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서평] 역사학자 4명의 공동 저작, <장희빈, 사극의 배반>

등록 2005.08.04 02:27수정 2005.08.0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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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희빈, 사극의 배반> 책표지

<장희빈, 사극의 배반> 책표지 ⓒ 소나무

윤여정(1971), 이미숙(1981), 전인화(1988), 정선경(1995), 김혜수(2002)는 그간 우리가 드라마에서 만났던 장희빈들이다. 앞서서 김지미(1961), 남정임(1968)을 통하여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우리 사극에서, 아니 드라마를 통틀어 '장희빈'만큼 많이 다루어진 인물 소재가 있을까? 잊을만 하면 드라마로 나타났던 장희빈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왔던 장희빈이다.

도대체 왜? 장희빈이 어떻길래? 우리에게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나타나는가?


일부 연기자들 중에는 장희빈 역을 맡아보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선망하였으며, 지금 현재 장희빈의 마지막 역할이었던 김혜수 역시 직설적으로 "장희빈 연기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한다. 김혜수는 그 선망대로 장희빈 역할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눈도 크고 글래머인 김혜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라는 일부 사람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의 시대감각에 맞는 진취적인 장희빈의 역할'을 해냈다. 또한 사극 장희빈 배역을 하고 나면 그 연기자의 인기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현재까지 마지막 장희빈은 김혜수다.

현재까지 마지막 장희빈은 김혜수다?

사람들은 사극에서 보여 지는 것들을 역사적인 진실로 생각하여 받아들이며 그 드라마가 인기를 모을수록 배역을 통하여 역사속의 인물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연기자의 모습이 곧 역사적 주인공 바로 그 자체일 것이라는 착각까지 하게 된다고 할까?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지난 시절에는 악역을 맡은 배우는 그야말로 얼굴 들고 다니기가 두려울 만큼의 곤혹스런 일도 많았다고 한다. 이제는 악역을 맡은 배우를 향하여 돌팔매질하는 일은 줄었지만 어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끌수록 그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가 왠지 역사속의 실존 인물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전문 역사학자들에게 사극은 허구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사극은 관심밖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4명의 역사학자들이 사극 <장희빈>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극이 배반한 장희빈의 진실’을 찾아, 대중에게 그 진실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이다. 허구인 사극이 역사학자들을 움직였지만, 결국 이들의 대답은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이 시대에 역사학자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돌아왔다. <출판사 보도 자료 중에서>

이 책은 역사학자 4사람이 그간 우리에게 사극으로 다가왔던 장희빈에 대한 집중적인 해석과 진실 찾기다. 4명의 역사가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중복되는 부분도 없잖아 보이지만 역사 학자마다 나름의 주관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어서 중복되는 내용이 다소 보여도 지루하거나 그게 그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4명의 역사학자는 사극속의 장희빈과 실제 역사속의 장희빈을 찾아 새로운 진실을 향해 생각의 꼬리를 잇게 하고 사극을 바라보는 눈,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트이게 한다. 그렇다 이 책은 결국 장희빈의 이런저런 모습을 통하여 이제라도 사극과 역사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a 2003년 KBS 드라마 <장희빈>에서 보여 준 장희빈이란 인물은 현대적 관점에 걸맞게 한낱 궁녀에서 권력자 왕비로 신분 상승하는 CEO 장희빈의 모습을 그려 냈다.그러나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시청률이 저조해지자, 다시 악녀의 이미지로 되돌아 갔다.궁녀 장희빈의 모습(위 두매), 왕비가 된 희빈 장씨의 모습(아래)-책속에서

2003년 KBS 드라마 <장희빈>에서 보여 준 장희빈이란 인물은 현대적 관점에 걸맞게 한낱 궁녀에서 권력자 왕비로 신분 상승하는 CEO 장희빈의 모습을 그려 냈다.그러나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시청률이 저조해지자, 다시 악녀의 이미지로 되돌아 갔다.궁녀 장희빈의 모습(위 두매), 왕비가 된 희빈 장씨의 모습(아래)-책속에서 ⓒ 책속에서 발췌

