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E&E 김영배 대표.오마이뉴스 김호중
의문은 김 대표를 만나자마자 풀렸다. "겨울엔 수요가 늘어나니까 서울 외 지역으로는 배달할 시간이 부족해요. 그러니, 양평, 가평, 하남 등의 지역에선 한가한 여름에 미리 사용할 연탄을 비축해두는 거죠." 이어 최근 연탄소비량이 늘고 있는 이유에 관한 김 대표와 김 상무의 분석이 계속됐다.
"연탄소비량이 늘어난다는 건 경제가 나빠진다는 이야기예요. 등유에 비해 5배 가량 싼 연료 아닙니까. 경기침체와 소득저하가 서민들에게 어쩔 수 없이 연탄을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거죠."
김 대표의 설명에 경기도 양평에 거주한다는 김 상무가 부연한다. "제 주위 시골 노인들은 요 몇 해전부터 보일러를 기름·연탄 겸용으로 대부분 바꾸더군요. 자식들이 어렵게 벌어 보내주는 돈을 헤프게 쓸 수 없다는 거겠죠."
연탄소비량과 경제상황의 관련성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권혁수 연구위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연탄 소비는 1988년부터 2001년까지 연 평균 21.1%가 감소했다. 그러던 것이 고유가와 불황의 바람이 불어닥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연 3%가 증가한다. 여기에 올 1/4분기 연탄소비는 작년 동기 대비 44.8% 폭증했다. "생활하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시기와 일치하는 것이다.
팍팍한 현재 상황은 좋았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법. 모처럼 찾아와 어두운 이야기만 나누는 것도 뭣해서 연탄산업이 호황이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일주일에 한번은 전화를 했어요"
"지난 시절엔 각국 대사들이 우리 공장을 자주 찾아왔어요. 한국의 겨울이 굉장히 추운데 서민들이 어떻게 난방을 하고 지내는지가 궁금했던가 봐요. 수입되는 원유량은 국민들이 모두 사용하기에 턱없이 적은데도 말이죠. 연탄을 직접 보고 그 가격을 알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뿐만 아니라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일주일에 한번 가량 직접 전화를 걸어와 생산량을 챙길 정도였죠. 당시엔 연탄이 그야말로 주요 에너지였으니까."
김영배 대표의 말을 김재구 상무가 이어갔다. "국민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임직원의 자긍심도 큰 시기였죠. 70년대엔 생산량에 비해 소비량이 많으니까 아껴 쓰자는 차원에서 연탄 사용 규제책이라 할 '기록장제도'(사용한 연탄숫자를 기록하는 제도)까지 도입됐었어요(웃음). 하지만, 중앙집중난방시설을 갖춘 주택들이 등장하면서 연탄보다 등유나 가스가 대접받는 시절이 온 거죠."
이 '좋았던 시절'에는 삼천리연탄 이문동 공장에만 300여명의 직원이 일했다. 하지만, 현재 직원은 23명. 줄어든 직원의 비율 역시 연탄생산량과 비례했다. 김 대표는 함께 고생해온 이들의 노고를 고마워하고 있었다.
"직원 대부분이 20년 이상 근속한 사람들이에요.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사람들이 춥지 않게 겨울을 지내게 하는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연탄이 난방을 해결해주었기에 산에 나무를 함부로 베어 쓰지 않았고, 이는 산림녹화에도 분명 도움이 됐을 겁니다. 일선 행정관청도 이런 부분은 좀 알아줬으면 합니다. '연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좀 바뀌었으면 좋겠구요."
▲분진마스크를 쓰고 윤전기에서 연탄이 찍혀나오는 과정을 체크하고 있는 직원.오마이뉴스 김호중
연탄, '임신'에서 '출산'까지 어떤 과정 거치나
한국 연탄의 역사는 대략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다. 지게에 원탄을 메고 다니며 직접 찍어 판매하던 시절을 거쳐 자동화된 대량생산시스템이 구축되기까지 연탄은 구공탄, 이십이공탄, 십구공탄 등으로 개량돼왔다. 그렇다면 한 장의 연탄은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것일까. 삼천리 E&E 공장 컨베이어벨트를 쭉 따라가면 그 답이 보인다.
