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 바로 앞으로 도살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 길게 기찻길이 누워 있습니다.한명라
우리집 마루 위에 서서 앞을 내다보면, 저만치 멀리 기차가 시도 때도없이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리던 기찻길이 들판을 가로질러 길게 누워 있습니다.
그 기찻길을 향해서 봇도랑을 오른쪽으로 끼고 200여m를 가다 보면, 우리 고장에서 하나뿐인 제법 커다란 규모의 도살장이 있었습니다.
그 도살장에는 여러 아저씨들이 다 큰 돼지들을 짐발이 자전거 뒤에 실고 부지런히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드나들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덩치가 커다란 황소도 그 도살장에 끌고 와서 잡고는 했지요.
추석 명절이나 설날이 다가오면 유난히 그 도살장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쉴 새 없이 피어 올랐고, 돼지들의 비명소리 또한 끊임없이 하늘로 울려 퍼지고는 했습니다. 명절이 멀지 않았음이 도살장의 부산한 분위기만으로도 저절로 느껴지고는 했습니다.
순진스러운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끌려가기 싫어 버티던 황소가 억지로 끌려가다가, 어느 때에는 밧줄을 끊고 도망을 쳐서 온 동네를 어수선하게 뒤죽 박죽을 만들기도 했고,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 날에는 동네에서 유별나기로 소문이 난 개구쟁이들 조차 성난 황소의 뿔에 받치게 될까 몸을 사리는, 순식간에 온 동네가 공포의 도가니로 빠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도살장 옆 창고와 나란이 연결되어 있는 단칸방에는 어느 일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저보다 나이가 몇 살 위인 아들 딸도 있었고,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저와 비슷한 또래의 딸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저와 함께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그 집의 자녀들은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일찌감치 대처로 돈벌이를 하러 떠나야 했고, 그 집 아주머니는 도살장에서 나오는 고기나 내장들을 삶아서 커다란 다라(함지박)에 담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녔습니다. 제법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고장까지 팔러가는지 며칠동안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저씨가 계셨는데, 동네의 어른이나 아이들 가릴 것 없이 '기바우'라고 부르는 아주 특이한 별명을 가진 아저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