공

인천공항에서 남측대표단의 짐을 싣고 있는 고려항공 ⓒ 박도

하지만 우리는 평생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고초를 겪으신 수많은 지하의 선열들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시며, 또한 앞으로 무궁한 세월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갈 후대의 자손들이 우리의 언행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11:00. 출국장에서 그동안 TV로만 보았던 북한 고려항공에 올랐다. 빨간 스커트와 흰 블라우스 차림에 빨간 줄무늬 스카프를 두른 고려항공 여승무원들의 환한 웃음과 "안녕하십니까?"라는 상냥한 북측 말씨의 인사가 우리 일행을 반겨 맞았다.

기내에서는 "우리는 하나" "반갑습니다"라는 노래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a 북녘 안내원과 함께(만경대 고향집에서)

북녘 안내원과 함께(만경대 고향집에서)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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