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공산명월이고 누구는 흑싸리 쭉정이인가

2005 민족문학작가대회 참가기(6) '만경대 고향집'에서

등록 2005.08.13 00:44수정 2005.08.1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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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만경대 고향집

만경대 고향집 ⓒ 박도

재결합은 서로 이해와 관용 없이는 어렵다

당사자들이야 하나같이 어려운 결정이었을 테지만 남녀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경향이 점차 짙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는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어서 가족이나 언저리 사람들을 감동케 하는 일도 더러 있다.


남북 국토 분단과 겨레의 헤어짐은 우리들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어느 날 갑자기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동안 한 차례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이 있었고 그 전후로도 양측은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처럼 서로 헐뜯으며 살아왔다. 백성들의 뜻은 아니었지만 위정자들은 그렇게 충동질하고 그렇게 내몰았다, 그렇게 60년 세월을 살아왔다.

a 김일성 주석 일가가 마셨다는 우물

김일성 주석 일가가 마셨다는 우물 ⓒ 박도

헤어진 혈육끼리 서로 만나기는커녕 안부만 물어도 죄가 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살아야 했던 야만 이하의 세월이었다. 하지만 제 핏줄을 찾는 동포애는 마침내 그 두텁고 높은 벽도 뚫어서 제3국에서, 남북을 오가면서 극히 일부나마 만남이 점차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무튼 60년만의 만남, 헤어진 동포가 재결합하기 위해서 양측은 서로 깊이 이해하고 관용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나는 다행히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재결합은 해 보지 않았지만, 최근 방북을 통해 재결합은 헤어지는 일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렵게 방북단의 일원이 되어 짐까지 꾸려놓고도 일년을 더 기다려야했다. 그동안 만남을 주선한 집행부의 어려움과 그 속사정을 어찌 다 밝힐 수가 있겠는가. 출발 전날에도 대회 참가단원들에게 튀는 언행을 삼가 달라는 집행부의 간곡한 당부가 있었다. 다행히 돌출 언행에 대한 통일된 지침이 남북 양측 실무자 간에 서로 양해되었기에 참가단원들은 편할 수 있었다.

만경대 고향집


평양 시내 관람 첫 곳은 만경대 고향집으로 김일성 주석 생가였다. 말로만 듣고 화면으로만 보았던 대동강변의 휘휘 늘어진 능수버들 길을 따라 만경대 고향집에 이르렀다. 이곳 경치가 뛰어나서 '만경대'가 되었다는 안내원의 지명 유래 설명이 있었다. 초가지붕에는 여염집마냥 박 덩굴이 7월 뙤약볕 아래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a 왼쪽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단 안내원의 단아한 모습

왼쪽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단 안내원의 단아한 모습 ⓒ 박도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1912년 4월 15일 이곳 만경대 고향집에서 태어나시어 14살 되시던 1925년 1월 만경대를 떠나셔서 20년 만에 고향집에 돌아오시었는데 그때까지 살아계시던…."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단정히 입고 왼쪽 가슴에는 김일성 배지를 단 검은 머리의 안내원이 마이크를 잡고서 속삭이듯 내뿜는 안내 말은 사랑하는 '님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달콤하게 귓전을 울렸다.

그의 애절한 목소리와 미모가 지나는 나그네의 옷소매를 붙잡게 했다. 동행 남정현(소설) 선생은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느꼈다면서 '어린 시절의 누이를 만난 듯하다'고 북녀(北女)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남남(南男)이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인사를 하고 촬영을 부탁하자 내 곁으로 다가와 다정히 포즈를 취해 주었다(사진 1회 기사 참조).

이곳은 북녘의 으뜸 성지로 평양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인가보다. 몇 해 전, 동국대학교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발언'으로 시끄러웠던 지난 일을 상기했음인지, 우리 일행은 대부분 손님으로서 별 말없이 감정 표현을 자제하면서 예의를 다하는 태도였다.

견주어지는 두 항일연군 지도자

a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 ⓒ 박도

고향집은 지난날 우리네 농가나 다름없이 꾸며 놓았다. 그런데 나는 만경대 고향집을 둘러보면서 성지가 된 이곳과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같은 시대의 빨치산 항일명장 허형식 장군의 생가 터가 견주어졌다.

