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자화상(Self Portrait), Oil on cardboard, 1887, 16.54 x 13.39 inches [42 x 34 cm], Rijksmuseum, AmsterdamVan Gogh
고흐는 직접 그린 다양한 느낌의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로도 유명합니다. 보고 있는 것과 같이 고흐는 각각의 자화상에서 각기 다른 특징과 표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자화상을 포함하여 아래 감상할 그림 모두 반드시 클릭하여 본래의 큰 그림으로 실감나게 감상한 뒤, 가슴에 더 와 닿는 그림은 바탕화면으로도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고흐의 자세한 약력은 이 앞에서 소개하였던 내용도 참고하시고, 오늘은 간략한 그의 삶과 아래 그림을 그렸던 시기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이때는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인 생활과 미술기법에 필요한 책 그리고 미술도구, 물감 등을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기입니다.
1853년 3월 30일, 고흐는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포르트 춘데르트(Zundert)란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엄격한 개신교 목사인 테오도루스 반 고흐 Theodorus van Gogh(1822~1885)와 외향적인 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카르벤투스 Annaornelia van Gogh-Carventus(1819~1906) 사이에서 맏아들로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행복했던 성장기와는 달리 짧은 삶을 자살로 마감한 고흐
1869년 7월 고흐는 숙부의 권고를 받아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판화와 복제그림을 파는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는 열성적이고 세심하며 유능한 직원이었으며, 날마다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웠던 시기입니다. 1872년부터 아우인 테오가 화랑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헤이그에서 보낸 시절은 고흐의 삶에서 가장 밝은 시기였습니다.
1886년에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파리로 갔는데, 당시 파리는 새로운 인상주의 양식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활발했던 시기입니다. 이 곳에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와 당시 작품활동을 하던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 그리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1886년 봄부터 1888년 2월까지 파리에서 인상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화법의 변화를 보입니다.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 풍의 어두운 그림에서 밝고 강렬한 분위기로 바뀌었으며, 색조도 다채로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신의 개성적인 화풍과 붓놀림을 창조해냈던 것입니다.
그러던 1890년 7월 27일, 당시 고흐의 나이 서른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계속되는 신경증과 발작, 폭력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그림으로도 즐겨 그렸던 밀밭 언저리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살며 거쳐갔던 오베르, 아를, 암스테르담 등에 선물을 주고 떠난 셈입니다.
하지만 그는 죽은 이후에도 불행했던 사람입니다. 자살을 했기 때문에 교회에서가 아닌 식당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됩니다. 침울했던 테오는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고흐의 그림을 추억으로 선물하였습니다. 6개월 뒤인 1891년 동생 테오도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었고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고흐의 곁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