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삶을 배우려거든 등대지기와 해녀를 만나라

여행의 진정성을 일러준 홍도 등대와 홍도2구 해녀들의 삶

등록 2005.08.11 17:35수정 2005.08.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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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떠나라, 파도치는 섬으로

문득, 15년 전 홍도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파도쳤다. 무작정 목포행 기차를 탔다. 삶도 사랑도 때로는 투덜대는 것. 시골집 사진첩 닮은 시트에 웅크리고 뒤척이며 가는 기차 안의 풍경이 정겹다. 기차도 길게 한숨 몰아쉬며 버거운 세상살이를 투덜대며 달렸다. 땀방울 흥건히 적시며 산길 오르듯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탓일까? 기차는 산모롱이를 돌아서며 기적소리 길게 울렸다.


여객선 창 밖으로 들어선 홍도
여객선 창 밖으로 들어선 홍도박상건
그렇게 흔들림이 멎고 다시 여객선이 물살을 가르며 출렁인다. 목포에서 116km. 소요시간은 2시간 20분. 홍도 선착장의 번잡한 모습에 홍도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힘겨워 하는 듯 보였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한결같이 그 순수함을 견지하며 사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반문하게 했다.

그래도 오래된 추억만은 세월의 물결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다잡았다. 홍도의 추억은 등대 뒷산의 정취, 등대지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그 며칠, 분교 선생님과의 홍탁에 절이던 긴 밤의 이야기. 그물을 손질하던 주민들과의 정다운 만남이었다. 유람선을 타고 홍도를 한바퀴 도는 것도 나름의 맛이 있겠지만 진정, 여행의 참맛은 자연과 사람을 통한 새로운 발견이자 학습이며 정서적 교감이라는 확신이었다.

진정한 사랑을 배우려거든 등대를 찾으라

작은 목선을 타고 홍도 등대로 향했다. 등대로 가면서 홍도가 진정 기암괴석의 천국임을 알았다. 물 위에 뜬 매화꽃 같다하여 매가도, 바다를 기다리는 바위섬이라 하여 대풍금으로 불리는 섬 홍도. 등대와 홍도 2구로 쳐 올라가는 산자락에는 270여 종의 상록수와 170여종의 동물이 서식한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천혜의 섬이기에 홍도에서는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뭍으로 가져올 수 없다.

선착장 고갯길을 넘으면 만나는 아름다운 홍도의 해안절경
선착장 고갯길을 넘으면 만나는 아름다운 홍도의 해안절경박상건
탑섬과 독립문 바위를 돌아서자 등대섬이 나왔다. 등대섬 아랫자락에 홍도2구가 있다. 지극히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등대와 이 마을을 잇는 길은 아주 아름다운 오솔길이다. 그리고 나무계단이 오솔길의 운치를 더해준다. 그 해 여름 이 등대를 찾아왔다가 폭풍주의보를 만나고 말았다. 꼬박 일주일을 등대원 사택에서 고즈넉한 등대와 등대지기와 대화로 지새웠다. 그날의 체험이 여지것 등대가 있는 섬을 찾아다니게 했으니 홍도 등대와 등대지기의 삶은 남다른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등대섬으로 가는 아름다운 나무계단 길
등대섬으로 가는 아름다운 나무계단 길박상건
등대는 해수면으로부터 89m에 이르는 고지대에 있다. 1931년 2월에 석유백열등으로 점등을 시작했다. 일제 때 마을 주민들이 노무자로 동원돼 지어진 등대이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군 병력이 상주해 군사기지 역할도 했던 곳. 그래서 홍도사람들이 만든 홍도등대였지만 정작 주민들의 접근이 금지되었다. 그러다가 전쟁에서 패한 일본인이 야간도주를 했고 남은 식량은 주민들에게 배급되었다.

한동안 주민들에 의해 등대가 운영되기도 했다. 뿌리는 대로 거두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돋는다는 명제를 드높이며 불 밝힌 등대. 그렇게 홍도 사람들과 남다른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등대가 홍도 등대이다.


해안에서 등대로 가는 길은 비탈길이다. 등대원(등대지기의 공식 명칭)들은 보급선이 해안가에 쌀자루와 연료 등 보급품을 내려놓으면 이를 짊어진 채 거친 호흡소리를 내며 등대로 오른다. 그 언덕길에 토끼풀, 쑥부쟁이, 강아지풀이 찰랑이며 동행한다. 자꾸 쉬었다가 가라며 갯바람에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을 닮았다. 귀엽기 그지없는 야생화의 동행. 두 손을 쭉쭉 뻗으며 싱글벙글 웃는 듯 하던 그 푸른 구릉지의 풍경.

