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것만 보지 말 것을 가르치는 뉴욕

나의 첫 번째 뉴욕 사랑, 플랫아이런 빌딩

등록 2005.08.01 22:17수정 2005.08.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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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누군가와 사랑에 따졌다고 할 때 뭐가 그리 좋냐고 물으면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연인처럼, 내가 뉴욕을 사랑하는 데에도 특별히 '이렇고 저렇고 해서 뉴욕이 참 좋습니다' 하고 할 말은 없었다. 다만 뉴욕이라는 도시만으로도 설렜고, 언젠가는 꼭 그 곳에서 살겠다는 다짐만 굳혔을 뿐이다. 그렇게 굳혀가던 다짐은 어느새 나를 뉴욕행 비행기에 태웠다.


스물 한 살 한복판에 서 있던 나는 뉴욕에 가기로 했다. 뉴욕에 혼자 가기로 했다. 뉴욕에 혼자 가서 여섯 달 동안 뉴욕에 살기로 했다. 그리고 맨해튼 탐험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하루하루 보내는 뉴욕에서의 시간들 속에서 왜 내가 뉴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지에 대한 답들을 찾아 가고 있다.

a 뉴욕 플랫아이런 빌딩

뉴욕 플랫아이런 빌딩 ⓒ 이혜령


# 나의 첫 번째 뉴욕 사랑 : 플랫아이런 빌딩

이 빌딩은 일단 세모 모양을 한 빌딩이다. 브로드웨이와 5번가(5th Ave.)가 만나는 사이에 위치해 있다. 20층인 건물의 한 쪽 면은 4개의 창이, 그리고 그 반대편은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다. 1902년 지어졌고, 당시에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하니 조금 더 특별해 보인다.

언젠가 우연히 이 빌딩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는, 어떤 특별한 감흥이 있었다기보다는 단지 네모가 아닌 세모여서 다른 빌딩과 조금 다른, 하지만 어쨌든 맨해튼의 화려하고 높은 건물들에 비해 조금 왜소한 빌딩에 불과 했다.

그리고 문득 '치즈케이크를 닮았군' 하는 아주 아주 개인적인 첫 인상을 안고 내 머릿속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뉴욕에 온 지 2주가 지났을 즈음 청춘의 낭만이 가득하다는 유니언 스퀘어를 찾아 브로드웨이를 따라 걷던 나는 묘한 모양을 하고 길 한복판에 불현듯 나타난 이 빌딩을 만났다.


그 묘한 모양은 단순히 세모라고만 칭하기 아까웠고, 더 이상 치즈케이크 같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 날 이후 워싱턴스퀘어파크 벤치에 앉아서 올려다보고, 5th Ave.를 따라 걸으며 챙겨보는 플랫아이런 빌딩은 내 뉴욕 사랑의 첫 번째 이유가 되었다.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무얼하든 'Why' 물음을 챙겨 꺼내 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뉴욕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던 중 플랫아이런빌딩이라는 이유 한 가지를 찾았다. 그리고 이제는 한참 나는 왜 뉴욕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수많은 빌딩들 중에 하필 이 빌딩이 좋은지 의문의 답을 찾으려고 한다. 왜!


뉴욕의 거리를 걸어 본 사람이라면, 혹은 뉴욕에 대한 사진첩이나 화집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 빌딩은 뉴욕의 곳곳에 있다.

예를 들어 많은 브랜드숍들로 인해 쇼핑의 거리로 변해버린 소호 거리를 걷다보면 과거 예술의 혼이 타올랐던 흔적처럼 아직 젊은 예술가들이 거리에 나와 그린 그림을 팔고, 찍은 사진을 전시한다. 그리고 그런 사진과 그림에 빠져 한참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면 몇 번이고 이 빌딩의 사진이며 그림을 만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플랫아이런 빌딩은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그리고 뉴요커들에게 사랑받으며 뉴욕의 곳곳에 서 있다.

이 빌딩이 사랑스러운 결정적인 이유는 그 화려한 변신 능력 때문이다. 한 자리에 늘 서서 맨해튼을 지키는 것 같으면서도 거리 곳곳에서 나타나고, 그것도 모자라서 늘 새롭게 변신한다.

어느 날 보면 납작한 판자를 세워 놓은 듯 하여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어떤 날은 평범한 직사각형의 오래된 건물 같아 보여 이게 플랫아이런 빌딩인 줄도 모르고 지나쳐가는 날도 있는가 하면, 또 어느 순간 하나의 가는 축을 사이에 두고 거울로 비춘 듯 퍼져나가 신비롭기까지 한 모양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자리에 서 있지만, 늘 새로워서 내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플랫아이런 빌딩.

결코 기대를 갖고 찾아가서는 안 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높이 솟은 화려함도 없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같은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다. 드넓은 센트럴 파크와 같은 여유로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소소한 건물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나란히 서서 뉴욕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너무나 크고 높고 거대한 맨해튼에서 가느다란 한 축을 두고 달콤한 치즈케이크 한 조각처럼 서있는 이 빌딩은 화려한 것만 보지 말 것을, 그렇지 않은 곳에서 찾는 행복의 소중함을 알 것을 가르친다. 행복은 사치한 생활 속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폴레옹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나는 뉴욕을 사랑하는 이유를 찾고, 그 이유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교훈까지 찾는다. 맨해튼은 정말 사랑받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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