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사회, 벌거벗는 기업

[서평] <투명경영>이 던지는 화두

등록 2005.08.09 00:39수정 2005.08.0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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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를 휘감는 논란의 한 축에 기업이 있다. 특이한 상황은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을 빼고 사회 이슈를 온전히 설명하기 힘들다. 경제 구조가 고도화될수록 기업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사회의 구성 주체로서 어느 범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일까.


종래 기업의 속성에 착안하는 입장에선 사회적 책무라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기업이 할 일은 주주들을 위한 가치창출이라고 보고, '공공선'과 관련된 비용을 떠맡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기업은 유용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고 일자리를 제공하며, 세금을 내는 그 자체로 사회에 공헌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 불법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나, 합법이기만 하면 윤리를 들먹이는 것을 싫어하고 탈법의 유혹을 쉽게 받는다.

이에 대해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채무를 강조하는 관점이 등장한다. 기업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져야하는 책임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본다. 특히 주식회사가 유한책임만 지는 것처럼 기업이 제도적 특혜를 받고 있는 점을 들며 기업 운영에는 사회에 갚아야 할 빚이 자연스레 따른다고 강조한다.

투명경영이 사회적 책임을 담보할까

a <투명경영>

<투명경영> ⓒ 김영사

<투명경영> 저자는 종래 이 두 가지 큰 흐름이 갖는 전제를 뛰어넘고자 한다. 기업이 굳이 희생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보거나 희생을 치르더라도 공공선에 기여해야 한다는 시각 둘 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기업 경영에 '희생'이 따른다는 오류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선한 회사가 된다는 것은 결코 희생이 아니며 이제 사업상 성공을 위한 필수요건이 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매개로 '투명성'을 내세운다.

투명성은 수익성과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며 정비례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기업이 번영하기 위해서는 신뢰관계를 조성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투명성이 신뢰를 강화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이 대목에서 윤리경영과 투명경영 개념이 혼재되어 등장하는 점은 다소 아쉽다. 물론 기업윤리를 일반적인 도덕과 같은 척도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밀이나 수수께끼가 있는 곳에는 죄악이나 사기 행위가 가까이에 있다"는 명제로 투명경영의 틀에 윤리경영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부담스럽다. 투명성 확보가 곧 기업의 사회적 책무 이행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저자의 태도는 시장원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기만하면 사회적 정의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입장과 같은 맥락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결국 기업은 투명성만 담보하면 효율성 추구 자체로 의무이행이 끝난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이런 의심을 시원스레 해소해 주지는 못한다.

투명성은 피할 수 없는 대세

기업이 투명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또한 물질적이다. 기술 변화가 사회문화와 경영 방침을 지배한다는 시각으로 하부구조 분석에서 변화의 힘을 끌어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디지털 기술이 일으키는 기업 문화 변동에 대한 저술을 남긴 글쓴이는 인터넷을 위시로 한 통신기술의 발달을 예사로이 넘기지 않는다.

더 이상 비밀을 감출 수만은 없다고 역설한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가격은 아고라에서 논의되며, 검색엔진이 들춰내는 내용은 나날이 풍부해지고 있다. 통신기술 발달로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사례를 계속해서 열거한다.

이런 인터넷 환경에서 제안하는 기업 경영의 전략은 상식적이다. 한마디로 "숨길 수 없는 것은 아예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더 낫다"는 지적이다.

또한 한발 더 나아가 드러낼 수밖에 없다면 떠밀려서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개방형 모델'이라는 형태로 제시한다.

인터넷을 말하다

책에 사례로 등장하는 기업은 대부분 미국 기업이다. 그렇다고 생소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세계 100대 경제주체 중 29개는 다국적 기업이라는데, 우선 기업 명칭이 낯설지가 않다. 게다가 기업의 속성이 지역에 따라 혹은 국적에 따라 별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실례가 친숙한 또 다른 이유는 구체적인 연구사례가 대부분 인터넷과 연관되어 있다는 데 있다. 인터넷 문화 담론에 관한 한 우리사회도 첨단이어서 어색함이 없다. 이 책은 사실 기업경영 지침서이기 전에 인터넷 문화와 구조 특성에 대한 분석서인 것이다.

