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이제 골고루 잘 먹을 거야"

센스 있는 의사 덕에 딸아이 편식 고치다

등록 2005.08.11 08:40수정 2005.08.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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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퇴원하고 나서 다시 예전처럼 까불이로 돌아간 세린이. "이제 다시는 아프면 안된다 알았지!"

퇴원하고 나서 다시 예전처럼 까불이로 돌아간 세린이. "이제 다시는 아프면 안된다 알았지!" ⓒ 장희용

9일에 세린이가 퇴원을 했습니다. 퇴원하던 날 세린이는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 모양입니다. 병실과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까부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한참 장난을 하던 세린이가 병실 맞은 편 간호사들이 있는 곳에서 한 아이가 주사를 맞으며 울음보를 터뜨리자 갑자기 제 곁으로 다가오더니 손가락 숫자를 셉니다.


‘하나, 둘, 셋, 넷….’

열까지 세더니 얼굴에 자랑스런 표정과 함께 양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큰 목소리로 말합니다.

“아빠, 나 용감하지?”
“뭐가?”

“나 주사 열 번 맞았다. 나 용감하지?”
“맞아! 우리 세린이 주사 열 번 맞고 매일 매일 피 뽑았는데도 많이 울지도 않고, 진짜 용감하다.”

“태민이는 주사 맞을 때 울었는데, 난 안 울었어. 장태민 넌 겁쟁이야. 누나는 진짜 용감해.”


녀석,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서기만 해도 피를 뽑을까 무서워서 울먹이던 녀석이 이제 더 이상 주사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수액 주사와 피를 뽑느라 시퍼렇게 멍이 든 자신의 손을 가리키며 자랑스러운 듯 연신 ‘자기는 용감했다’고 자화자찬을 합니다.

한참을 까불던 세린이가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동안은 잘 먹던 반찬이 먹기 싫다며 예전처럼 자꾸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안 먹겠다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듭니다. 입원해 있을 때는 ‘반찬 골고루 안 먹어서 아프다’고 하면서 ‘골고루 먹어야 빨리 퇴원하고, 그래야 아픈 주사 안 맞는다’고 협박(?)한 때문인지 진짜로 골고루 잘 먹더니만, 주사 바늘을 빼자마자 살살 웃으면서 요리 빼고 조리 빼고 하면서 반찬 투정을 하는 겁니다.


‘골고루 안 먹으면 또 입원해서 주사 맞는다’며 겁도 줬지만 배시시 웃으면서 ‘거짓말’이라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데, 속으로는 눈치를 챈 녀석의 표정에 웃음이 나왔지만 그 순간에 웃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꾹 참고 화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너 또 입원해서 주사 맞고 피 뽑고 싶어? 너도 싫지? 아빠가 뭐랬어. 골고루 잘 먹어야 튼튼해서 안 아프다고 했잖아. 봐, 너 입원해서 골고루 잘 먹으니까 아픈 거 낫잖아. 그치?”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내자 금세 표정이 바뀌더니 훌쩍거립니다. 이제 막 나아서 퇴원하려고 하는 아이가 울려고 하니 왠지 미안해서 계속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는 거 달래주자니 편식하는 버릇 받아주는 것 같고, 뭐라고 할까 고민하는데 마침 의사가 들어왔습니다.

왜 우냐는 의사의 말에 순간 잘됐다 싶어 ‘세린이가 병원에 또 입원하고 싶은가 봐요. 반찬 골고루 안 먹어요’했더니 센스 있는 이 의사께서 제가 말한 의도를 눈치 듯이 저를 한 번 보고 싱긋 웃고는 굽혔던 허리를 펴고 뒷짐을 지더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말씀 해 주더군요.

“어허, 세린이 반찬 골고루 잘 먹어야지. 고기도 잘 먹고, 생선도 잘 먹고, 김치도 잘 먹고, 엄마가 해 주시는 반찬 골고루 안 먹으면 병원에 또 입원해야 돼요!”

아빠 말은 안 믿더니 의사의 말에는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담당 과장의사가 회진할 때 같이 다니는 의사들도 ‘반찬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며 한 마디씩 거듭니다. 거듭되는 의사의 말에 세린이는 완전히 믿는 표정입니다.

담당 과장 의사는 병실 환자들 회진을 마치고 나가는 순간에도 세린이 곁으로 다시 오더니 다시 한 번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돼요!’하며 다짐을 받아 주었습니다. 수줍음이 많아 누가 뭔가를 물어 보아도 대답을 하지 않던 세린이는 그 때만큼은 ‘네’하면서 대답을 하더군요. 대답을 하는 세린이는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을 지었지만 저는 속으로 의사가 어찌나 고맙던지.

집에 오면서 저녁을 해야 하는 아내가 힘들 것 같아 밖에서 먹고 가자고 했더니 그 말을 들은 세린이가 뒷좌석에서 큰소리로 외칩니다.

“아빠, 나 이제 골고루 잘 먹을 거야”
“진짜? 그럼 앞으로 고기도 먹고, 생선도 먹고, 김치도 먹고, 모두 다 잘 먹을 거야?”

“응! 의사 아저씨가 골고루 먹으라고 그랬잖아”
“맞아. 골고루 먹어야 튼튼해져서 안 아프다고 그랬지?”

a 전에는 안 먹던 생선도 잘 먹고, 파와 당근, 고기도 아주 잘 먹는 답니다.

전에는 안 먹던 생선도 잘 먹고, 파와 당근, 고기도 아주 잘 먹는 답니다. ⓒ 장희용


약속대로 세린이는 그 날 고기도 잘 먹고 같이 나온 생선(박대)도 혼자 다 먹었습니다. 한 입 먹고 ‘나 골고루 잘 먹지’하면서 말이죠. 어제 아침에도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에 멸치와 김치를 밥에 얹어 잘 먹더군요. 물론 저녁에도 잘 먹었고요.

퇴원 후 3일째인 오늘 아침까지도 세린이는 반찬투정을 안 부리고 골고루 잘 먹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처음에는 의사 말 때문에 억지로 먹는 표정이 보이기도 했는데, 한 번 먹으니까 고기도 생선도 맛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지금은 별 거부감 없이 잘 먹습니다.

아내도 매번 밥 먹을 때마다 신경전을 벌이던 것에서 해방되니 기분이 좋은 가 봅니다. 아침에는 싱글 벙글 웃으면서 센스 있는 의사 덕에 자기가 편해졌다며 의사 칭찬에 침이 마르더군요. 아무튼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마음이 편하질 않았는데, 이제는 다 나아 퇴원했고, 편식까지 고쳤으니 이걸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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