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소중함을 전해주는 책

캐나다 작가 헤미발거시의 <피난 열차>를 읽고

등록 2005.08.12 16:07수정 2005.08.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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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현충일이나 광복절이 다가오면 초등학생인 우리 집 아이들과 전쟁이 무엇인지, 전쟁의 상처가 어떠한지를 이야기 나눌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 역시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엄마로서 전쟁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지 전달하기가 어려웠다.

전쟁의 참혹함이나 비극적인 이야기로 전쟁의 실상을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왜 전쟁이 없어야 하는지를 가슴으로 느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피난 열차>는 왜 전쟁이 없어야 하는지를 어린 수미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으로 느끼게 도와주었다.


꽃마을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는 수미는 언덕에서 늘 앉는 바위에 앉아 기차를 기다린다. 사흘 후면 수미의 생일이지만 엄마는 먼 곳에 계시고 수미는 선물로 도착한 헝겊 인형을 들고 언덕 위에 오른다. 실은 기차보다도 그 기차를 타고 오실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수미, 그 수미 곁에 다가오신 할머니는 수미에게 수미의 어머니가 지금의 수미보다 더 어렸을 때 일어난 전쟁과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한 피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깜깜한 지하실에서 시작된 전쟁이야기가 피난열차 지붕에 가족을 올려 보낸 남편과 헤어지는 장면에 이르렀을 때는 가슴이 찡했다.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가장,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어린 아들, 전쟁 속에서 어린 남매를 보듬어야 할 어머니, 교통사고로 숨진 남편을 대신하여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군대에 간 수미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를 기다리는 수미와 수미의 할머니 등의 인물 심리가 잔잔하게 가슴을 울렸다.

또 그러한 과거 속의 인물에서 현 시점으로 전환하는 고리 연결도 탄탄해 읽는 동안 작가가 누구인지, 그린이가 누구인지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즉, 책 표지에 헤미 발거시 지음, 크리스 k.순피트 그림, 신상호 옮김, 미국 서적상 협회 추천 도서 등의 문구로 외국 동화책인데 어찌 우리의 아픈 역사 6·25 한국전쟁을 이리도 소상하게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 나중에 재미동포인 작가가 외할머니의 가족사를 통해 한국 전쟁의 비극과 아픔을 나타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기억 속의 한 조각을 회상하는 할머니의 담담한 어조와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된 수채화의 깊이에서 전쟁이 왜 없어야 하는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보는 동안 그림이 던져주는 감동의 무게도 무거웠다. 5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책의 면수를 채운 그림에 감탄했던 것. 군더더기 없는 사실적인 묘사와 내 얼굴과 많이 닮은 표정들이 진지해서 그림 속에 폭 빠져들었다. 특히 가장 좋았던 그림은 이국적인 주방의 배경이 된 페이지. 가스오브렌지와 주방용 칼이 벽에 부착된 고리에 매달려 있는 것은 우리네 주방과는 사뭇 다르다.


전통적으로 칼은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간직하고 주인만이 그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보관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할머니와 수미가 마주보고 있는 그 사이로 과일과 함께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음식문화의 주인공인 된장이 담겨질 뚝배기가 두 개나 보여서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할머니와 수미가 가진 공통분모가 기다림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컸다. 하지만 할머니의 전쟁에 따른 생이별의 기다림과 달리 수미는 엄마와의 재회가 뚜렷하기에 안타까움이 그나마 가셔졌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선물로 보낸 인형을 발치에 던져두고는 흔들의자에 앉은 수미의 다리만 보이는 부분에서는 여름방학이라 엊그제 할머니 집에 간 우리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보고 싶어졌고 자식을 키우는 어미로서 엄마를 보고 싶은 수미의 그리움이 진하게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 * 국정브리핑, LIBNEWS, 위민넷에 송고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국정브리핑, LIBNEWS, 위민넷에 송고하였습니다.

피난 열차

헤미 발거시 지음, 크리스 K. 순피트 그림, 신상호 옮김,
동산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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