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연정인가

지금이야말로 개혁 의제 바로 세울 때

등록 2005.07.29 06:07수정 2005.07.2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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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놓고 말들이 많다. 노 대통령은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를 바로잡아 정상적이고 생산적인 정치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이런 제안을 했다고 주장한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대통령의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열린우리당은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여 내각제 수준의 연정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의 해소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도 이루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런 대연정 제의가 과연 올바른 것이며 시의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커다란 의심이 존재한다. 오로지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정치적 이념과 소신이 다른 집단과 아무런 원칙 없이 야합을 해도 좋은가?

모든 이념과 정책의 차이를 덮어두고 그렇게 연합해서 이룩한 연정을 통해서 무엇을 하잔 말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역주의 못지않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와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현 시기에 과연 그런 모든 문제를 제쳐두고 지역주의 해소 쪽으로만 관심을 돌리는 일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우리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수구 세력의 갖은 공작과 방해를 물리치고 개혁의 열망을 담아 노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또 그런 노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에 처하자 눈물겨운 촛불 시위를 통해 이를 막아내고, 총선에서 여당에 과반수를 줌으로써 개혁 정책을 강력히 성원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정권은 개혁에 대한 이런 국민의 염원을 조금도 이루어주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과거사법 등 3대 개혁입법이 좌초된 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집권 이후 현 정권과 여당은 노동·환경·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전혀 개혁적이지 못하고 기존의 보수적 정책을 답습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함으로써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배신해 왔다.


그러한 잘못된 정책에 대한 실망의 결과가 여소야대이며 열린우리당의 한없는 지지율 추락이다.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여대야소의 국면에서도 올바른 의제 설정 실패, 강력한 개혁의지 부족, 여당 내부의 분열 등으로 개혁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현 정권은 여소야대의 국면 아래서는 더더욱 지리멸렬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만을 보여 왔다.

급기야 이제 이런 무기력증에 빠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사실상 개혁정책의 완전한 포기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과의 야합을 대연정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3대개혁입법을 비롯한 개혁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온 것이 누구던가? 그것은 바로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기득권 세력이 아니던가? 그런 세력에 끌려 다니다가 이제는 아예 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대연정을 하자는 것이 과연 개혁정책을 완전히 포기하고 권력을 서로 나눠가지자는 정치적 야합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그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누적되어 온 병폐와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현재 모든 국민의 관심과 분노의 표적이 되고 있는 미림팀의 도청 테이프 공개로 드러난 정치권과 경제계와 언론계 인사들의 추악한 야합이 그러하다. 서울대 입시안 파동으로 드러난 고질적인 대학입시와 교육문제가 그러하다. 정부 및 재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포함한 노동문제가 그러하다. 부안사태와 천성산 문제 등으로 불거진 환경문제가 그러하다.

거기다가 일본 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를 둘러싼 외교문제라든지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현재 진행 중인 6자회담 문제는 또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했듯이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중대한 현안이라고 할 이런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모여 있는 이 때야말로 이런 것들을 진지한 정치 의제로 내세우고 이에 대한 적극적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개혁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현 정부와 여당의 책무이다.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가면서 다시 한 번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합의를 모아 강력한 통일정책을 펼쳐나가면서 이와 연관된 국가보안법 문제를 의제로 세워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과의 외교문제에 대한 원칙적이고 주체적인 대응과 함께 이와 연관된 과거사법 문제를 다시 의제로 내세워 해결해야만 한다.

정부는 서울대 입시안 파동을 계기로 삼아 잘못된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대학서열화와 학벌 차별 등으로 인해 파행을 겪어 온 입시문제를 비롯한 교육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도청 테이프 공개로 드러난 정치·경제·언론의 검은 커넥션을 철저히 수사해 공개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 정치적 개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국가권력기관이 자행해 온 도청을 비롯한 국민의 주권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일체의 불법행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공개한 뒤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삼성 문제를 계기로 재계와 결탁하여 여전히 재계 편에 치우쳐 온 노동정책을 수정하여 비정규직을 비롯한 열악한 노동자들의 생존 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들을 현재의 정치 의제들로 뚜렷이 설정하고 앞장서서 이에 대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강력히 추진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현 시기 정부와 여당의 임무이다.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해 내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를 바로잡아 정상적이고 생산적인 정치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이 것은 수구세력과의 대연정이라는 정치적 야합을 통해서라도 권력을 나눠 가짐으로써 자기들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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