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고대 한중일 관계의 보물창고

권오영의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무령왕릉>을 읽고

등록 2005.08.02 23:38수정 2005.08.0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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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재구성한 과거상이다. 유물과 유적은 생생한 역사의 자료가 된다. 무령왕릉에서는 수많은 유물이 나왔다. 이제까지 유물 따로 역사 따로 존재해왔다. 풀리지 않은 문제도 많았다.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무령왕릉>, 이제야 6세기 고대 한중일 문명 교류가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a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무령왕릉> 표지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무령왕릉> 표지 ⓒ 돌베개출판사

무령왕릉은 1972년 우연히 배수로 공사 중에 발견되었다. 문을 폐쇄한 이후에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처녀릉이었다. 어떻게 그 새털 같은 세월 동안 도굴의 피해 왔는지 기적에 가까웠다. 유신을 앞둔 박정희 정권은 전세계적 관심거리인 무령왕릉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무자비한 발굴을 자행했다. 세계사에 남을 치졸한 발굴이었다. 많은 사실이 유실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무령왕릉은 수많은 유물로 우리에게 과거를 알려주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 분노하고 있는 우리에게 무령왕릉은 든든한 근거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무령왕릉 구슬을 꿰는 연구가 별로 없었다. 권오영이 지은 이 책은 어쩌면 무령왕릉 전체 구슬을 처음으로 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무령왕이 누구인지부터 파헤쳤다. 우리의 정설과는 달리 개로왕의 동생 곤지의 아들이라고 했다. 당시 왕계보와 일본서기의 내용을 분석하여 결론지었다. 개로왕 이후 무령왕의 앞선 왕들은 모두 암살당했다. 무령왕은 웅진에서 백제 부흥을 위해 한성시대 백제와 혈연적 연결을 도모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결국 개로왕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것으로 꾸며졌다고 했다.

무령왕릉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참으로 중요하고 재미있는 내용이다. 523년에 무령왕은 죽었고, 27개월 뒤에 지금의 왕릉에 매장되었다. 왕비는 526년에 죽었고, 27개월 뒤에 무령왕릉의 입구를 열고 매장되었다. 백제의 3년상 기간은 27개월임을 밝혀내었다. 이 27개월 동안은 어떻게 했을까?

1996년 공주의 정지산에서 유적 발굴이 있었다. 무령왕릉 유물과 비슷한 것이 많이 출토되었다. 왕과 왕비의 묘지와 매지권이 분석되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글자들이 정지산 유적을 왕과 왕비의 시신을 임시로 모신 빈전이라고 인정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정지산 유적은 바로 무령왕릉의 빈전이었던 것이다.

27개월 빈전 기간 동안 국내외 문상객들이 찾아왔다. 중국 남조 양나라와 일본에서 부장물품을 보내왔다. 매장일에 빈전의 왕 목관이 미리 축조된 벽돌 왕릉으로 옮겨졌다. 국내외 부장품들이 함께 왕릉에 반입되었다. 의례를 치르고 입구가 벽돌로 폐쇄되었다. 526년에 죽은 왕비도 왕과 같은 과정을 거쳐 왕 옆 빈자리에 묻혔다. 그리고 1972년에 발견되었다.


공주 송산리 고분에는 돌방무덤이 대부분이다.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만 벽돌무덤이다. 무릉왕릉 벽돌무덤은 중국 남조의 무덤을 그대로 모방하였다. 통로와 방은 아치형 천정으로 만들었다. 28종류의 벽돌이 사용되었다. 남조의 여러 나라는 일찍이 백제에 벽돌 제작을 전파했다. 백제의 특징으로 꼽았던 4개 가로 쌓은 후 1개 세로 쌓기도 중국에 흔한 예임을 밝혀냈다.

목관의 재료는 일본산 금송이다. 비슷한 모양의 일본 목관은 없다. 금송은 통나무채로 혹은 일부 가공되어 백제로 들여왔다. 무령왕릉은 6세기 백제가 주축이 되어 한중일 합동 묘라는 느낌조차 든다.


a 무령왕릉 왕관식의 사용방식, 무령왕릉보다 조금 늦게 조성된 일본 고분의 사용예를 거꾸로 무령왕릉에 적용하여 그 전면배치를 설명하고 있다.

