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층 아파트까지 날아 온 매미

아주 작은 생명도 그 존재의 이유는 있습니다

등록 2005.08.10 13:38수정 2005.08.1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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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9일 8시쯤이었습니다. 25층에 위치한 우리 아파트 창문까지 아주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시간 저는 아침 식사와 출근준비로 무척 바쁘게 집안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찌르르…" 하고 아주 가까운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힘찬 매미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개구장이 아들과 저의 시선이 허공 중에서 동시에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할 겨를도 없이 매미소리가 나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우리집 앞 베란다 방충망에 그 크기가 제법 큰 매미 한 마리가 마음 놓고 계속 "찌르르" 하고 힘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매미를 발견하고 디지털카메라를 찾아들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아들과 저의 그런 조용한 야단법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미는 계속 요란하게 울어댑니다.

늦은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저는 조심스럽게 방충망을 열고 매미를 잡았습니다. 제 손에 잡힌 매미는 또 얼마나 요란스럽게 비명을 지르던지요. 아들아이에게 무슨 매미인지 아느냐고 보여 주었더니 '참매미'라고 제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매미가 한 마리의 완전한 모습을 가진 성충으로 이 땅에 나타나기까지는 오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대개는 7년여를 땅속에서 보내다가, 성충이 되어 밖으로 나와서는 7일에서 15일 동안 밤낮을 울어대다가 마침내 그 일생을 마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파트 25층까지 날아 온 매미
아파트 25층까지 날아 온 매미한명라
그런 매미의 짧은 일생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창문을 열고 제 손 안에 있던 매미를 날려 보냈습니다. 저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매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날개를 푸드덕 거리면서 하늘을 날아가 버려 이내 그 모습조차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7일이라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부지런히 짝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의 짝을 만나게 되거든 그 매미가 이 땅에 태어나야만 했던, 매미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나서 아무런 미련이나 후회없이 그 일생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25층까지 올라 온 힘으로 아주 먼곳까지 날아가길 바랍니다.
25층까지 올라 온 힘으로 아주 먼곳까지 날아가길 바랍니다.한명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결코 우리 인간들에게만 전속되어 있는 전유물이 아닙니다. 아주 미미한 존재처럼 보이는 이름모를 벌레와 풀, 나무, 그리고 많은 종류의 동물들도 이 땅의 당당한 주인이며, 그들이 우리 인간들과 한데 어울려 살아가므로 해서 이 땅은 진정 살아 숨을 쉬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의 눈에 발견되는 벌레중에서 파리나 모기, 바퀴벌레처럼 해충이 아닌 경우에는, '너의 일생을 마칠 때까지 살다가 가거라' 하는 마음으로 자연 속으로 되돌려 보내 줍니다. 간혹 배추나 야채를 다듬다 발견되는 달팽이나 무당벌레, 작은 벌레들을 자연으로 보내주고 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우리들이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고 있는 현재의 이 땅.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아주 작은 생명들 하나 하나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 작은 것들이 존재함에 감사해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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