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cm의 엄지공주, 그녀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나에게는 55Cm의 사랑이 있다>를 읽는 내내 내 몸엔 소름이 돋았다

등록 2005.07.28 11:57수정 2005.07.2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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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55Cm의 사랑이 있다> 책표지.
<나에게는 55Cm의 사랑이 있다> 책표지.
나는 비장애인이 마냥 부러운 장애인이다. 단 5분만이라도 내 두 발로 당당히 걸어보고 싶은 소망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잘빠진 몸매를 가진 여자들이 부럽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엉덩이를 실룩대며 걸어가는 여자들이 부럽다. 다리를 꼬고 앉고, 도도하게 가슴을 내밀며 걷는 여자들이 부럽다.


나는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한다. 신은 내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건강한 다리를 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진실하고 온유한 사랑을 허락하셨다. 비장애인으로 태어난다면 장애인으로 살았던 삶보다 더 편안하고 쉬운 생활이 될지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내 남편은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은, 나에게 가장 행복한 삶은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다.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내 남편이 곁에 있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 -<나에게는 55Cm의 사랑이 있다> 본문 중에서-


지붕을 때리는 굵은 빗방울 소리가 요란하다. 더위에 막무가내로 쫓겨 간 장마가 무슨 미련에 다시 되돌아 온 듯싶다. 더위로 잠 못 들던 지난밤들이 있었던가 싶게 빗소리만으로도 아주 서늘한 밤이다.

거기에 지난 이틀을 함께 했던 윤선아! 그녀를 돌이켜 봄에 그 감동들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어 그 서늘함을 한층 배가시키고 있다.

등으로 목으로 쉼없이 땀이 흘러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한기가 들었다. 온 몸으로 오돌도돌 소름이 돋았다. 그녀. 윤선아의 27년 삶이 녹여버릴 듯 이글대는 한 여름태양을 내게서 순식간에 몰아내고 있었다.

'골형성부전증'.


계란껍질처럼 뼈가 쉽게 부러지는 병.

태어날 때부터 그 병을 앓아왔던 그녀. 하여 그녀의 키는 120cm이고 그로 인해 엄지공주라는 별명을 가졌다.


생후 20일째부터 시작된 그녀의 골절은 옷을 입다가도, 찌르릉 전화벨소리에도, 쾅하는 대문닫는 소리에도 부러졌다. 이제 다 나았다 싶으면 부러지고, 부러져 있는 상태에서도 또 부러지고, 부러지고, 또 부러지고….

멈출 줄 몰랐다. 그녀의 유년시절은 오로지 병원과 집에서의 생활뿐이었고, 학창시절은 늘 엄마 아빠의 등에 업혀 학교를 오가던 기억뿐이었다.

그녀는 '다리가 네 개라서 더 빠릅니다. 손으로 목발을 빨리 움직이면 속도가 붙어요! 한 번 보시겠어요? 장애인이라는 편견은 버려 주세요. 정말 열심히, 잘할 자신 있습니다' 라며 심사위원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결국 은행원이 되었고 친절사원으로 추천까지 받는 당당한 직장여성으로서의 성공도 맛보았다.

남편과 함께 난생 처음 찾은 바닷가에서.
남편과 함께 난생 처음 찾은 바닷가에서.본문 중에서
그녀 앞에 175cm의 잘 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그를 사랑했다. 하여 그녀는 자신의 푸른 젊음을 무모하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걸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가 그녀와의 55cm차이를 사랑으로 기꺼이 채워준 건.

나는 그들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부부라 감히 말하련다. 또한 부부일심동체라는 그 흔하디흔한 말을 그들은 진실로 느끼고 있음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2005년 1월 30일 5시 30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3193m지점에 위치한 푼힐 정상에 그녀가 우뚝 섰다.

'희망원정대'란 이름 아래 10명의 장애인과 그들의 10명의 멘토들. 그속에 그녀가 있었다. 물론 그녀가 그토록 사랑한다는 그녀의 남편도 함께 있었다. 그녀는 그곳 히말라야에서 눈부신 눈을 닮은 신부가 되어 산상결혼식을 올렸다.