홍도 등대
홍도 등대박상건
폭풍주의보에 보급선 끊겨 원시적 삶으로 이겨낸 등대원의 삶

보급선은 한 달에 한번 꼴로 온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보급선 오는 날에 폭풍주의보가 내렸던 것. 등대원들은 기상 악화로 식량이 동나는 것을 대비해 평소 바닷가에서 물고기나 조개, 파래와 톳을 뜯어 말려왔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그물을 쳐두기도 했다. 배가 없으니 몇 개의 스티로폼을 동여매 뗏목으로 사용하며 그물을 터는 모습이 빠삐용 같았다. 그 그물에서 숭어와 우럭이 팔딱팔딱 뛰며 등대원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

등대원들은 이렇게 잡은 고기를 말려서 저장하고 등대 주변 텃밭을 일구며 푸성귀를 재배해 찬거리를 준비했다. 보일러 고장에 대비해 산등성이에서 풀을 깎아 말려 군불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시설들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만일에 대비하는 등대원의 생활 수칙만은 변함이 없다. 정기여객선 항로로부터 떨어져 늘 1시간 이상의 산길을 걷고 사선을 이용해야만 뭍으로 오갈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외로운 등대원이다.

평생 어두운 밤바다를 안내하며 사는 사람들. 항해자의 눈이 되어주는 사람들. 기항지를 향하는 안전한 불빛, 희망의 불빛이 되어 주는 사람들. 그렇게 외롭게 살면서 자연에 귀 기울이고 자연에 맞춰 호흡하는 사람들 등대원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성자이다. 깃대봉 자락에는 그런 영혼과 함께 성장하는 풍란, 후박, 동백, 둥굴레 자생지가 있었다.

그 말없는 식물들의 흔들림에서도 풍진세상의 물결이며 바람을 넘나드는 고귀한 생명력의 기표를 읽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우리네 삶을 상징하는 수많은 기표가 있지만 등대원과 야생화는 흔들릴수록 그 흔들림의 반작용으로 영혼을 깨우며 사는 철학과 지혜를 지닌 듯 하다. 바다가 출렁이는 파도로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 듯, 자신의 영혼을 깨우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람과 자연의 교감.

홍어잡이 주낙 해녀물질로 살아가는 섬사람들

어쩜 삶은 자신을 풀무질하는 일이다. 붉게 물든 해안절벽이 억겁의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음을 말해준다. 거칠어서 더욱 푸른 홍도의 파도소리가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함을 일러준다.

몇 년 전만 해도 산줄기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는데 긴 호스가 있었다. 빗물을 정화한 물을 식수로 사용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수도꼭지만 틀면 찰찰 넘쳐나는 물이지만 바다를 벗 삼아 사는 홍도사람들은 유독 물과의 애환이 깊었다. 물이 귀해서 농사짓기가 어렵다보니 한국인의 식탁에 필수품인 배추를 금치라고 불렀다. 늘 배추를 사기위해 목포를 오고야 했던 것이다.

평화로운 어촌의 전형 홍도 2구
평화로운 어촌의 전형 홍도 2구박상건
그런 곡절을 품고 있는 홍도 2구로 발길을 돌렸다. 59가구에 331명이 사는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업에 종사한다. 15일간은 중국의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먼 바다에서 홍어를 잡고 15일간은 바닷가에서 그물 다듬는 일을 한다. 홍어잡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낙으로 고기를 잡는다. 마을 입구에는 잘 정돈된 주낙 낚시채비들이 보였다. 주낙으로는 농어, 감성돔, 참돔, 우럭, 줄돔, 방어 등을 주로 잡는다.

우럭 농어 등을 낚아 올리는 주낙채비
우럭 농어 등을 낚아 올리는 주낙채비박상건
얼마 후 물질하러 나가는 해녀를 만났다. 그이는 홍도 2구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이영란씨(46). 얼마 전 외아들을 군대 보내놓고 밤마다 그리움에 잠 못 이루었는데 이제는 제대 후 아들에게 마련해줄 결혼 살림 마련을 위해 돈 버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웃었다. 낮에는 바다에 나가 일하고 돌아오면 민박집을 운영한다. 상점도 운영 중인데 팔순을 넘긴 시어머니가 대신 봐주고 있단다.

해녀 벌이 쏠쏠하지만 바다 속 위험은 늘 공존한다

그이는 "3일에 한번 꼴로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는데 4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끈끈한 정으로 뭉쳐 바다에서 공동 물질을 할 수 있어서 좋다"면서 "물질을 하지 않을 때는 텃밭을 일구며 채소거리를 가꾼다"고 말했다.

물질하러 가는 해녀들이 목선에 승선한 모습
물질하러 가는 해녀들이 목선에 승선한 모습박상건
물질은 보통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고 한다. 아주 어릴 적에는 주로 헤엄치는 연습을 하고 5~6학년쯤 되면 어머니로부터 두렁 박을 받아 얕은 데서 깊은 데로 헤엄쳐 들어가는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빠른 사람들은 중학생 때부터 작업하는 것을 시키는데 40세를 전후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다고 한다.