무령왕릉 왕관식의 사용방식, 무령왕릉보다 조금 늦게 조성된 일본 고분의 사용예를 거꾸로 무령왕릉에 적용하여 그 전면배치를 설명하고 있다. ⓒ 돌베개 출판사

무령왕릉에서는 엄청난 유물이 쏟아졌다. 왕관은 없지만 왕관 장식은 두 쌍이 나왔다. 왕관은 아마도 비단으로 만든 듯하다. 저자는 관식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일본 왕관식의 예를 들어 전면배치임을 밝히고 있다. 왕비 팔목 부근의 은팔찌에는 안쪽에 새겨진 230이라는 숫자가 복잡한 계산을 통해서 무게를 나타냄을 밝히고 있다. 그 과정이 참으로 재미있다.

무령왕릉은 6세기 고대 한중일 문화 교류의 빛이다.

무령왕릉에는 백제 국내외 당시 최고 수준의 유물들을 간직한 채, 1444년이 지난 뒤에 세상에 나왔다. 이런 유물들은 바로 당시 국제관계를 밝히는 생생한 증거가 되고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제 그릇들은 대부분 양나라에서 보내온 것이다. 진기한 짐승 모양의 석상도 중국에서 유사한 것이 많다. 백제와 중국의 교류 정도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교류가 시차가 매우 적었음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왕릉에서 나온 6개의 백자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백자보다 약 50년 정도 앞선다고 한다. 또 무령왕릉의 매지권 옆에 있던 오수전은 철로 만든 것인데, 중국에서 철오수전 제작한 해가 바로 무령왕이 죽은 523년이라고 한다. 남조의 생산품이 시차가 거의 없이 백제로 수입되었음을 말해 준다. 매우 소중한 발견이다.

중국의 문화는 시차 없이 백제에 전해졌고, 백제는 이것을 배우고 익혀 다시 일본으로 전달해주었다. 벽돌이 그랬고, 청동제 그릇들이 그랬다. 물품뿐만 아니라 정신도 그랬다. 불교와 도교 그리고 유학, 의학, 역학, 음악 등이 중국에서 들여오고 익혀 일본으로 전해주었던 것이다. '막연'히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들이 무령왕릉을 통해서 '확실'로 인식될 수 있게 되었다.

사이가 별로 신통찮았던 신라와도 문화 교류가 있었다. 특히 장신구에서는 신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허리띠 드리개는 신라의 황남대총과 천마총 출토 허리장식의 드리개와 똑 같다. 왕관은 가야의 영향도 일부 받았다. 유물들의 모습을 꼼꼼히 묘사하고 그 흐름의 과정을 찾은 서술 과정은 흥미가 저절로 생겨난다.

백제와 일본의 문화 교류 및 정치적 관계는 상상 이상

무령왕릉의 금동신발은 후지노키 고분의 신발과 너무나 유사하다. 구슬과 다리미도 유사성이 도를 넘는다. 하찮을 것 같은 다리미의 다리 길이와 다리와 몸통의 이음 모습을 통해서 큰 두 문화의 흐름이 있었음을 파악해내고 있다. 생생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청동제 거울은 아예 똑 같다. 일본 중부 지방 고분의 청동제 거울과 닮은 부분이 너무 많다.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상상 이상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은 백제와 일본의 정치적 관계까지 밝혀내고 있다. 무령왕 당시 일본의 국왕은 게이타이인데, 이전 왕실과 종적 친밀성이 약하다고 한다. 결국 무령왕의 도움을 받아 즉위했음을 자료를 통해서 추정할 뿐만 아니라 게이타이 자신이 백제계 도래인일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나당연합군에게 백제가 멸망한 뒤에 백제인들이 대거 일본에 이주하여 정착하여 일본 문화의 한 축을 형성했음도 제시하고 있다.

무령왕릉의 유물들을 시대적으로 지역적으로 위치지움으로써 6세기 한중일 문화 교류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하찮을 것 같은 유물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보다도 사실은 더욱 생생한 당시대를 지니고 있는 유물들에게 말을 시켜내는 일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무령왕릉'을 통해서 우리는 바로 옆에 역사가 전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무령왕릉 -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권오영 지음,
돌베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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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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