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날리는 공포의 세계속으로

<서평>'세계호러단편100선'-문학 거장들의 엽기발랄한 상상력

등록 2005.07.27 21:55수정 2005.07.2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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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기나긴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당신이라면 한번쯤 더위를 잊게 만들어줄 시원한 공포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더워서 영화 보러 극장까지 갈 힘도 없다고? 그래도 문제없다. 독서삼매경에 빠지기를 희망하는 근면한 문학도는 물론이고, 당신같은 '귀차니스트'라도 손만 뻗으면 집을 수 있는 책 한 권속에 이 여름을 날려줄 시원한 공포가 있으니까.

<세계호러단편 100선>(브람 스토커,오 헨리 외/정진영 옮김/책세상)은 말 그대로 100명의 작가가 쓴 100개의 단편 호러소설 모음집이다. 중복되는 작가 없이 1인 1편 원칙대로 모은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마치 단편 호러 영화를 보는 듯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닌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감상할 수 있다.


여름철은 아무래도 계절상 두껍고 무거운 책보다는 읽기 편하고 쉽게 눈에 들어오는 이벤트 형 서적들이 강세를 보이는 것이 특징. <세계호러단편>은 이번 여름용 서적의 전형성을 갖추어 호러 소설 특유의 빠르고 스피디한 전개와 반전을 거듭하는 극적이고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돋보이는 것은 역시 저자들의 면면이다. 추리소설의 대가 애드거 앨런 포우(하나인 네 짐승, 낙타 표범)나 아서 코난 도일(사건의 내막), <드라큘라>로 우리에게 유명한 브람 스토커(스쿼)처럼 호러 장르와 '친인척' 관계가 있는 친숙한 작가들의 이름도 있지만, 안톤 체홉(잠꾸러기)이나 마크 트웨인(유령이야기), 기 드 모파상(경련),버지니아 울프(흉가)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는 고전 문학의 거장들로 널리 알려진 작가들도 제법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일부 작가들의 이름만 보고 지루하거나 골치 아픈 작품이라고 지레 짐작하지는 말 것. 일례로 둘째 장을 차지하고 있는 <가구딸린 방>의 오 헨리의 경우 <마지막 잎새>나 <경관과 찬송가>같은 작품에서 보듯이 서정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체 속에서도 마지막에 반드시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결정적 반전'을 넣어준다.

국내에서는 호러 소설이 다소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장르로 널리 알려진 점을 고려하며 호러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고전의 거장들이 자신의 스타일안에서 장르를 어떻게 소화해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의 감상 포인트.

물론 이들의 작품에서는 대체로 호러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고어적인 잔혹 묘사나 원혼의 저주같은 전형적인 클리셰를 남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각기 다른 수십 편의 작품들을 통해 거의 일관되게 드러나는 주제의식은 일상의 숨겨진 공포와 인간의 숨겨진 이중성이 만들어내는 음산함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소설의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서구 문학의 영원한 테마였던 인간 내면의 본성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한다. 심심풀이로 가볍게 읽어도 상관없지만 작가들의 상상력을 음미하며 한장 한장씩 숙독하는 것이 좋다. 브람 스토커의 <스쿼>에서 출발하여 <우주전쟁>의 원작자로 이름이 알려진 허버트 조지 웰스의 <붉은 방>으로 100편의 순례를 마치고 나면 재미와 함께 2시간 동안의 기묘한 '환상특급'을 체험하고 나온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아쉬운 점은 몇 군데 장소나 인물을 묘사하는 대목이 매끄럽지 않게 번역돼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몇몇 작품의 경우 장르상 호러로 구분하기도 어렵고 '세계호러단편'을 대표하기에 질이 떨어져 '옥의 티'다. 반드시 '100편'이라는 제한을 두기보다 70-80편 정도로 줄이고 작품에 대한 기원과 해설을 상세하게 적었다면 독자들에게 좀더 친절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에드거 앨런 포.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
책세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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