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등대박상건
폭풍주의보에 보급선 끊겨 원시적 삶으로 이겨낸 등대원의 삶
보급선은 한 달에 한번 꼴로 온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보급선 오는 날에 폭풍주의보가 내렸던 것. 등대원들은 기상 악화로 식량이 동나는 것을 대비해 평소 바닷가에서 물고기나 조개, 파래와 톳을 뜯어 말려왔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그물을 쳐두기도 했다. 배가 없으니 몇 개의 스티로폼을 동여매 뗏목으로 사용하며 그물을 터는 모습이 빠삐용 같았다. 그 그물에서 숭어와 우럭이 팔딱팔딱 뛰며 등대원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
등대원들은 이렇게 잡은 고기를 말려서 저장하고 등대 주변 텃밭을 일구며 푸성귀를 재배해 찬거리를 준비했다. 보일러 고장에 대비해 산등성이에서 풀을 깎아 말려 군불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시설들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만일에 대비하는 등대원의 생활 수칙만은 변함이 없다. 정기여객선 항로로부터 떨어져 늘 1시간 이상의 산길을 걷고 사선을 이용해야만 뭍으로 오갈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외로운 등대원이다.
평생 어두운 밤바다를 안내하며 사는 사람들. 항해자의 눈이 되어주는 사람들. 기항지를 향하는 안전한 불빛, 희망의 불빛이 되어 주는 사람들. 그렇게 외롭게 살면서 자연에 귀 기울이고 자연에 맞춰 호흡하는 사람들 등대원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성자이다. 깃대봉 자락에는 그런 영혼과 함께 성장하는 풍란, 후박, 동백, 둥굴레 자생지가 있었다.
그 말없는 식물들의 흔들림에서도 풍진세상의 물결이며 바람을 넘나드는 고귀한 생명력의 기표를 읽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우리네 삶을 상징하는 수많은 기표가 있지만 등대원과 야생화는 흔들릴수록 그 흔들림의 반작용으로 영혼을 깨우며 사는 철학과 지혜를 지닌 듯 하다. 바다가 출렁이는 파도로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 듯, 자신의 영혼을 깨우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람과 자연의 교감.
홍어잡이 주낙 해녀물질로 살아가는 섬사람들
어쩜 삶은 자신을 풀무질하는 일이다. 붉게 물든 해안절벽이 억겁의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음을 말해준다. 거칠어서 더욱 푸른 홍도의 파도소리가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함을 일러준다.
몇 년 전만 해도 산줄기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는데 긴 호스가 있었다. 빗물을 정화한 물을 식수로 사용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수도꼭지만 틀면 찰찰 넘쳐나는 물이지만 바다를 벗 삼아 사는 홍도사람들은 유독 물과의 애환이 깊었다. 물이 귀해서 농사짓기가 어렵다보니 한국인의 식탁에 필수품인 배추를 금치라고 불렀다. 늘 배추를 사기위해 목포를 오고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