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편제를 바꾸어서 심난하게 할 필요가 있나 그래.”
인사참모가 나가자 삐거덕 거리는 나무의자에 몸을 묻으며 수영장 고선지가 부관에게 뉘었다.
“바람직한 일이라 봅니다. 조정의 군사 규모에 비해 수적으로 불리한 저희는 조정의 일 개 사(司)에나 미칠 규모이므로 심적으로 매우 위축될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부대개편을 하는 것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더구나 이미 병법도 화약무기를 사용하는 체제로 완전히 전환되었고 조련도 서구의 전술을 많이 응용했으므로 편제도 의당 이에 맞추는 것이 필요한 과정이 아니겠는지요.”
“그도 그렇긴 하다만 너무 뜸을 들인다는 생각이 들어. 내 생각엔 지금 확 내쳐도 될 것 같은데, 그까짓 것, 궁성을 덮쳐서 썩어 문드러진 벼슬아치 나부랭이나 싹 베어버리면 되지 않겠느냐 말이야. 나머진 백성들이 알아서 호응할 테고.”
“수영장님께오선 백성들을 믿나보옵니다.”
“백성들, 무섭지. 그러면서도 너무 나약하고 한없이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해. 허나 이 땅의 미래는 백성들이 어떻게 깨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일세. 당장 총 몇 자루가 중요한 게 아니야.”
“논설이야 의당 지당한 말씀이오나, 전 사실 백성이란 존재에 대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겠나이다. 쳐다보고 있을수록 알 수 없는 존재라고나 할까….”
“글쎄 그 문제까지야 우리가 마음에 둘 필요가 있겠나. 계획과 결정이야 본영에서 하는 것이고 우린 그냥 명에 따르면 되는 것을. 장수가 생각이 많으면 나라가 망해.”
“하하하, 그래도 저흰 아직 나라가 없으니 그것이 다행입니다요.”
“하하하, 이 사람.”
부관의 농에 수영장 고선지가 기분 좋게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고선지가 다시 운을 떼었다.
“그런데 편제의 비중으로 보아 수군에 대한 배정이 너무 미약하다는 생각이 안 드나?”
“그게 다 돈 때문이 아니겠사옵니까? 전선 한 척 건조할 비용이면 1개 대대의 반 년치 봉록이올 텐데요.”
“그래도 큰일을 당함에 군졸의 수송과 상륙은 물론 이거니와 한양으로 들고 나는 물산을 막고 장시일 농성하기엔 지금의 전선 3척과 병조선 몇 척으론 너무 빈약하단 말이지.”
“옳으신 말씀이오나 당장은 도성을 점령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데에 전략의 요추가 있는 지라 수군에까지는 여력이 미치지 않을 것이옵니다.”
“결국은 내가 알아서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몇 척의 전선으로 최소한의 시늉만 유지하라는 것인가?”
“설마 그렇기야 하겠사옵니까.”
“우리 조선의 수군 역사가 어떤 역사인가. 먼 태곳적 기록으로도 조분왕 4년(233)에 동해안에 횡행하는 왜구의 대선단을 사도해상(沙道海上)에서 화공으로 요격하여 섬멸한 바 있고 광개토대왕도 친히 고구려 수군을 지휘하여 백제의 58성과 700촌을 점령하고 서해를 침범한 왜구의 대선단을 친히 격파한 일이 있잖으냐.
그 뿐인가. 신라시대의 장보고 또한 청해진대사로 있을 때 서남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일본과 중국 해상까지 해상 교통로를 확보하였음은 익히 아는 사실일터. 고려의 조선술과 항해술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서양의 베네치아 수군이 군선에 함포를 처음 장비한 갈리아스선(Galleass船)보다 160여 년이나 앞서 전선에 화포를 장비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국난에 맞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강력한 수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거늘 여전히 수군에 대한 염려가 심히 미약하단 말이야.”
“비록 저희가 수효는 적으나 당장 조정의 수군을 맞아 방비하기엔 부족함이 없지 않사옵니까. 오늘날 조선의 수군이 수군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수영의 장부에 올라 있는 전선들 중 과연 움직이는 것이 몇 척이며, 움직인다 한들 40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배와 화포로 무얼 어찌할 수 있겠사옵니까? 저희 전선엔 사거리가 십 리에 달하는 화포를 다섯 문이나 실려 있습니다. 포탄 한 발로도 오 백석 규모의 조운선을 능히 가라앉힐 위력이니 무엇을 두렵겠사옵니까.”
“판옥선이 강한 선체를 가졌다 하나 그것으로 양이나 일본, 청의 수군을 대적할 수 있다 생각하는가? 어림없는 일이지. 강선이 있고 고폭탄을 사용하는 서양의 화포도 화포지만 증기의 힘을 이용하는 선체의 거대함과 견고함에 맞닥뜨리면 그런 자신감은 꼬리를 감출 것이야. 검은 연기를 뿜으며 급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그 괴물을 대하노라면 가히 두려움 외엔 다른 감정이 자리할 틈이 없을 것이야. 그나마도 그게 목선이면 우리 개화군의 화포라면 승산이 있어. 그러나 근래 새 풍조인 장갑함이란 것이라도 나타나면 눈앞에 두고도 어찌할 바가 없을 게야.”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저희 개화군의 수군 방비를 확충한다 한들 도움이 아니 된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럴수록 전선의 수를 늘리고 조련에 힘써야 하겠지. 이양선이 우리 바다를 제 집 안마당 드나들 듯 하는데 조그마한 부담이라도 얹어줄 처지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다를 외적에게 내어준다면 육지에서의 힘이 아무리 강성하다한들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니.”
“….”
부관이 입을 다물자 수영장 고선지도 말을 멈췄다. 우선 당장 개화군의 봉기가 어찌 될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 이후까지를 논한다는 것도 너무 앞선 생각 같았다. 어느 날 조선의 수군이 이 해도를 에워싸고 개화군을 말려죽일 수도 있었고, 또 설사 봉기하여 한양에 진입했다 해도 자신들의 운명이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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