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55Cm의 사랑이 있다> 책표지.
나는 비장애인이 마냥 부러운 장애인이다. 단 5분만이라도 내 두 발로 당당히 걸어보고 싶은 소망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잘빠진 몸매를 가진 여자들이 부럽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엉덩이를 실룩대며 걸어가는 여자들이 부럽다. 다리를 꼬고 앉고, 도도하게 가슴을 내밀며 걷는 여자들이 부럽다.
나는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한다. 신은 내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건강한 다리를 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진실하고 온유한 사랑을 허락하셨다. 비장애인으로 태어난다면 장애인으로 살았던 삶보다 더 편안하고 쉬운 생활이 될지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내 남편은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은, 나에게 가장 행복한 삶은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다.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내 남편이 곁에 있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 -<나에게는 55Cm의 사랑이 있다> 본문 중에서-
지붕을 때리는 굵은 빗방울 소리가 요란하다. 더위에 막무가내로 쫓겨 간 장마가 무슨 미련에 다시 되돌아 온 듯싶다. 더위로 잠 못 들던 지난밤들이 있었던가 싶게 빗소리만으로도 아주 서늘한 밤이다.
거기에 지난 이틀을 함께 했던 윤선아! 그녀를 돌이켜 봄에 그 감동들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어 그 서늘함을 한층 배가시키고 있다.
등으로 목으로 쉼없이 땀이 흘러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한기가 들었다. 온 몸으로 오돌도돌 소름이 돋았다. 그녀. 윤선아의 27년 삶이 녹여버릴 듯 이글대는 한 여름태양을 내게서 순식간에 몰아내고 있었다.
'골형성부전증'.
계란껍질처럼 뼈가 쉽게 부러지는 병.
태어날 때부터 그 병을 앓아왔던 그녀. 하여 그녀의 키는 120cm이고 그로 인해 엄지공주라는 별명을 가졌다.
생후 20일째부터 시작된 그녀의 골절은 옷을 입다가도, 찌르릉 전화벨소리에도, 쾅하는 대문닫는 소리에도 부러졌다. 이제 다 나았다 싶으면 부러지고, 부러져 있는 상태에서도 또 부러지고, 부러지고, 또 부러지고….
멈출 줄 몰랐다. 그녀의 유년시절은 오로지 병원과 집에서의 생활뿐이었고, 학창시절은 늘 엄마 아빠의 등에 업혀 학교를 오가던 기억뿐이었다.
그녀는 '다리가 네 개라서 더 빠릅니다. 손으로 목발을 빨리 움직이면 속도가 붙어요! 한 번 보시겠어요? 장애인이라는 편견은 버려 주세요. 정말 열심히, 잘할 자신 있습니다' 라며 심사위원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결국 은행원이 되었고 친절사원으로 추천까지 받는 당당한 직장여성으로서의 성공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