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들의 안내인 역할을 하는 조개껍질 모양의 길 안내 표지.김남희
오늘은 카미노를 걷기 시작한 이후 처음 만나는 큰 도시 부르고스(Burgos)에 들어서는 날이다. 도시의 중심부로 들어서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외곽지대가 너무나 길어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숙소에 도착해 인터넷을 쓰니 역시나 한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 다운로드 역시 막혀 있어 호스피탈레로에게 부탁하니 한글 IME를 깔아준다. 얼마 만에 인터넷을 하는 건지! 바르셀로나를 떠난 이후 처음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편함을 열어 가족과 친구들의 편지를 읽는다.
짐을 풀고 나서 바로 닐스크리스티안과 성당으로 갔다. 성당을 들어가는 데 3유로의 입장료를 내야하는데(순례자들은 1유로)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라 무료라고 한다. 교회 앞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좌판을 걷어치웠던 예수님이 돈을 내고 교회에 들어가야 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지 문득 궁금해진다.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은 돈을 내고 둘러보아도 후회가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성당이라는 닐스크리스티안의 설명이 이해가 된다.
성당을 나오니 낯이 익은 몇몇 순례자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멕시코에서 온 알렉스가 가방을 잃어버렸단다. 성당 앞에 가방을 세워두고 성당을 둘러보는 사이 누군가 가방을 들고 가버렸다고 한다. 그동안 다른 마을에서도 늘 이런 식으로 둘러보고는 했지만 아무 일이 없었는데 여긴 대도시답게 바로 사고가 생겼다. 순례자들이 그를 돕겠다고 이리저리 가방을 찾아 돌아다니지만 이미 작정하고 들고 간 가방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결국 가방을 찾지 못한 알렉스는 여권을 발급받으러 바르셀로나로 가야한다고 한다. 걷기 위해 멕시코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일을 당하니 얼마나 기분이 우울할까 싶어 내 마음이 다 미안하다.
성당을 나와 강변의 플라타너스 길을 따라 걸었다. 뜨겁던 햇살이 저물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이 되니 거리에 시장이 서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광장에서 악단이 쿠바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스페인 사람들은 자연스레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춘다.
손을 꼭 맞잡고 춤을 추는 노부부를 시작으로 젊은 연인들, 아이들까지 뛰어 들어 어느새 흥겨운 춤판이 벌어진다.
"이게 바로 내가 스페인을 사랑하는 이유야. 이들은 삶을 즐길 줄 안다니까!"
"맞아. 덴마크에서라면 사람들은 이렇게 나와서 춤을 추지 못하지."
"이렇게 도시의 광장에서 음악을 즐기고 있자니 순례자가 아니라 관광객이 된 기분인데!"
"알베르게의 귀가시간 제한만 없다면 완벽할 텐데!"
강변의 카페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문 닫는 시간 10분 전이다. 어느새 사람들은 잠에 빠져들어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방을 가득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