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책 표지샘터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은 사진가 김기찬의 사진에 시인 황인숙의 산문이 어우러진 책입니다. '골목 전문' 사진가가 찍은 사진에, 서울에서 태어나 '골목살이'에 이골이 난 시인이 골목이란 어떤 곳인가를 때로는 한 편의 시로, 때로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섞어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골목하면 으레 약간 지저분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죠. 그리고 골목을 찍는데는 아무래도 흑백사진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에는 흑백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컬러사진을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소개하는 건 이 책에 이르러서 처음이다. 컬러사진은 모노톤의 사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컬러사진은 일단 모노톤이 가지고 있는 감상을 억지한다. 있는 그대로, 눈에 보여지는 그대로를 보여 주면서 보다 직접적인 체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진가는 아마 원색의 사진이 주는 화사함과 그 화사함이 안겨주는 심리적인 따스함도 계산에 넣었을 것입니다.
골목, 세계 구성하는 모든 요소 다 들어 있는 곳
먼저 골목이란 어떤 곳인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곳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좁으면서 꼬불꼬불하게 생겨먹은 골목은 공동생활구역에 속합니다. 통행의 기능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휴식처요, 아이들의 놀이터이며 좁은 집안 대신에 쓰는 여유공간이기도 합니다.
아낙네들이 고사리를 다듬고 고추를 말리는가 하면, 아이들은 골목길 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삶의 긴밀한 끈적끈적한 관계가 맺어지던 곳, 인간적인 체취가 배어있던 골목들이 이제 세월의 뒤안길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골목전문' 사진가 김기찬은 골목의 세계가 결코 변방의 세계가 아니며, 골목 안에는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다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골목에 대해서 추억에 덧대어지는 감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골목을 좁게 가두는 일이며, 골목은 그보다 훨씬 넓고 깊은 세계라고 말합니다.
책은 꽃과 동물, 사람들, 지붕과 기와, 담장과 벽, 그늘과 벽, 이렇게 다섯 개의 울타리로 나뉘어져 있고, 한 울타리 안에는 각각 서른 장의 사진이 우리가 마음의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꽃과 동물
사람들은 왜 개를 기를까? 고양이를 기르고, 꽃과 나무를 기를까? 생활을 치장하려는 목적으로 그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들은 살아있는 것의 무엇을 치장의 수단으로 선책한 걸까? 바로 생기이다. 감정을 풍부하게 하고 영혼을 느끼게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생기. 뭔가를 기르면 기르는 마음이 생긴다. 기르는 마음은 생기에 찬 마음이다.
황인숙 글 '메리라는 이름의 개 - 꽃과 동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