'투명해야 한다'는 당위의 주요 원인으로 인터넷을 들고 있는 저자는 책에서 내세우는 세부 주장 근거 역시 인터넷에서 찾는다.

저명한 경제 연구소의 통계와 도표를 주석으로 인용하지 않는다. 웹사이트 주소를 적시하고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를 언급하고 있다. 의심나면 한번 들어 가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저자는 일반 주주와 고객이 이해할 수 없는 회계자료를 공개하는 것은 '공개를 가장한 비공개'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런 점에서 책에 인용된 자료는 형식과 내용 모두 '공개'되어 있다. 마치 이것이 '책의 투명성'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것 같다.

인터넷의 미덕은 공개를 피할 수 없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개하기 쉽다는 데도 있다. 기업은 무엇을 하든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기술 발전은 공개에 드는 비용도 절감시켜 준다. 개방형 모델을 지향하는 기업이 정보를 공개하려 할 때 인터넷을 이용하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해진다.

경영서가 갖는 아쉬움

기업이 투명하지 않으면 속으로 썩어 들어가 갑자기 붕괴될 수 있다. 저자는 아시아의 금융위기, 엔론 사태 원인을 여기서 찾는다.

또한 신뢰가 붕괴되면 내부고발자가 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부 고발자 문제를 주로 회사와 사원간 신뢰가 무너져 발생하는 참담한 '결과'로만 보는 시각은 다소 아쉽다.

내부고발은 기밀이 계속 유지될 수 없는 원인으로만 접근하기에는 그 성격이 무척 복잡하다. 그 점은 이 책이 경영지침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왜냐면 저자는 책에서 기업 역시 품격을 지닐 것을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부고발을 경영환경 측면에서만 분석할 것이 아니라 법과 문화 결국 사람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영화 <인사이더>는 내부고발자의 고뇌와 희생을 다뤄 이를 공론화 한 적이 있고, 미국 <타임>지는 2002년 내부고발자 3인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는 과단성을 보였었다. 링컨 대통령 시절 제정된 고발자특별법을 시작으로 내부고발과 보상금제도 등을 다루는 영역은 하나의 산업으로까지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내부고발은 우리사회에서도 끊이지 않을 문제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방안에서부터 극성스런 파파라치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법적 쟁점과 문화적 혼란이 자리 잡고 있다. 또다른 저자 누군가의 탁월한 분석서를 기대해본다.

경영서 특성상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 역시 이 책이 던져주는 큰 화두다. 굳이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생활 침해는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어두운 측면임이 분명하다. 이는 감출 수 없다고 공개하는 것이 해답일 수도 없는 영역이다. 이 역시 연구가 시급한 분야이며 많은 관심이 필요한 쟁점이다.

진부함을 넘어서는 사례연구

기업이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지침은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는 금언처럼 뜬구름 잡는 당위를 주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허나 책에서 제시되는 많은 사례연구를 접하다 보면 생각이 변할 수 있다.

많은 예를 읽다보면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더 유리하기는 하겠구나' 하고 관점이 변하고 불투명이 가져오는 손해와 정보 공개의 이점을 비교해보면 '투명성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요건'이라는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짧은 칼럼에 만족하지 않고 두꺼운 책을 읽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는 대부분 CEO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독자 대부분인 일반 사원과 고객은 괜히 읽은 것일까. 물론 아니다. 경영자가 통제할 수 없게 변화하는 기업환경은 일반 독자가 만드는 것임을 이 책은 웅변한다.

투명성을 불가피하게 하는 기업환경 변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일반 시민이다. 게다가 이런 환경에 처한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정부도 다를 바 없다.

덧붙이는 글 | <투명경영> 원제:The Naked Corporation
돈 탭스콧, 데이비드 티콜 지음
김병두,이진우 옮김
김영사
값 1만9900원

덧붙이는 글 <투명경영> 원제:The Naked Corporation
돈 탭스콧, 데이비드 티콜 지음
김병두,이진우 옮김
김영사
값 1만9900원

투명경영

돈 탭스콧.데이비드 티콜 지음, 김병두.이진우 옮김,
김영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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