해녀들이 물속에 들어가 작업하는 시간은 3분 정도. 주로 잡는 해산물은 해삼, 멍게, 성게, 전복, 소라, 미역, 청각. 잡은 것들은 바로 현지 관광객들에게 팔거나 도시민들로부터 예약 순서에 따라 보내주기도 한다. 한 번 나가서 일하면 수입은 10만 원 안팎. 쏠쏠한 수입이다.

그러나 결코 한마디로 많은 수입이라고 말하기에는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상어와 해파리를 만나기도 하고, 선박 스크루에 피해를 입거나 배양실 등 해수 취수구 주변의 수압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험난한 파도를 넘는 어부의 생애처럼, 어부의 아내 역시 험난한 물질을 하며 산다는 것이다.

해녀는 가난한 어촌을 지탱해온 섬 아낙들의 표상이다

알고 보면 해녀의 물질은 삶의 몸부림 같은 것이다. 해녀는 이 땅에서 숱한 곡절을 견디며 살아온 섬 아낙들의 상징이다. 물 속을 향하는 자맥질 자체가 바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의지의 산물이다. 가난하던 시절 아낙이 바다로 나가는 일은 집안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선은 돈 있는 사람만 소유할 수 있었음으로 밑천이 없는 어민들에게는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니 해녀의 자맥질에 가족들 생계의 생명선이 연결돼 있었던 셈.

해녀들은 물 속에서 시종 혼자서 헤엄치고 작업을 한다. 물 속에서 위험을 물리치는 일도 열심히 수확을 하는 일도 절대적으로 혼자의 몫이다. 고독한 섬 아낙의 모습은 이 땅의 강인한 어머니들의 삶의 여정 속에 공존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당당하고 적극적이며 부지런한 삶의 표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침내 부녀회장이 스피커로 물질 나갈 시간임을 알렸다. 얼마 후 해녀들이 하나 둘씩 포구로 나오기 시작했다. 배에서 서로 고무 옷을 입혀주고 고쳐 매 주는 모습이 퍽이나 다정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고무 옷은 방수복인데다가 체온 조절이 가능해 추운 물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 그래서 물질 시간을 6시간대로 늘려준 첨단과학의 산물이다. 해녀들이 고깃배에 승선하자 청년회 사람들이 운영하는 배는 허공을 향해 연기를 통~통~통 뱉어내고 있었다.

부녀회장(가운데 웃는 사람) 등 해녀들이 오늘은 느낌이 좋다면서 웃고 있다
부녀회장(가운데 웃는 사람) 등 해녀들이 오늘은 느낌이 좋다면서 웃고 있다박상건
홍도 2구와 1구 사이 근해에서 마치 고깃배에서 주낙이 풀려나가듯이 해녀들은 항해 중인 배에서 뛰어 내렸다. 뛰어 내리는 거리는 일정한 간격을 이루었다. 두 사람씩 일정한 작업공간을 차지했다. 몇 분의 간격으로 휘이~ 휘이∼ 숨비소리를 냈다. 작업하는 동안 고깃배는 작업 현장을 포물선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외부 선박 등의 근접을 막으며 안전한 작업을 돕는 일종의 순시행위였다.

항해 중인 배에서 자맥질하는 장면
항해 중인 배에서 자맥질하는 장면박상건
자유와 낭만의 뒷거울로 본 등대지기와 해녀의 헌신적인 삶

해녀들은 이런 식으로 하루 4∼5시간의 작업을 한다. 작업 후 해산물을 담아 놓은 그릇인 망사리를 뱃전에 올려주며 다시 청년회 사람들이 끌어 올린다. 1인당 잡아 올린 무게는 자그마치 20kg 정도. 이 정도면 10만원 벌이를 넘어선다고 한다.

오늘도 제2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홍도 바다 속에서는 해녀들이 숨 쉬고 있다. 자연은 말이 없지만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 한 몸이 되어 출렁이는 사람들은 바다와 호흡하는 숨비소리를 내며 산다. 물이 차고 파도가 거칠수록 해녀의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자연도 해녀도 정직한 숨결로 늘 함께 출렁인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장면
해녀들이 물질하는 장면박상건
그들의 삶은 어촌의 역사이자 문화이다. 홍도가 천연기념물인 것처럼 해녀들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전국적으로 3만 명이 넘던 해녀들이 6천~7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남해안과 서남해안 일대에서는 섬을 떠나는 사람 수만큼 해녀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들은 우리 경제의 세포줄기이면서 해양문화의 입자들이다.

한 잔 술에 해삼과 멍게를 안주로 삼아 자유와 낭만을 만끽하는 섬 여행이지만 이번 홍도에서 만난 해녀들의 삶이 진하게 묻어나는 이야기들 속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어촌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해양문화에 대한 애정과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길을 밝히는 아름다운 동반자 등대와 등대원의 무조건적인 사랑도 오래도록 영혼의 불빛으로 깜박이고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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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학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을 지냈다. (사)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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