히말라야에서 남편과 함께 한 엄지공주.
히말라야에서 남편과 함께 한 엄지공주.본문 중에서
이 세상 살면서 죽는 날까지 한번도 못 걸어보고, 못 뛰어보고, 키가 자라지도 못하고, 도도하게 살아 볼 수 없는 것. 너무나 억울하다. 단 5분만이라도 건강미 넘치는 여자로 살고 싶은 평생 아쉬운 마음. 살찐 거 고민하고, 쌍꺼풀이 없는 눈을 고민하고, 낮은 코를 고민하는 비장애인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그녀는 나를 무척이나 부끄럽게 했다. 내가 두 발로 걷는 것조차도 그녀에겐 절대적인 소원이 되고 있었기에. 지극히 평범한 나의 삶. 때론 그것이 답답하다 가슴을 치며 온갖 것에 불만과 투정을 일삼는 나의 어리석음이 그녀의 삶 앞에 고개조차 들 수 없게 하였다.

조금 더 나은 삶, 그보다 또 조금 더 나은 삶을 향하여 늘 끝없는 욕심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 내 머릿속의 나만의 잣대를 남편에게 아이에게 또 내 부모에게 들이대고 또한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았던 나의 아집들. 남편이나 아이가 내 잣대에 맞추지 않는다고 불같이 화를 낸 시간들. 내 부모가 나를 넉넉하게 채워주지 않았음을 원망했던 내 지난 시간들. 그 시간들을 불행이라고 치부해 버렸던 내 어리석음의 극치. 그것조차도 행복이라는 것을, 그것조차도 내겐 축복이라는 것을 그녀는 깊이 뉘우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아홉 개를 가졌으면서도 그 아홉 개를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머지 한 개마저 가지기를 소원했다. 늘 남의 떡이 커보였고 그 큰 떡을 내 것으로 만들려 부질없는 조급함에 갈증을 느꼈다. 결국은 내 것이 될 수 없음에 실망하고 좌절했다. 급기야는 내 것이 되어 주지 않는 남의 떡을 끊임없이 비난하고 힐책하는 우를 범했다. 난 그런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내 머리가 시키는 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여주는 내 두 팔과 두 다리. 한번쯤 길을 가다 넘어져도 툭툭 흙을 털어내면 그만인 내 몸뚱이.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인 것을.

거기다 성실하고 착한 남편. 씩씩하고 밝게 자라주고 있는 내 딸 아이. 하루 24시간 쉼 없는 자식사랑에도 늘 부모노릇이 부족하다시는 내 부모님. 무엇이 행복의 조건으로 더 필요한걸까.

윤선아! 그녀의 하얀 미소가 아름답다.
윤선아! 그녀의 하얀 미소가 아름답다.본문 중에서
윤선아! 그녀를 글로 만나는 이틀 동안. 멀리 떨어져 진정한 나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부질없는 것에 늘 아등바등 목매는 나를 보았고 그 조급함에 늘 갈증으로 허덕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지금 내가 가진 지극히 평범한 그것들이 바로 행복의 첫째 조건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윤선아의 노래선물'이라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내건 KBS 라디오 프로의 진행자로 오늘도 어김없이 마이크를 잡고 있을 그녀를 생각한다. 120cm의 작은 키는 결코 그녀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했다. 작은 키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장애가 오히려 남편을 만나게 해주었다며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그녀였다.

남편과 자신의 55cm 키 차이를 아름답고 고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채워가는 정말 대단한 그녀. 이 여름 그녀를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사랑도 꿈도 인생도 살아가면서 수없이 바뀌고 변하고 퇴색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렇게 살아간다면 정답 없는 삶에 작은 힌트가, 어둠속의 희미한 불빛이 보이지 않을까. -본문 중에서-

정답 없는 삶의 작은 힌트를 찾아 오늘도 최선을 다할 그녀의 하루가 내 가슴을 비집고 들어온다. 나 역시도 내 하루를 위해 아니 내 삶의 진정한 정답을 찾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는 깊은 밤이다.

윤선아! 그녀 때문에, 그녀가 내게 전해준 뜨거운 감동 때문에, 아니 어쩌면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이 밤. 내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바로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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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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