TV사극이 자주 만들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시원한 답을 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화면에서 펼쳐지는 사극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 지식과 역사 인식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방영중인 사극이 나름대로 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과정에 이르기까지 '국사'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나서서 역사교육을 강조했지만, 학교에서 배웠다고나 역사책을 읽고 우리 역사를 잘 알게 되었다는 사람은 드물다. TV사극은 더 이상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시청하는 국민 모두에게 역사를 교육하고 국민의 역사의식을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책 속에서>


사람들은 사극을 역사의 진실로 받아들인다. 사극을 집필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이 실록이나 관련 문헌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어떤 중요한 사건이 펼쳐질 때 실록 한 장면을 내보내거나 자막으로 혹은 해설로 사람들에게 진실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정말 사극속의 모든 사람이 그 당시 실존인물이며 이 실록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보편적이고 진실하며 공평한가. 또한 사극이 얼마나 역사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가. 사극은 사극이고 역사는 역사일 뿐인데 사람들은 사극을 절대적인 역사의 진실로 본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사극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사극의 가장 많은 소재였던 장희빈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 역시 사극은 무척 즐기는 편이다. 때문인지 아이들도 사극을 좋아하여 다른 드라마를 제치고 사극을 보곤 하는데 그럭저럭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역사적 지식을 가지고 보는 것하고 역사에 관한 지극히 짧은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아이들이 보는 사극으로서 장희빈에 대한 차이는 당연히 엄청나다. 역사의 주인공들은 앞으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 몫이며 지금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기초 같은 존재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다시 이 책이 필요한 이유다.

사극을 좋아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끊임없이 진화하여 잊을만하면 우리 앞에 나타나는 장희빈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알아봄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극이 만들어지며 역사의 한 부분으로 사람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사람들은 사극을 통하여 역사를 알아가기를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다. 그간 가장 많은 소재였던 장희빈 역시 그 시대에 맞게 진화하여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사극을 좀 더 재미있게 영리하게 보기 위하여 다시 이 책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학자 4명이 공통 주제를 놓고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또 다시 역사에 한발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다시 또 다른 장희빈이 나타난다면 좀 더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장희빈과 인현왕후나 숙종, 그리고 역사적 배경이나 상황을 좀 더 깊숙이 탐구하고 싶다. 이제 사극을 바라보는 눈이 좀 더 날카로워 지고 좀 더 복잡해지기를 내 스스로 원한다고 할까. 이런 생각과 함께 역사적인 많은 지식들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

장희빈의 진화 못지않게 숙종이나 인현왕후의 진화도 흥미로우며, 역사가들이 들려주는 상세하고 명쾌한 역사적인 이야기는 끊임없는 질문과 꼬리를 물고 가상의 역사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역사를 해부해 본다는 것.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역사지만 진실을 찾아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것, 사극을 해부해 본다는 것, 특히 ‘실록’에 대한 이야기와 그 시대 가장 큰 정치세력이었던 남인과 서인에 대한 다각도의 상식과 눈 트임이 가능한 책이었다. 두루두루 생각을 많이 하며 읽었고 앞으로 더 알아야 할 관련 지식까지 갖게 하는 책이랄까.

책을 덮고 다시 생각해본다. 장희빈이 역사에서 승리자였다면 장희빈은 우리 앞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였을까?

드라마 장희빈은

ⓒ책속에서발췌
▶<용의 눈물>이 스펙터클하고 통쾌한 장면을 많이 연출해 냈다면 <장희빈>은 남성 중심인 유교 왕조의 궁중에서 겪어야 하는 한 여인의 갈등과 고뇌, 야망과 좌절을 표현하려는 극이었다.

최근에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장희빈> 세 여자 주인공. 왼쪽부터 차례로 장희빈역의 김혜수, 인현왕후역의 박선영, 숙빈 최씨 역의 박예진

▶장희빈, 사극의 배반/정두희, 김아네스,최선혜, 이정우 공저/소나무 출판사/1만3000원
/ 책속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웹진 리더스 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웹진 리더스 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장희빈, 사극의 배반

정두희 외 지음,
소나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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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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