신주백 박사의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에 따르면 "1942년 7월 16일, 소련은 A 야영 B 야영을 합쳐서 동북항일교도려(또는 88특별보병여단)를 조직한 바, 제1영장에 김일성 제2영장에 왕효명 제3영장에 허형식(취임 전 희생) 제4영장에 시세영 (486쪽)"을 임명했다. 그 만큼 소련 측에서는 두 인물을 대등하게 평가했다.

역사의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또 다른 역사학자는 만일 허형식 장군이 희생되지 않았다면 이 분이 북녘 아니면 남녘의 정권을 잡았거나 통일 정부를 세웠을 거라 말하기도 했다.

<한국현대사와 사회주의>에 수록된 학술논문 '동북항일연군과 허형식'에서 장세윤 박사가 허형식 장군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로 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항일연군 지도자들이 북조선 출신인데 견주어 남부(경북)지방 출신이라는 점, 둘째 1900년 초 명성을 떨친 왕산 허위 의병장 가문이라는 점, 셋째 항일연군 제3군과 9군, 3로군 및 북만성의 정치이론 및 사상, 대원교육과 전략전술 분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며 북만 지역의 중공당 및 군을 이끈 점, 넷째 1940년대 초 최용건 김책 김일성 등과 대등한 고위 간부로 활동한 점, 다섯째 1942년 북만에서 전사할 때까지 항쟁할 만큼 철저한 투쟁론자였다는 점(209쪽).

a 허 장군 생가터, 곧 이곳에 왕산기념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허 장군 생가터, 곧 이곳에 왕산기념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 박도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면 영웅이 되고, 전쟁터에서 죽어서 목은 효수되고 남은 시체는 짐승들의 먹이가 되면 그대로 망각의 땅속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인가. 나그네로서는 그런 역사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허형식 장군과 필자는 전생의 인연이 있었는지 같은 금오산 사람이다.

만경대 고향집에 머무는 동안 내내 허형식 장군의 원혼이 여태 금오산 언저리를 맴도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평생 동지 김책이 목숨을 보전키 위해 소련으로 월경을 권유했건만 허형식 장군은 일제와 항쟁하는 인민을 차마 버리고 떠날 수 없어서 북만의 소부대 활동을 독려하다가 끝내 경위원(경호원) 부하를 구하고 당신은 총알받이로 산화한 살신성인 순결한 영웅이었다.

허형식 장군은 현대사에 구미 금오산, 아니 대한민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항일 영웅이다. 하지만 남녘에서는 아직도 땅속에 깊이 꽁꽁 파묻혀 있다. 허형식 장군을 살려내고 싶다. 하지만 부족한 내 필력이여!

a 현대사의 숱한 인물을 지켜본 구미 금오산

현대사의 숱한 인물을 지켜본 구미 금오산 ⓒ 박도

천손은 지금 어느 곳에

다음 관람지는 대동강 쑥섬 혁명사적지라고 했다. 버스는 버드나무가 휘늘어진 대동강변을 따라 달렸다. 평양은 한여름의 뙤약볕 탓인지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다만 매미소리가 이따금 들릴 뿐이다. 대동강물을 보니까 문득 고려시대 정지상의 '송인(送人)'이 떠올랐다.

이 시는 1965년 나의 대학입학시험 첫 시간 국어 첫 문제로 출제된 한시였고, 그 뒤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수십 번도 더 가르쳤던 작품이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갠 긴 둑에는 풀빛이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 그대를 남포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푸른 대동강에 배 띄워 능라도 부벽루로 가서 "기린마는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으니 천손은 지금 어느 곳에 노니는가?(麟馬去不返 天孫何處遊)"라는 고려 말 목은(牧隱)의 '부벽루'를 읊조리며 옛 고구려의 영웅 동명왕을 기리고 싶다. 그러면서 조국통일을 이룰 새로운 천손이 이 땅에 강림하기를 두 손 모아 빌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a 수많은 문학작품의 글감이 되었던 대동강

수많은 문학작품의 글감이 되었던 대동강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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