강원도와 충북 보은, 전남 화순 등 한국 8개 광산에서 채굴된 석탄은 공장에 도착되면 일단 혼합과정을 거친다. 생산지에 따라 성분과 열량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합된 탄은 분쇄과정과 이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을 지나 미립자 상태로 저탄된다. 이후 '윤전기'라 불리는 기계의 의해 연탄의 형태를 갖추게 되고 배송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기자가 공장을 찾은 날도 37년간 연탄을 만들어왔다는 손종대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각자가 맡은 생산공정 라인에서 검은 탄가루를 얼굴에 묻히거나 방진마스크를 쓴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더운 여름날 그들의 수고가 서민들의 따뜻한 겨울을 약속해준다 생각하니 직원들의 구릿빛 팔뚝이 더없이 믿음직해 보였다.
석탄협회 김재구 상무가 제시하는 '연탄 문제' 해결책
취재를 마칠 무렵. 석탄협회 김재구 상무가 당면한 연탄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그가 들려준 해법의 주요내용은 '연탄값 인상을 통한 소비 억제와 빈곤층 연탄 구입시 정부보조'. 석탄은 양이 한정된 자원이므로 적절한 수준까지 가격을 인상해 꼭 필요한 사람만 사서 쓰게 하고, 독거노인이나 생활보호대상자 등이 연탄을 구입할 때는 정부가 인상분 만큼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
"올해 예상 연탄소비량은 170만톤이에요. 지난해에 비해 25%가 늘어난 양이죠. 이런 식으로 증가한다면 원탄이 고갈되는 시점이 곧 도래합니다. 정부 비축량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가격을 인상시켜 꼭 필요한 사람만 쓰게 해야하는 이유는 또 있어요. 한 해 연탄의 기저수요(반드시 필요한 사용량)가 100만톤 가량입니다. 지금처럼 사용량이 증가한다면 기저수요가 위협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에 덧붙여 김 상무와 김영배 대표는 "석탄산업이 지속적 유지와 발전은 원유수입 협상 등에 있어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기에 정부의 합리적인 정책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여름날 흘리는 땀이 가난한 사람들의 따뜻한 겨울을 약속해주는 게 아닐지.오마이뉴스 김호중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는 연탄산업. 헤쳐나가야 할 앞길이 순탄치 만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산업적 전망과는 관계없이 김 대표와 손종대씨를 비롯한 삼천리 E&E 직원들은 40여년을 한결같이 걸어온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폭염과 탄가루 속에서 그들이 흘리는 비지땀은 '가난한 이들'이 300원(연탄 한 장의 평균가격)으로 꿈꾸는 겨울날 '따뜻한 방 한 칸'의 재료가 되고 있었다.
| | "연탄이 다른 연료보다 좋은 점요?" | | | 김영배 대표가 들려주는 '연탄 예찬' | | | | "우선 경제성이죠. 재래시장 분들이 기름난로를 연탄난로로 바꾸는 덴 이유가 있어요. 기름난로를 쓰면 하루 난방비가 1만원 이상인데, 연탄은 1600원이면 충분합니다."
"연탄 하나면 8~12시간 난방이 가능해요. 나이 드신 분들이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돈 떨어지는 소리로 들려 깜짝깜짝 놀라지 않아도 되죠.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연탄은 '느긋한 연료'에요."
여기에 더해 김 대표는 '연탄=이물질을 제거한 좋은 숯'이라 고기와 생선을 구우면 가스불이나 오븐에 구운 것보다 감칠맛이 더하다는 것도 연탄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단점을 말하는데도 솔직했다. "가스중독의 위험성이 있고, 사용한 재를 처리할 때 귀찮죠. 세상 물건 모두가 장단점이 있는 것 아닙니까. 허허."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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