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아픈 죄의식이 소설로

한스 페터 리히터의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등록 2005.08.13 12:27수정 2005.08.1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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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창고
때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한 신뢰로 유토피아의 희망에 가슴 부풀어하던 20세기 초. 우체국 공무원인 아버지 덕분에 안정된 가정에서 태어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프리드리히'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주인공 '나'.

일주일 사이에 한 지붕을 쓰고 위, 아래 집에서 태어난 인연으로 서로 가깝게 지내던 이웃사촌에게 그들의 나라 독일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역사적 죄의식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독일의 군국주의적 망령이 빚어낸 홀로코스트의 역사 속에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프리드리히 가정(유대인)과 그 이웃의 희생을 그저 바라보아야만 했던 나의 가정(독일인). 그들 스스로는 한 번도 의식해보지 못했던 저 이분법적 구도가 암울한 역사의 엄습과 더불어 저들 사이에 밀어닥쳤다.


프리드리히와 그 부모는 그 역사적 운명 앞에서 실험실의 모르모트처럼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안정된 공무원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세입자로서의 권리가 상실되었으며, 노란색으로 표시된 장소에서만 활동해야 하는 사회적 상실을 시작으로, 결국 부모의 죽음 및 약탈과 방화로 생명 둘 곳을 잃어버린다. 도피자의 신분이 되어 방황하다 결국은 집 앞 계단에서 최후를 맞이한 프리드리히의 생명의 상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인위적인 죄명 아래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부당한 심판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가슴으로만 아픔을 달래야 하는 나의 가족 역시, 저들로부터 용서를 구해야만 하는 한 독일인으로서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희생자로 언제나 그들 곁에 서 있어야만 했다.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는 자신도 역사의 희생자 중 하나였으면서도 독일인이었기 때문에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는 저자의 아픈 죄의식이 소설이 되었기에 붙여진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유럽의 2000년 역사에서 유대인들은 늘 죄인취급을 받아왔다. 그들은 유럽인들의 공공의 적으로 온갖 편견과 박해를 받아왔다. 그 비극적 역사의 클라이막스가 바로 나찌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학살이 아닌가? 유대인을 싫어했던 유럽인들은 그것을 유대인들의 역사적 운명으로 받아들이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박해의 현장 속에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따뜻한 이웃이요, 다정한 친구인 유대인 프리드리히가 대다수의 유럽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그들, 유대인들을 2000년이나 유럽사회의 공공의 적으로 만든 것은 누구의 죄란 말인가?

한스 페터 리히터는 한 독일인으로서, 아니 한 유럽인으로서 그 죄값을 조금이라도 치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만이 쓸 수 있는 역사의 진실을 사죄의 마음으로 이 소설 속에 담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용서를 구하는 방식은 역사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홀로코스트의 역사 속에는 프리드리히와 그 가족도 있었다. 그들은 흠 없는 어린양과도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 어떤 신이라도 그들에게 죄의 멍에를 씌울 수 없었다. 하물며 어느 인간이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독일은 이 순결한 이웃에게 마녀사냥과도 같은 심판의 철퇴를 내렸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나와 나의 부모와 같이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그 불합리한 사회적 판결에 항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독일인들은 히틀러와 공범이 되었다는 게 저자의 양심이었던 것이다. 그 살아 있는 양심이 자신들의 역사를 반성하게 만들었고, 이 슬프고도 감동적인 작품을 남기게 했다.

이 즈음에서 우린 비슷한 역사적 과오를 가지고 있는 일본을 되돌아보게 된다. 몇 년 전에 노사카 아키유키의 <반딧불이의 무덤>을 읽으면서 느꼈던 일본 지성인들에 대한 분노가 떠오른다. 그 소설에는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역사적 반성은 커녕 오히려 자신들을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로 묘사하려는 역사 왜곡의식만이 담겨져 있었다.


이것이 일본의 의식인가 보다. 한스 페터 리히터의 의식은 그것과 얼마나 극명하게 비교되는가? 그는 양심적인 독일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들의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면서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진심을 소설에 담았다. 이것이 그의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을 배가시켜주는 이유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일본에도 이 책이 번역 출판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부디 이 작지만 힘 있는 소설이 양심 있는 일본 문학인들에게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역사왜곡의 피해자로만 인식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과 특별히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역사의 진실이 어디에서부터 나올 수 있는지, 그 논쟁의 근원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해 주길 바란다.

한스 페터 리히터로부터 나는 역사 왜곡 논쟁의 실마리를 풀 핵심 요인을 발견했다. 모든 역사의 중심에는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는 인식을 가지는 양심 속에 역사의 진실은 담겨져 있다. 역사는 거시사가 아니다. 역사는 프리드리히와 같은 미시적인 인물들의 삶 속에 있다.

<안네의 일기>가 유대인의 관점에서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묘사해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임네 케르테스가 <운명>에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맞이한 역사적 운명은 없다는 담담한 관점으로 아우슈비츠를 기록해 그 상실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 적이 있다. 이제 리히터의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는 한 인간의 양심 속에 그려진 역사의 진실을 보게 해 주었다. 이 세 가지 관점 속에서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진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이 독자로서 얻은 가장 큰 기쁨이다.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한스 페터 리히터 지음, 배정희 옮김,
보물창고,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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